남들과는 다른 선택
회사에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다.
갑이 악의를 품은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번아웃시키는 일이 있다.
그런 진상 건은 모르는 이가 없다.
엮이지 않으려 최대한 멀리 비켜서고,
누가 맡으면 먼저 위로부터 건넨다.
그 폭탄이 터졌다.
클라이언트가 담당자 교체를 요구했다.
실무는 실수를 쌓았고, 팀장은 그걸 걸러내지 못했다.
인내심은 바닥. 계약 파기까지 언급됐다.
대위기.
누구든 교체해야 끝이 난다.
그런데, 누가?
영악하신 윗분이 나를 골랐다.
몇 년째 팀장을 못 단 김 차장. 일은 잘하는.
내 라인도 아닌데, 윗분의 윗분을 설득해 나를 팀장 카드로 올렸다.
남들에겐 대가 없이 달린 칭호였다.
내게 온 건 대가 없는 책임—불균형한 제안.
회의실.
“돌려 말 안 할게. 우리 쪽, 지금 타는 집이야. 김 차장, 와서 맡아 줘.”
“……저도 제 파트 일이 많아서요.”
“그건 정리해 줄게. 그리고 여긴 팀장으로 모셔. 박팀장은 이번 일로 보직 해임.”
“보직 해임이요?”
“어쩔 수 없어. 책임은 누군가 져야 하니까.”
“……”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마. 위기는 기회야? 거기선 자리도 안 보이잖아. 우리 쪽으로 와서 팀장 달고 수습해.”
말은 달콤하지 않았다.
남들에겐 조건 없이 달린 팀장.
나는 조건부 팀장. 대가가 아니라 수습의 칭호.
그 자리에서 거절하진 않았다. 분명하게 예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꼬였다.
어쩌면 누군가는 수락할 것이다.
그럼 나는? 피하기만 한 사람으로 남겠지.
무모했다. 그래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런 일도 한다.”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어이없는 객기, 맞다.
팀장 타이틀 때문이었나? 아니면 대의라는 단어에 약한 내 성정때문이었나.
문제의 파트는 불구덩이였다.
부장은 기피 대상, 팀은 번아웃이었다.
이 선택을 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망설였다.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살고 싶다—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 때문이었을까. 역시나 내 발이 앞으로 가고 있었다.
결국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다.
왜 그랬냐며. 미쳤냐며.
뒤에서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해서 팀장이 되고 싶은가 보지….
뚜껑을 열자마자 불이 튀었다.
요구사항 관리 표준 없음, 이력 추적 없음, 일정은 구멍.
하루, 이틀, 일주일. 밤은 길고, 새벽은 짧았다.
까고, 파헤치고, 뒤집어엎었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 프로세스도, 분석 툴도, 보고 체계도—문제투성이.
이럴 바엔 차라리 새 판을 짜야 한다.
대신 잠은 줄었고, 어깨는 굳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클라이언트 담당이 말했다.
“이번 주는 조용하네요. 다음 분기 제안서, 당신 팀 버전으로 받아봅시다.”
그래서? 나는 영웅이 되었나.
아니다.
문제가 터졌다면 시끄러웠겠지만, 해결되면 조용히 넘어간다.
윗분에겐 “팀장 달아줬다”로 모든 게 퉁쳐졌다.
회사란 대개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돈다.
뒤늦게 깨달았다.
물러 터져서 억울했던 게 아니라, 딜을 안 해서 억울했던 것.
처음 제안이 왔을 때, 최소한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성공 시 성과급/인사 반영을 문서로 남겨 주십시오.”
보직 해임된 박팀장.
애초부터 팀장을 원치 않았던 내 동기.
리더십 이슈로 팀과의 갈등이 깊었고, 다음 승진은 멀어졌다.
그런데도 담담했다. 팀원이 좋다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욕심 없이 즐겁게 다니는 사람.
회사는 그런 사람에게도, 내게도, 각자의 방식으로 굴러간다.
이후 프로젝트는 정상화됐다.
나는 여전히 팀장을 달고 있다. 조건부였던 팀장은 이제 나의 책임이 됐다.
나는 배웠다.
도망치지 않는 용기와, 요구할 줄 아는 용기는 다른 기술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