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동질감. 그로인한 위안.
작업이 잘 풀릴 때면 세상 모든 관계와 현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작업이 막힐 때면 나는 고립되고 세상과 적대하는 기분이 든다.
뭐...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런 경향이 있다.
고통이 있어야 카타르시스가 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작품 속 '프로타고니스트'의 여정과 닮아있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세상은 나를 고립 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둘 사이 어딘가에 놓인 나는 꾸역꾸역 앞으로 걸어야 한다. 좋은 의미로 재미, 나쁜 의미로 흔들림의 길이다.
언제쯤 초연하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성장해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누구나 흔들리더라고... 조금 위안이 됐다. 선배 작가 들도, 존경하는 감독님도, 노벨상을 수상하신 작가님도 여전히 흔들리며 걷고 있다.
불안할 때면 손을 움직인다. 창작의 행위는 무형의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인 동시에 불안을 배설하는 행위다. 불안은 벗어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 적대할 것이 아니라 친해져야 하는 존재.
"아... 흔들리는 게 당연한 거구나."
흔들리는 중에 나만의 유연함과 강도가 생기겠구나.
그런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