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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Mar 12. 2024

실패, 실패 실패…. 그리고 문득 만족.

만족하는 독서경험.

책을 읽으면 몰랐던 세상의 규칙을 발견하게 된다.

규칙을 몰라도 ‘그냥’ 살 수 있지만 살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머리에 가득 차게 되고, 괴로움에 책을 찾게 된다.


*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는데 책 한 권에 모든 게 해소되는 경우는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잦은 실패가 있었다.


*


심심하니까 그냥 읽던 시절에서, 재미있는 걸 읽는 편식독서 시기를 지나 유튜브에 뇌가 절여진 독서 암흑기를 만났고, 작년부터 독서 부활기가 왔다.


인생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비중을 -그저 존재함 - 편향 - 핍박 - 부활-로 요약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건 책에 대한 애정은 늘 있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부정기가 핍박시기에 있었고,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지 크게 깨닫는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던 3년 간의 시간 속에서도 늘 책을 모아 왔으니 책을 싫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왜 책을 멀리하고 유튜브만 봤는지 생각해 보면

유튜브는 늘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간명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욕망에 대한 것도 늘 유튜브가 빠르고, 크고, 쉬웠다.


근래 책과 다시 친해지게 된 건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고 말하기엔 솔직하지 못하다.

사실 내가 멍청하다고 느껴서 책을 읽고 있다.

유튜브는 재미있는데… 지루하다.

책은 지루한데…  재미있다.


*


책으로 원하는 답을 찾는 건 많은 독서경험이 누적될수록 유리하다.

책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으면서 내게 알맞은 책을 단박에 골라내기는 어렵다.


*


도서관, 서점에는 책이 엄청나게 많고,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설명이 쓰여있다.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해서 읽는지에 대한 명확한 질문 없이 독서하는 경우 - 그게 틀렸거나 나쁘다는 게 아니라. - 대개는 삼천포로 빠져서 흥미로운 파트만 읽고 곧 독서를 그만둔다. 독서로 잠시 잊힌 질문은 현실에서 재생된다. 다시 괴로움 - 짧은 독서 - 해결안 됨, 괴로움… 반복이 독서 초기에는 자연스럽다.


*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 더럽지만 떠오른 표현이다.

얕게 여러 권 읽다 보면 운 좋게 딱 맞는 책을 고르는 경우가 생긴다.


책을 많이 보지 않은 초심자일수록 높은 만족도의 독서경험 확률은 낮지만,

다양한 책을 고르고, 읽고, 그만두고, 다른 책 고르고… 계속 관심을 가지다 보면 점차 독서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실패를 자주 하는 거다. 실패, 실패 실패…. 그리고 문득 만족.


*


<만족하는 독서경험을 위한 책 고르기 tip>


1.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모아둔다.

+ 민음사 유튜브나 북튜버, 혹은 다독가의 독서 후기를 읽고 끌리는 책이면 플라이북 어플 - 읽고 싶은 책에 추가하거나, 알라딘, yes24 같은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쌓아둔다.


2. 도서관에 가면 책을 찾아서 차례를 훑는다.


3. 차례를 통해 원하는 주제와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한다.


4. 1단원 내용을 가볍게 훑고 설명이 원하는 만큼 구체적인지 적합성을 판단한다.

‘내용이 알차다.’는 건 내가 알고 싶어 하지만 현재는 모르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 내가 아는 단어로, 잘 읽히는 문장으로 적혀있다는 것이다.


*


목록만으로 책을 고른다면 하나의 주제에 여러 책들을 가볍게 읽을 때 도움이 되고, 한 단원을 훑고 선택하는 방식으로 책을 고르면 독서에 실패할 확률이 확연히 줄어든다.

어려운 책을 꾸역꾸역… 읽는 것만큼 고문이 없다. 지금의 내게 적당한 난이도의 책으로 레벨업 하면서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난이도의 관심사 책을 발견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


세상에 관련된 여러 종류의 질문이 있다.


대개 많은 종류의 질문들은 하나의 원초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왜 세상은 살기 힘들까, 왜 돈을 벌어야 할까, 노동과 노동력은 어떤 차이가 있나…. > 나는 이게 왜 궁금한가.


그에 대한 답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여러 종류의 도서가 있다.

자기 개발서의 경우는 행동에 대해, 에세이는 담담한 경험담으로, 소설은 빙빙빙 돌아서 깊이 꽂히는 방식으로, 비문학 도서는 딱딱하지만 글자 그대로 정직한 방식으로…


자기 개발서는 잘 안 읽고, 에세이, 소설, 비문학은 읽고 싶을 때 읽고 싶은 만큼 읽는다. 자기 개발서가 말하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


최근에 가지고 있던 생각


- 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에서 시작된 질문은

- 돈을 벌지 않는/못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 로 이어졌고.

- 노동으로 번 돈이 자산을 압도하는 경우가 드문데, 내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 둬야 하나…에서 시작된 질문은

- 왜 사람은 일을 해야 하지….로 이어졌다.


결국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 돈을 먼저 생각하고 노동이 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음을 알게 되었고,

- 노동과 노동력에 대한 차이를 몰라서 행동양식에 갈피를 못 잡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 불공평하다고 느낀 차이가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에 고쳐나가야 하고, (공산주의 시스템은 더 싫습니다…)

- 실패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주체적인 노력과 행동, 반복적인 실패가 아래로부터 계속하여 침식되어 무너뜨리기 쉬운 형태가 됨,..


몰랐던 개념이었다. 세계의 숨겨진 규칙.. 아무도 숨긴 적은 없겠지만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실에 눈 뜬 느낌은 상쾌하고, 개운했다.


개념에 대한 지식보다도 더 좋았던 건 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수용 방식을 어깨너머로 배우게 된 점이었다.

비판적 읽기, 비판의식… 이런 단어들을 많이 듣지만 ‘어스름히’ 알았다. ‘모호하게/어스름히 안다.’는 건 ‘모른다.’와 동어다.


*


책을 잘 고르고 한번 읽을 때 한 글자 한 글자 씹어서, 적당한 속도로 한 챕터를 끊지 않고 읽으니까 이해도가 높아졌다. 정말 좋았던 문장이 포함된 문단은 한 단원을 다 읽고 그대로 필사했다.

왜 그렇게 내가 보는 세상은 뿌옇고 희미했는지 알게 되는 게 독서의 기쁨이었다.


쓰다 보니 독서에 대한 찬양으로 거창해진 것 같아서 멋쩍은데 그만큼 근래 독서경험이 큰 만족감을 줬다.



최근 웨이브로 영화를 한 편 봤다.

2015년도에 개봉한 영화 ‘스틸 앨리스’다.


가족성 치매가 이르게 발현된 50대 교수가 주인공이고 ‘내가 사라지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 독립한 자식 셋이 있는데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막내딸이 단어조차 잊은 듯한 그녀에게 대본을 읽어주는 장면이다.


‘단일성’에 대한 테마로, 책 싯다르타가 연상됐다. 다른 방식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 막내딸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극 연기일을 간헐적으로 하며 지낸다.

- 교수는 치매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가기를 재차 권유하지만, 딸은 내 인생에 보험은 필요 없다고, 나는 만족하며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말하는데 그 태도가 되게 멋있었다.

- 망설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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