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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Mar 13. 2024

삶의 우선순위.

Zion hört die Wächter singen - 알레시오 박스

오늘 아침에 운동을 가고 싶었다.

어제 아침에도 운동을 가고 싶었다.


*


내가 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의자에 앉아있는 게 척추건강에 그렇게 안 좋다던데,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어깨가 몸통 안쪽으로 말린 채 근육이 긴장되어 있는 느낌이 어제저녁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럼에도 당분간 오전 9시부터 17시까지는 어김없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직립보행형 아니고 좌식형 인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다가올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끝없이 치솟는 외식물가에 지갑을 사리기로 마음먹은 나는 오늘도 굳세게 집에서 아침, 저녁을 해치웠다. 점심은 집에서 챙겨 온 아몬드 우유로 해결했다.


집에 도착하니 밖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현관에 대충 가방을 던져두고 곧장 화장실로 가서 손과 발을 비누로 씻었다. 코로나 이후로 생긴 좋은 습관이다. 집에 걸어오면서 이미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은 다 해뒀다.


데친 브로콜리 반쪽과 두부너겟, 김, 밥.

최근에 새우깡과 오예스에 빠져서 과자를 한창 많이 먹었더니 지루성 피부염이 올라왔다. 그래서 채소를 챙기게 되었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지… 까지는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녁시간 이후의 나는 굉장히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인간이 된다.

어제 글도 쓰고, 아침에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먹을 것도 챙기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지금 좀 게을러도 된다는 자만심이 흘러나왔고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아파트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 오늘 세 시간밖에 못 잤다는 핑계도 약간 있었다.


어차피 늦어버린 거, 내일 아침에 운동하고 샤워를 한다면 그게 더 개운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저녁은 세수만 해야지.

꾀라면 꾀고,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핑계라면 핑계고, 합리화라면 합리화다. 침대에 씻지 않고 눕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더럽다고 속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약간의 일자목과 어깨통증, 비틀어진 자세를 운동으로 교정하고 싶었으나 오늘은 수행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잔인하도록 서투르고, 매몰찰 때가 있었는데 차라리 관대한 게 낫지 싶다. 운동을 못해서 몸이 뻑적지근하지만 기분은 꽤 괜찮기 때문이다. 어제도 운동 안 하고, 오늘도 운동 못 하고… 몸보다 정신이 피곤해서 오늘은 몸을 좀 희생시킨 셈이다.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하지 싶다.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땐 평가하고,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대하지는 말고. 응, 오늘 이걸 못했군. 몸이 뻐근해서 내일 운동하면 아주 기분 좋겠는걸. 딱 이 정도만 생각한다.


*


오늘은 객관적으로 할 일도 많았고, 한 일도 많아서 내일은 일을 좀 덜 만들기로 한다.


나의 경우에는 자기애가 있어서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기대하는 바도 커서 도로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차피 나도 우주의 먼지일 뿐인데 스스로 오늘 하루 만족하지 못한 일이 있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나. 그렇다고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잘 살고 싶다. 나는 오늘도 잘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운동을 못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해서 만족한다.


근육이 부족해서 그런가, 앉아있는 자세가 영 불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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