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 - 아이유
6월인데 수확한 고구마에 싹이 났다.
"심으면 안 돼?"
"지금은 못 심지."
"왜 못 심어?"
"심는 시기가 지났어."
뭔가 슬퍼졌다. 하고 싶어도 그때가 아니면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게.
사실 싹 난 고구마는 자기가 다시 땅 속에서 싹을 틔우고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싶은지, 아니면 누군가의 대장 융털로 흡수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가 지났다는 게,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게 슬펐다. 세월의 야속함에 서운했다.
"다른 고구마는 이미 다 심어져서 자라고 있지."
"나 갑자기 슬퍼졌어. 시기를 놓쳐서 심어지지 못한다는 게 고구마의 의사는 모르지만 인간도 살아가면서 이유도 모르고 거절받는 경우가 있잖아, 이유는 모르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다.'라고 표현하는데 갑자기 고구마에 이입이 되네."
"그렇지 뭐. 고구마 심는 사람이 게을렀거나... 이유가 있었겠지."
*
*
'쓰임'이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의 이름이 붙여지고, 이름이 불리고, 이름이 쓰인다는 게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
단순히 시기가 지나 땅에 심어 봤자인 고구마에게서 초조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싹이 났는데 심어지지 못한다니 좌절했을까. 아닐 것이다.
때가 있다는 말도 맞고 때는 없다는 말도 맞다.
*
아이유 홀씨 가사를 보면 스물셋 앨범과 이어진다.
인터뷰에서 스물셋, 23이라는 글자 자체가 주는 꽃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말하는 영상을 봤는데 정말 23은 꽃잎 같다. 꽃으로 피어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없다.
아이유가 32에 낸 앨범 수록곡 중 홀씨에서는 피지 않고 홀씨로서 하늘에 흩날리는 것도 뭐 어때..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다시 땅에 심어지지 못하면 뭐 어때. 싹 난 고구마는 담담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내 식도로.
*
돌이켜보면 나는 늘 때를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를 맞추지 못한다는 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준비되지 않은 모든 상황들이 두려웠다.
때를 놓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서 차라리 눈을 감았다.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할 새도 없이, 나는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알 새도 없이 두려움은 사고를 정지시켰다. 차라리 찰나였으면 모르겠다. 번지점프를 하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두려움을 느끼기 전에 몸을 던져버리는 사람, 두려움에 굳어서 한참 위에서 서성이는 사람. 하지만 두 유형 모두 한 걸음 떼기만 하면 생각할 새도 없이 두려운 상황은 사라진다.
두려움이 많아서 더 용기 있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주사를 맞을 때도 가장 먼저 맞고, 매를 맞을 때도 빨리 해치우고...
그래서 적절한 때라는 건 없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땐 그 말이 위로가 되었고 지금은 또 다르다.
적절한 때는 있긴 하다고 생각한다. 계절이 오고 갈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