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ua - 사카모토 류이치
대학동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또래의 부모님의 부고소식에 마음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그 곁에 사람들이 다가갈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또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이번이 최근 일이고 내가 살면서 겪은 친구 부모님의 부고, 더 정확히는 부모님의 부재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이다.
앵두(가명)의 아파트 살림은 간소했다. 겨우 500미터 거리의 우리 집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서 인상깊이 남아있다.
우드톤 몰딩에 옥색 의자가 기억나는 과거의 우리 집과 달리 앵두네 집은 푸른 기운이 많이 도는 인테리어였다. 실내 바닥도 연한 옥색의 리놀륨, 고무재질 그 어딘가의 마감이었다. 초등학생 때 경험해 본 실내 바닥이라고는 나무마루, 장판, 타일이 흔한 것이라 독특하다고 느꼈다.
앵두동생은 많이 어렸다. 세 살, 네 살이었는데 꼭 앵두, 나, 친구들이 방에서 놀고 있으면 들어와서 기웃거렸다. 그리고 앵두의 말을 정말 안 듣는 개구쟁이였다.
앵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듣기만 했다. 당시 앵두 앞에서 가족화제가 나오고, 아버지 에피소드가 나오면 앵두가 슬퍼할까 봐 걱정됐다.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괜히 실수하게 될까 봐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고민했다. 그때 바라본 차 밖의 풍경은 참 까맸다. 앵두와 앵두 동생이 이렇게 어린데, 앵두 아버지의 부재를 생각하면 캄캄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게 된 게 이때의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죽음이 두렵기만 했다. 피하고만 싶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습관처럼 말했다. 이렇게 까맣고 두려운 죽음에 앵두가 어둠에 잠식되면 어쩌지, 생각도 했지만 난 아직도 앵두의 얼굴을 떠올리면 활짝 웃는 표정만 떠오른다. 인디언 보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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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같은 반 친구 진도(가명)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소식을 들은 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엄마는 밝은 인사를 했다가, 한껏 진지해진 목소리로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그날 저녁이었나,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같이 장례식장으로 갔던 것 같다. 예쁜 담임선생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검은 양말을 신고 있었다. 나는 그때도 죽음이 뭔지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도 같이 있었던 친구가 이제는 없다는 걸 이해하지만 알 수 없었다.
진도 어머니는 무너지고 계셨다. 진도 어머니가 진도를 차에 태우고 진도 아버지 직장으로 가는 길에서 가드레일을 박는 사고였다고 한다. 어른이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온몸으로 우는 모습은 강렬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시간이 사고를 당한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고장 난 오르골처럼. 어머니는 조금이나마 괜찮아지셨을까.
진도는 쌍꺼풀이 예뻤고, 우리 반 1,2등을 다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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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유행하고 조금 지나서 요양원에 계신 (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있지만 미소 지어지는 기억은 없다. 아버지는 끝에서 두 번째로 태어난, 느지막이 태어났기에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하루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계시는 시점부터이다. 주말이면 할머니 집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는 냉장고 정리, 바닥 쓸고 닦기, 화장실 청소, 반찬 만들어두기 등을 해결하셨고 언니와 나는 바닥에 앉아 무한도전, 여걸식스, 엄마는 뿔났다 등 예능과 드라마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와 잠시 할머니 침대 앞에 앉아 있으면 나는 응석부리기 위해 엄마 무릎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그러면 할머니는 “느이 엄마 무릎 망가진다. 내려와.” 하는 다소 냉랭한 어투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다소 살가운 손녀도 아녔지만 은근히 할머니 앞에서 조심스러워졌다.
아버지는 할머니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데려온 두 딸의 이름을 자신의 어머니께 묻는 일이었다. 얼굴을 보여주면서 이쪽이… 큰딸, 이쪽이,,, 작은 딸. 할머니는 우리 이름을 맞히지 못하셨다. 아빠는 반복해서 이쪽이 누구, 이쪽이 누구예요, 설명해 줬지만 할머니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땐 할머니가 과묵하신 편이겠거니, 했지만 할머니는 치매를 겪고 계셨다. 손녀 얼굴을 보고 손녀인지 누군지도 모르겠는 이 상황. 나는 내 이름을,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외갓집이라는 비교군이 있었기에, 외갓집에서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웃고, 반겨주고, 안아주는 상황만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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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장례식 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단순히 아버지가 슬프겠거니.. 했다.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발인 때 고모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고 그만큼 마음에서 슬프지 않은 내가 좀 이상한가..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날에 국화를 그렸다. 나는 그리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가 보고 싶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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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찔끔 울었다.
상주석에 앉아서 자리를 지키는 삼일 내내 조금씩 눈물이 고였다가, 마르다가를 반복했다.
발인 때 (외) 할머니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도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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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겁게 느껴지지만 늘 곁에 있다. 누구에게나, 언제든, 어디서든 이상하지 않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태어난 이상 죽음은 당연한 건데 소식이 들려오면 평소와 달리 힘없이 가라앉는다.
오늘 동기 아버지의 부고소식을 듣고 나는 내가 죽음을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별은 늘 아쉽지만 슬픈 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부재감이 슬픈 것이지, 더 이상 불가능이라는 것에 슬픈 것이지 이별은 그냥 아쉬운 것이다.
+ 죽음에 관하여라는 네이버 웹툰이 생각나는 밤이다. 명작이니 혹시 관심이 있는 분은 보셔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