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 검정치마
이혼 과정에 있는 두 남녀가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헤어지자 한다. 여자는 조건부로 이를 수락했다.
한 달 후에 이혼하기로 한다. 단,
1. 매일 아침 포옹해 줄 것.
2. … (생략)
3. ….
4. …
5. ….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점은 한 달 동안 상대를 ‘사랑하는 척’을 하는 조건이다. 이와 같은 전개는 수많은 로맨틱코미디에서 볼 수 있는 클리셰다.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척을 하다가 정말 좋아져 버리는 이야기라던가, 약점을 잡혀서 사귀는 척, 혹은 계약결혼을 했는데 정말 서로 사랑하게 된다던지 하는 이야기라던지.
이 우화의 끝도 그렇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척하다가 여자가 다시 사랑스러워 보이는 순간이 오고, 정말로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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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는 3년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어떻게 엄마와 아빠는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솔직한 만큼 누군가에겐 유치해 보일 수도, 혹은 염장질… 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는 엄마와 아빠는 내 주변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서 진심으로 물어봤다.
우정과 사랑은 구분할 수 있나?
- 우정과 사랑은 같기도 한데 다르다.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한눈에 딱 알 수 있다고 함. 구애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딱 한 사람만 보인다고 한다.
-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에 가고 싶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그 사람을 보고 싶어서. 존재만으로 설레고, 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하고, 다른 구애/사랑의 경쟁자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걸면 질투가 나고.
+ 첫 만남, 단번에 ‘이 사람은 내 사랑이다.’라고 알아보는 게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알게 된다고 한다.
살다 보면 좋았던 사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 상대가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극복하나?
- 좀 멀어져서 시간을 보낸다. 상대를 미워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나 자신도 미워지게 되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흘러 보낸다. 다시 좋아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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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질문으로 아빠는 나에게 사랑을 해봤냐고 물어봤다.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낀 사람이 있는지.
연예인. 연예인을 좋아해 봤다고 하니 아빠가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을 좋아하는 거니까 그건 예외라고 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다시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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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위와 같은 우화에 대해 아빠가 말해줬다.
아, 생각났다. 주변에 혹시 소개팅과 같은 방법으로 지지할만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러니까 소개팅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위 우화를 말해줬다.
이제까지 몰랐는데 친지들 대부분이 소개팅 또는 중매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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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 만남이던 자연적 만남이던 상관없이 사랑을 삶으로 증명하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자연히, 그러니까 자만추로 사랑하게 된 건 조금 더 신기하다, 정도일 뿐, 다를 게 뭐 있나 싶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고 싶다, 하면 사랑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많은 친구들의 친구들을 만나보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이별하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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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화를 알게 된 이상 이제 인생은 누워서 껌 씹기다.
엄청난 미모에, 능력도 출중하고 인성도 훌륭한 사람이 보이면 어려워도 ‘사랑하는 척’을 하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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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만 봐도 그렇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단편적인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의 상품가치를 인정받아서 수입을 올린다. 확실히 매체에 비치는 모습만 보고 내가 그 인간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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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좋다’의 전제는 그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어떤 특성을 알고, 그 특성이 좋아서 좋아지게 되는 건데
만일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 좀 더 지켜본다. 그래도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알던 모습과 다르다면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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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얼굴은 아름답다. 그 사람의 이목구비의 구성이 대칭에 비율적으로 완벽해서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 말, 행동은 정말로 예쁘다. 나는 tv에서 어느 조연 배우의 연기를 보고 그 생각을 했다.
사랑에 빠지는 상황, 순간은 다양하고 그에 적절하게 - 과장되지 않고,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그대로를 - 표현할 줄 아는 건 귀한 능력이다. 만났을 때 사심 없이 그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표정,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반해버린 무의식의 얼굴 근육,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약간의 놀람과 긴장.. 이 세 가지를 미세하지만 명백하게 보여주는 능력.
사랑에 빠지는 바로 그 순간을 알려주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
나는 그 얼굴을 보고 그 배우를 좋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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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우는 스타가 됐다.
만나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자, 팬들, 처음 만나는 모든 이들을 가장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좋아하는 사람 대하듯이 조심스럽고 사려있게 대한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할 줄 아는 건지 신기하다.
+
일부, 편집된 단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릴 필요가 없다. 진짜와 가짜는 논리와 이성의 판단보다 감각과 감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진짜와 가짜는 보는 순간, 감각하는 순간 우린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모든 사고와 판단에 익숙해져서 비대해진 머리를, 그에 짓눌러진 감각은 무뎌졌지만 우리는 진실을 믿고 싶지 않을 뿐 이미 다 알고 있다.
정말 사랑하는 눈빛인지, 지어낸 가짜의 눈빛인지.
가짜와 흉내 내는 건 다르다. 흉내 내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흉내 내는 데에는 믿음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믿음이 집착이 되면 안 된다.
경험에 기반해 흉내 내는 건 재현이다. 오렌지 주스에 오렌지 과즙 0.01% 들어간 것도 오렌지 주스이듯이, 재현에도 0.01%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이 녹아있다고 치면 흉내 내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나와 같이 배우를 좋아하게 되는 건 짝사랑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지,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그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정확히 무어라 말할 수 없어서 의미 없는 허황된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가난했던 마음에 아주 작은 빛이라도 들어온다면 그건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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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이 많으면 사랑을 주기 쉽다. 주는 만큼 돌려받게 되는데, 그래서 주면 받게 된다.
일단 세상 모든 걸 사랑할 줄 알 때, 모든 게 감사하고, 아름답고, 뭐가 그리 심각하냐는 듯이 순수한, 환한 빛으로 웃어 보일 때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다. 이런 충만함은 초등학생 때까지도 유지됐었다.
가장 마음이 가난했던 때, 사랑이 없을 때 나는 아무것도 주고받을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랑’이라는 말이 참 역설적이다. 가난과 사랑은 붙을 수 없다.
사랑이 가난할 수 없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은 단어 자체에 ‘충분함’이 담겨있어서 사랑은 가난할 수 없다.
세상에 사랑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사랑의 종류에 상관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지는 순간들이, 모두의 얼굴이 편안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