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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Mar 04. 2024

저는 사람인데요

차트의 환자번호 몇 번이 아니라 제 이름은 따로 있는데요


 정신과에서 나랑 맞지 않는 의사에게 진료를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불편하고 또 불편한 일이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일인데 오랜 기간 보아야 하는 의사가 나와 맞지 않는 것은 그 이상으로 불편하고 껄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진료과처럼 진료시간이 1분 2분 이런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나라는 인간에 대해 숨김 없이 말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와 맞지 않거나 또는 나에 대해 그 쪽에서 먼저 쌓아둔 편견과 혐오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불편한 일이다.


 의사와 맞지 않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친구도 가족도 나와 100%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부터 하지 않는데 그냥 흐린 눈 하고서 넘겨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나는 성소수자 당사자인데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혐오적 발언을 하거나 멋대로 편견을 덧씌워서 되려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꽤 있고 그 외에 이런 인간이 지금 내 앞에 의사가운을 입고서 정신과 의사랍시고 앉아있는게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인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덧 정신과를 7년째 다니는 입장이 되고 나와 스쳐지나간 의사가 이제는 몇 명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기억나는 머릿수만 세더라도 거의 열 명은 되려나. 그렇게 되니 의사는 대체로 거기서 거기이고 나에게 큰 문제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면 그냥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에게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의사가 참 없는 것 같다. 그것도 내 정체성에 대해 혐오와 편견 범벅이 되어 내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멋대로 나에 대해 적폐망상을 하는 정신과 의사를 눈 앞에서 보고 있자면 화딱지가 나서 내가 내 돈 내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현재는 아예 성소수자 정신건강을 전문적으로 보는 정신과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보고 있어서 적어도 이와 관련된 부분에서 혐오를 들을 일은 없다는 것에 조금은 편하지만 정말 되도않은 의사가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간헐적으로 실감하곤 한다. 나도 안 할 새소리를 왜 의사 씩이나 되어서 그것도 자랑이랍시고 무식하게 진열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의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그 실수로 인해 누군가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실수가 결코 가벼운 것이라 할 수 없다. 생명과 관련되고 사람을 다루는 직업에서 과연 의사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으며 모를 수 있다는 말이 진짜 통할 수 있기나 한 걸까? 싶고. 그들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게 괜찮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 실수로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고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걸 단순 실수라고 의사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어 하면서 넘길 수는 없겠다.


 정말 나도 피곤하다. 의사를 안 보고 살 수 있으면 나도 참 좋겠건만 그게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묘하게 씁쓸하다. 적어도 영양가도 없고 창의적이지도 못한 의사들의 무식 전시만은 안 보고 싶다. 그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라 그냥 차트에 타자 몇 번으로 적혀진 환자 몇 번 이런 식으로 되어있겠지만 적어도 사람 취급은 해줬으면 싶다. 무엇이 어찌되었던, 어쨋든 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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