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의 아빠는
퇴근길 지하철,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뜬 오랜 동창의 프로필 사진 위의 빨간 점. 무심코 그걸 눌렀을 때 펼쳐지는. 그 속의 세월이 흘러 변한 친구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화면을 채우는 건 십중팔구 고등학교 동창들의 결혼식 사진이거나, 본인의 아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20대 후반, 친구들이 하나둘 장가를 갈 때만 해도 “와, 얘가 벌써?” 하며 신기해하기만 했는데. 서른셋이 된 지금은 청첩장을 받아도, 친구의 프사가 행복한 결혼사진에서 친구를 닮은 아기 사진으로 바뀌어도 그렇게 놀랍지 않다.
이젠 그저 익숙한, 제 나이에 맞는 당연한 풍경이 되었으니까.
고향을 떠난 지 10년. 연락이 닿지 않아 서먹해진 세월만큼이나 친구들과 내가 서 있는 트랙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확실히 나보다 고향 친구들의 시계가 조금 더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좁은 서울 자취방에서 전세 대출 이자와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하루를 보내는데. 화면 속 친구들은 벌써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명함을 달고 있다.
그 묘한 괴리감이 씁쓸하다. 나름대로 타지에서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나의 성장은 어느 순간 멈춘 기분이다. 아랫입술을 나도 모르게 윗니로 살짝 깨물고는 폰을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었다. 그러다 지하철 창 밖야경을 바라보니, 문득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나이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올해 내 나이 서른셋. 그때의 아버지는 갓난아기도 아니고, 이미 걷고 말하는 다섯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계셨다.
지금의 나는 내 몸 하나 뉘일 방 한 칸 건사하는 것도 이렇게 허덕이는데. 그 시절 아버지는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나이에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내셨던 걸까.
친구들의 아기 사진을 보며 부러움보다 막막함이 앞서는 30대 중반의 초입. 새삼, 서른셋의 아버지가 거대한 산처럼 위대해 보인다.
나도 언젠가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내 한 몸 바쳐 가족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