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발라준
자취생에게 생선구이란 금기에 가깝다. 좁은 원룸에서 고등어라도 한 번 구웠다간, 사흘 밤낮을 비린내와 동침해야 하니까. 특히 옷장이 부족해 행거에 옷을 걸어두는 자취생이라면 더더욱 최악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고등어 냄새를 풍기고 싶지 않다면 참아야 한다.
그래서일까. 고향이 제주도라 어릴 적부터 생선구이가 익숙했던 나지만, 서울에서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기껏해야 약속이 있어 횟집에 갔을 때 곁들이찬(스끼다시)으로 나오는 자그마한 꽁치구이 정도?
하지만 명절이나 연휴 때 제주도 본가에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탁 위엔 어김없이 아이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토막 난 은갈치가 얇은 전분 옷을 입고 노릇하게 누워 있다. 서울에서는 비싸서, 혹은 냄새 처리가 귀찮아서 엄두도 못 내는 그 귀한 녀석이다.
종종 서울 지인들이 “제주도 사람들은 갈치 어디서 사 먹어? 현지인들이 가는 진짜 맛집 좀 알려줘”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맛집 추천을 해줄 수가 없다.
“음... 우린 그냥 집에서 엄마가 구워주는데?”
이렇다 할 식당 추천 하나 못 해주는 게 머쓱하지만, 제주도 출신이라면 공감해 줄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밖에서 갈치를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엄마는 내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전 반드시 한 끼는 생선을 구워주신다. 고등어도 옥돔도 있지만, 갈치구이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사실 갈치는 생선 중에서도 발라 먹기 ‘난이도 하(下)’에 속한다. 양쪽 가장자리의 잔가시만 젓가락으로 쓱 훑어내면, 가운데 통통한 살점은 쉽게 떨어진다. 나도 이제 서른이 넘었고, 서울에서 혼자 세금 내고 밥 벌어먹는 어른이기에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 눈엔 내가 여전히 젓가락질 서툰, 치킨 부스러기를 바닥에 다 흘리고 먹는 어린애인가 보다. 엄마는 내가 젓가락으로 갈치살 해체 작업을 시작하려 하면 “엄마가 해줄게” 하며 가져가시곤 슥슥 가시를 바르신다.
그럴 때면 나는 짜증 내며 말한다. “아, 엄마. 내가 할게. 나도 바를 줄 알아. 나중에 내 색시가 보면 뭐라 하겠어. 평생 발라줄 거야?” “응, 그럼. 그때도 발라줄게.”
엄마는 내 농담은 들은 체도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시를 발라내신다. 그러고는 가장 하얗고 두툼한 살점만 골라 내 밥숟가락 위에 툭, 무심하게 올려주신다.
나는 그대로 숟가락을 들어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킨다. 짭조름하면서도 살이 고소한 것이, 역시 제주산 갈치가 참 맛있긴 하다. (사실 제주산 갈치 말고 먹어본 적이 없긴 하다.)
짧은 연휴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나의 작은 보금자리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1시간 남짓한 비행도 여행이었다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이곳이 이제는 진짜 내 집이란 걸 머리도 아는지,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자니 제주 본가보다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 되어 밥을 차릴 때면, 향수병이 도진다. 본가에서 엄마의 밥상을 받아먹다가, 혼자 좁은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자니, 문득 그 밥상이 생각난다.
엄마가 손수 발라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위의 갈치 한 점. 입안에 넣으면 바다 향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리던 그 맛.
오늘은 비싼 오마카세보다, 엄마가 발라준 그 갈치 한 점이 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