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나라 시골쥐 가족

앨범 속, 동대문에서의 추억

by Logan

중학생 시절, 우리 가족은 서울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는 영업직으로 제주도 운전에 도가 트신 베스트 드라이버였지만, 서울에서 운전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서울에서의 이동은 택시와 ‘서울 시티 투어 버스’에 의존했다. 덕분에 우리 감귤나라 시골쥐 가족은 기억 속 하늘색이었던 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내 눈에 서울은 모든 게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흥인지문이 나타났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와, 저게 뉴스에서만 듣던 동대문이구나.”


빌딩 숲 사이에 덩그러니, 하지만 웅장하게 서 있는 ‘흥인지문’. 교과서에서나 보던 걸 실제로 보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 들뜬 마음으로 우리 가족은 동대문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의 메카라고 익히 들었기에 찾아간 것인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무서웠다. 수염 난 무서운 형님들이 여기저기서 잠깐만 옷 좀 보다 가라고 붙잡았고, 결국 한 가게에서 멈춰 섰다.


엄마는 “누님” 소리에, 나는 “서울 스타일”이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국방색 야상과 요상한 징 박힌 벨트를 샀다. 당시 30만 원 정도를 줬으니 바가지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만족스럽게 쇼핑을 마치고 나왔다.


쇼핑 후 우리는 흥인지문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서울 스타일 야상 점퍼를 걸치고, 그 시절 사춘기 아들들이 그렇듯 사진 찍기 싫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폼을 잡았고, 여동생은 애교 있는 얼굴로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최근 연말을 맞아 제주도에 내려갔다. 문득 방에 꽂힌 앨범들이 눈에 들어와, 걔 중 하나를 펼쳐 보았다. 사진 하나하나 바라보며, 그 사진 속 추억을 회상하다 문득 그 사진을 발견했다. 동대문의 촌스러운 시골쥐 우리 가족. 사진 속 아버지는 젊고 잘생겼고, 어머니도 젊고 아름다웠다.


그 야상 점퍼는 지금 어디 갔는지, 마지막으로 언제 입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툰 서울 여행에도 마냥 행복해하던 젊은 날의 부모님과의 사진을 보니, 그 야상 점퍼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그 당시 30만 원은 꽤 큰돈이었을 텐데, 아들에게만큼은 가장 좋은 것을 입히고 싶어 했던 그날 두 분의 마음을 서른이 넘어 헤아려 보자니 코 끝이 찡해졌다.


이젠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서 달마다 검은색 염색한다는 우리 엄마 아빠.


그 시절의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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