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치트키
새로운 사회로 나갈 때마다, 아버지는 마치 입력된 명령어처럼 항상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셨다.
“아들, 거기에 귤 좀 보내줄까?”
대학 시절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 때도, 빡빡머리 깎고 입대해 자대 배치를 받은 후에도, 그리고 서울의 번듯한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도. 아버지는 항상 귤을 못 보내서 안달 난 사람 같았다.
철없던 시절의 나는 그 말이 참 귀찮았다. “아, 됐어. 무겁게 뭘 보내. 여기도 마트 가면 다 팔아. 택배 받기도 귀찮고.” 속마음엔 이런 생각도 있었다. ‘서울 와서까지 촌스럽게 나 제주도 사람이라고 티 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의 ‘기본’을 깨달으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조직 생활의 시작은 일단 내 존재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시키는 것부터라는 것을.
마침 친척 중 ‘셋 아빠(둘째 큰아버지를 뜻하는 제주말)’가 감귤 농사를 크게 짓고 계셨기에, 아버지는 제철이 되면 어김없이 내가 속한 사회로 묵직한 택배를 부쳐 주셨다. 그냥 보내시는 법도 없었다. 아버지에겐 나름의 ‘분배 전략’이 있었다.
“팀원은 3개씩 주고, 다른 부서 사람들은 하나씩 돌려라.”
처음엔 회사 로비에 도착한 큰 귤 상자를 들고 사무실을 도는 게 퍽 겸연쩍었다. 하지만 그 주황색 과일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평소 데면데면했던 타 부서 분들이 마주칠 때마다 “현 사원, 귤 잘 먹었어”라며 인사를 건네왔다. 깐깐하던 유관 부서에 업무 협조를 부탁하러 갈 때도 “집에서 직접 하는 거야? 진짜 맛있더라”며 말랑한 스몰토크가 가능해졌다(특히 3~40대 여성분들이 친절하게 잘해주셨다!). 심지어 꼰대 같던 옆부서 본부장님도 “나중에 거래처 선물할 때 자네한테 물어봐야겠네”라며 친한 척을 해오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의 그 끈질긴 제안이 실은 ‘내 아들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쁨 받아라’는, 50여 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신 아버지 방식의 투박하지만 가장 확실한 로비(Lobby)였다는 것을. 제주도 출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던 셈이다.
덕분에 나는 어딜 가나 돈 한 푼 안 들이고(물론 배송비까지 아빠 돈이지만) 센스 있고 가정적인, ‘정’ 많은 제주 청년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부작용이 있다면 휴가철마다 “제주도 맛집 추천 좀 해줘”, “여행 코스 좀 짜줘”라는 요청이 쇄도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저희 사촌네 농장에서 막 따서 보내주신 거예요. 많이 드세요.”
그러면 꼭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너희 집은 농사 안 지어?” 사람들은 무슨 제주도 사람이면 다 감귤 농사를 짓는 줄 아나보다.
근데 사실 우리 집도 감귤 농사를 짓긴 한다. 다만! 시작한 지 몇 년 안 됐다.
아주 작은 밭에 이제 막 노지 감귤나무 3년생을 심어 두고, 녀석들이 자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내후년쯤? 2027년 겨울쯤 수확 예정인데, 그 후로는 온전히 우리 집 귤을 이용한 나의 ‘감귤 로비’가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그때는 사촌 형네 귤이 아니라, 진짜 우리 집 귤로 서울을 접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