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닿을 수 있다
지난달 여자친구와 1주년 기념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두 사람 모두 홍콩은 처음이지만, 멋진 야경과 이국적인 문화, 맛있는 음식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문화는 독특한 홍콩 식당 문화였다.
홍콩 식당은 좁고 붐비는 탓에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과 합석해 식사를 한다. 예를 들면, 식당 점원이 테이블에 식사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 자리로 안내해 준다. 또한, 홍콩은 물이나 휴지도 기본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갈증이 나면 유료로 차나 커피를 시켜 먹고, 휴지나 물티슈도 직접 챙겨 다녀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겪으니 새삼 한국은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 낯선 사람과 합석에 익숙해질 때쯤. 센트럴 근처 유명한 미슐랭 원스타 완탕면집을 갔다. 점심과 저녁 사이 애매한 시간에 30분 정도 기다리고 입장했다. 4인 테이블로 안내받고 대표 메뉴인 3가지 토핑(새우 완탕, 비프, 피시 볼)이 올라간 완탕면을 주문했다.
이번엔 누가 합석할지 내심 궁금했다.
그때 맞은편에 일본인 노부부가 앉았다.
한국인인가 했지만 일본어를 사용하길래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3개월 배운 짧은 일본어로 인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안 나서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여자친구가 실수로 국물을 옷에 흘렸다.
닦을 휴지나 물티슈는 없었다. 국물이 옷에 배기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라 말하려던 순간 앞에 일본인 할머니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잠시 앞에 앉은 낯선 외국인이었지만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고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작은 배려에 용기를 내어 일본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두 분은 일본어를 할 줄 아냐고 놀라며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두 분은 우리 또래의 자식이 있다고 하셨다. 홍콩은 여러 번 왔지만 마카오는 이번에 처음 갔는데 우리에게 굳이 가진 말라고 하셨다...^^;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넷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둘이서 한 그릇을 나눠먹던 노부부는 먼저 식사를 마쳤고, 작별 인사를 하며 영어로 'Have a nice trip!'을 연발하며 이별했다.
일본 노부부가 떠난 후, 우리는 방문할 카페 얘기를 하며, 식사 속도가 느린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테이블에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합석했다.
아이가 아빠와 동생은 어디 앉냐고 얘기하는 것을 보니 4인 가족이 여행 온 듯했다.
그러던 중 앞에 앉은 아이가 잠시 우리 눈치를 보며 왜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먹어야 하냐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어린아이는 이런 상황이 불편할 수 있다 생각했다. 일본인 노부부와의 대화로 기분이 상기된 우리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금방 먹고 갈 거니까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아이 엄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여기 자리 금방 나겠어! 앞에서 기다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우리가 건넨 배려가 우리에게 향하는 재촉으로 변했다.
아이엄마가 전한 말은 분명히 우리가 한 말이다. 하지만 작은 배려를 몰라준 채, 초면에 아직 식사 중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재촉하는 모습에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으로부터 무례함을 겪으니 씁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휴지를 건네주던 일본인 노부부의 따뜻한 배려가 다시 떠올랐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닿을 수 있었다.
반면, 같은 국적과 언어를 공유해도 소통과 배려가 당연하지 않았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국적이나 언어, 나이가 아닌, 도덕 시간에 배웠을법한 말인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홍콩에서의 작은 경험이었지만,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