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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로 Oct 03. 2023

술의 기쁨과 슬픔

<아무튼, 술>을 읽고 

처음 술 마신 날을 기억한다. 수능이 끝나고, 19살과 20살 사이에 있던 그때.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자며 호기롭게 선택한 장소는 편의점이었다. 차마 식당에서 술을 주문할 용기가 없어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우리는 까만 봉지에 담긴 맥주를 들고 노래방에 갔다. 음주, 가무를 즐기자며 노래방에 갔는데 노래방 주인장은 우리를 청소년실로 안내했다. “우리 청소년실에서 술 마셔도 되냐?” 키득거리며 인생 첫 맥주캔을 땄다. 청소년 시절 나는 노래방을 참 자주 갔었는데, 술과 함께한 그날은 가장 뜨거웠다.


대학시절, 잊지 못하는 술자리가 있다. 몇 번의 술자리로 술의 맛을 알아가던 때였다. 동기 중 가장 말 많고 시끄러운 친구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친구는 ‘고진감래 주’를 알고 있냐며 우쭐댔다. 종업원에게 맥주 2병, 소주 1병, 콜라 1병을 주문하고 다량의 소주잔과 맥주잔을 세팅했다. 그가 의기양양하며 만들어서 건네준 고진감래 주. 처음 맛본 폭탄주의 맛은 신세계였다. 새로운 맛에 눈을 뜬 나는,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 집 거실에 누워있었다. 분명 1차 때 맛있게 먹고 식당에서 나왔는데, 왜 집에 있는 걸까 싶어 동기한테 물어보니..... 2차로 옮겨가던 중에 내가 갑자기 운동장으로 뛰어갔다나;;; 그러다 넘어지고 게워내고 부모님께서 데리러 오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날은 내가 ‘나’여서 가장 싫은 날이었다.


호기롭던 20대를 지나 지혜를 바라는 30대가 되었다. 이제는 마음 편한 친구들과 갖는 술자리보다 불편한 회식이나 술 좋아하는 상사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많다. 이제 “술”이라고 하면 불편함이나 감당하지 못하는 숙취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술기운이 슬슬 오르면서 꺄르르 웃음 짓게 되는 순간을 참 좋아한다. 책 <아무튼, 술>은 그런 순간들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술자리들이 생각났다.


가을을 좋아한다. 여름의 뜨거움이 지나 제법 쌀쌀해진 가을밤을 좋아한다. 이번 가을에도 사당역 근처 오뎅바에 가야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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