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라바마 이야기To Kill a Mockingbird> 1962년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는 미국의 작가 하퍼 리의 소설로 1960년에 출판되었다. 출판 즉시 큰 인기를 모았으며, 1961년 픽션 부문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현대 미국 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가 10세 때인 1936년에 그녀의 마을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과 작가가 가족과 이웃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다. 소설은 공황기에 존경받는 변호사 핀치가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흑인 남성 로빈슨을 변호하면서, 핀치의 가족과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핀치의 어린 딸 스카웃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1960년 <앵무새 죽이기>를 처음 출간할 때만 해도 작가 하퍼 리 자신은 이 소설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언젠가 그는 “<앵무새 죽이기>가 성공하리라곤 한 번도 기대한 적인 없었다. (....) 다만 누가 내게 격려해 줄 만큼 이 작품을 좋아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하퍼 리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이다. 대학에 다닐 때 학생들이 발행하던 잡지에 쓴 글, 그리고 이 소설을 출간한 뒤에 발표한 세 편의 에세이를 빼놓고는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퍼 리의 친척인 리처드 윌리엄스가 그에게 왜 두 번째 작품을 쓰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 물음에 대하여 저자는 “그렇게 흥행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작품 창작과 관련하여 하퍼 리는 언젠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 그러나 글을 쓰는 것만이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젬,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빠.”
“그러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저는..... 우린 래들리 아저씨에게 뭘 좀 주려고 했을 뿐이에요.”
“아저씨에게 전해 주려고 했던 게 뭐지?”
“그냥 편지에요.”
“어디 보자.”
오빠는 더러운 종잇조각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아빠는 그것을 받아 읽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왜 아저씨를 밖으로 나오게 하려던 거냐?”
딜이 대답했습니다. “아저씨가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쳐다보시자 딜은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젬, 아빠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만 말할게. 그 아저씨를 괴롭히지 마라. 너희 둘도 마찬가지야.”
래들리 아저씨가 무엇을 하건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겁니다.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이란 거죠. 자기 집 안에 머물러 있고 싶다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관심을 피해 집 안에 있을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아이들>이란 바로 우리들을 완곡하게 일컫는 표현이었습니다. 밤에 우리가 방에 앉아 있는데 아빠가 노크도 하지 않고 불쑥 들어온다면 좋겠냐면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금 그와 똑같은 일을 래들리 아저씨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의 행동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아저씨에게는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고요. 더구나 다른 사람과 정중하게 연락하는 방법은 옆 창문이 아니라 현관문을 통해서라는 생각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집에 초대받기 전에는 절대로 그 집 근처에 얼씬거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빠가 전에 보신 것처럼 바보 같은 놀이를 해서는 안 되고, 이 거리 이 읍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놀려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지요.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P99-100>
하퍼 리가 나고 자란 앨러배마주는 이웃 미시시피주나 루이지애나주와 함께 미국 남부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다른 북부 주와 비교하여 흑인 인구가 눈에 띄게 많은 남부, 그중에서도 앨라배마는 흑인 민권 운동의 온상과 같은 곳이다. <미국의 양심>으로 흔히 일컫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처음 그 이름을 떨친 것도 이곳이요, 일련의 사건으로 1960년대의 흑인 민권 운동에 처음 불을 지핀 곳도 이곳이다.
“귀부인이셨다고요?” 오빠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습니다. “아빠에 대해 그런 말을 해댔는데도, 훌륭한 귀부인이라고요?”
“그래, 훌륭한 귀부인이셨어. 할머니는 세상일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계셨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아들아, 네가 그때 만약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너에게 할머니께 책을 읽어 드리도록 시켰을 거다.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뭔가 배우기를 원했거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 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껏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오빠는 사탕 상자를 집어서 불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동백꽃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가 잠자러 갈 때 오빠는 그 널찍한 꽃잎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신문을 읽고 계셨고요.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P213>
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에서 나이 어린 주인공 핍을 통하여 <신사>가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다룬다. <앵무새 죽이기>는 스카웃이 <숙녀>가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공기총을 사주셨을 때 아빠는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잭 삼촌이 기본적인 사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삼촌 말씀에 따르면 아빠는 총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거였지요. 어느 날 아빠가 젬 오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P173-174>
하퍼 리가 <앵무새 죽이기>에서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정의 그리고 심판과 관련된 문제다. 영국 식민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미국을 건국한 국부(國父)들은 <독립 선언문>과 헌법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그 유명한 문장을 적었다. 이 구절은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서 말하는 <인간> 속에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도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독립 선언문>이나 헌법에 기록된 평등 운운하는 구절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피해를 입히지 않는 앵무새와 같은 선한 흑인이었던 톰 로빈슨은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면 인간은 법 앞에도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특히 앨라배마 같은 남부 주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백인 중심주의가 유난히 심한 이곳에서는 정의의 저울이 늘 백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젬, 네가 한 짓이냐?”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네. 아빠”
“왜 그랬지?”
오빠가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할머니가, 아빠가 쓰레기 같은 깜둥이들을 변호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 때문에 이런 짓을 한 거야?”
오빠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네, 아빠>라는 대답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젬, 네 말마따나 내가 흑인을 변호하는 것 때문에 네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병든 할머니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듀보스 할머니께 찾아가서 사과드려라.”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장 집으로 와.”
오빠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서 가라고 했다.”
나는 오빠를 따라 거실에서 나왔습니다. “넌 이리 와.” 아빠가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갔지요.
아빠는 <모빌 프레스> 신문을 집어 들고 오빠가 앉았던 흔들의자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지금 남부군의 유물인 권총에 맞아 살해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쩜 이리도 냉담하게 앉아서 신문을 읽고 계실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때론 죽이고 싶도록 젬 오빠를 미워한 적은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오빠는 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아빠는 이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알고 계신다 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던 겁니다.
<중략>
나는 왜 우리가 이성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이성을 지키지 않는데 말입니다.
“스카웃.”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름이 오면 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당면할 텐데 그때도 이성을 지켜야 할 거야.... 너와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야 할 경우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처신하느냐 하는 건....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어른이 되면 어쩌면 조금은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되돌아볼 거라는 사실이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아빠, 아빠가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P198-200>
애티커스 핀치는 결국 정의란 ‘인간의 양심’이라고 말한다. 로마의 휴일에서 신문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은 이 영화에서 국선변호를 맡은 핀치역으로 나온다. 소설의 화자인 스카웃의 이야기를 영화는 여자아이의 시점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회상장면으로 표현한 영화적 기법을 유심히 보면 좋을 듯 싶다. 그리고 영화의 약 3분의 1이 공판장면이고, 전체가 회상장면이며 흑백이다.
“배심원 여러분, 마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언젠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북부 사람들과 워싱턴에 있는 행정부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기 좋아하는 말이지요. 서력 기원 후 1935년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문맥에서 어긋나게 사용하고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예는, 공교육을 시행하는 사람들이 근면한 학생들을 어리석고 게으른 학생들과 같이 진급시키는 겁니다. 교육자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며 뒤처진 아이들이 무서운 열등감에 시달릴거라고 심각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몇몇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잘 벌며, 또 어떤 부인들은 다른 사람보다 케이크를 잘 만들며, 또 어떤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의 정상적인 범위를 뛰어넘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도록 창조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라면 거지도 록펠러와 동등하고, 어리석은 바보도 아인슈타인과 동등하며, 무식한 사람도 어떤 대학 총장과 동등한 하나의 인간적인 제도가 있지요. 배심원 여러분, 그 제도가 바로 사법 제도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대법원일 수도 있고, 이 앨라배마주에서 가장 말단의 치안 재판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배심원 여러분이 지금 수고하고 계시는 이 법정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법원은 인간의 다른 제도가 그러하듯 나름의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우리의 법원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어 버리는 위대한 제도입니다. 우리의 법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법원과 사법 제도를 확신하는 그런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저에게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는 현실이지요. 배심원 여러분, 법정은 제 앞 배심원석에 앉아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해야만 건전할 수 있습니다. 법정은 오직 배심원단이 건전한 만큼 건전하고, 배심원단은 그 구성원이 건전한 만큼 건전합니다. 배심원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으신 증거를 감정의 동요 없이 검토하여 판단을 내려 이 피고를 그의 가족에게 돌려보내시리라 확신합니다. 배심원 여러분께서 맡은 바 의무를 다해 주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는 바입니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P379-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