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D-day는 처음에는 1944년 6월 5일로 결정되었다. D-day가 가까워지자 연합군은 더욱더 맹렬한 공중 공격을 가했고, 상륙부대가 영국 남부의 여러 항구에서 승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일기가 불순해지면서 바다에는 거친 풍랑이 몰아쳤다. D-day를 연기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에서 아이젠하워 장군은 고민했다.
"연기냐, 강행이냐! 연기를 한다면 노르망디 해안의 조수 조건을 고려할 때 적어도 한 달을 기다려야 할 텐데…."
계속된 고민 끝에 아이젠하워 장군은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이번 작전을 강행한다. 공격 개시는 6월 6일 내일이다.“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6월 7일 셰르부르항을 점령한 이후, 생-로와 캉을 빼앗았다. 당시 상륙 작전의 선봉 부대는 미 29 보병 사단 16연대 3대대 2중대였으며 중대원 198명중 상륙 시작 4분 30초만에 196명이 전사하였다.
영화 <아이언 크로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실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지상 최대의 작전>(1962)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도 볼 수 있다. 조금 다른 영화이지만 <덩케르크>(2017)도 있다. 영화의 무대가 된 노르망디는 단연코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떠오르게 한다. 카파이즘(Capa-ism)이라 불리울 정도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의 스페인내전의 사진과 노르망디의 사진이다. 카파이즘은 보도사진가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일컬어진다. 종군기자로서 포토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카파의 책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그의 말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마지막 전사자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전쟁의 마지막 날에도 몇몇 용감한 병사들은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산 자들은 너무도 빨리 그 모든 것을 잊는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카파가 직접 쓴 2차대전 종군기다.
“주정(舟艇)에서 내린 군인들은 물을 헤치며 나아갔다…. 바닷물은 너무 차가웠고, 해안까지의 거리는 아직 100미터 이상 남아있었다. 내 주위로 총탄이 날아들어 물을 튀겼다. 나는 제일 가까운 철제 장애물을 향해 내달렸다. 병사 한 명도 나와 동시에 그 장애물 뒤로 뛰어들었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숨은 강철기둥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적의 총탄이 나를 쫓아왔다. 약 50미터 전방에 반쯤 불탄 수륙양용장갑차 한 대가 수면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물에 떠다니는 시체 사이를 헤치고 장갑차에 도달해서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그런 다음 해안으로 돌진하기 위해 마음을 추스렸다. 독일군은 모든 화기를 총동원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해안까지 마지막 25m를 가는 동안 적의 포탄과 총탄에서 몸을 숨겨줄 만한 구멍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박격포 한 발이 날아와 철조망과 바다의 중간지점에 떨어졌다. 그 파편에 병사 한 명이 죽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었다. 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포탄 한 발이 또 터졌다. 나는 전혀 겁먹지 않고 콘탁스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댄 채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 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카파가 찍은 사진은 사진 현상을 하던 암실 조수 역시 흥분한 나머지 건조과정에서 너무 많은 열을 가하는 바람에 유제가 녹아 대부분 망가지는 불상사도 겪었다. 106장의 사진 중 고작 8장을 건졌다. 1주일후 '라이프'지는 그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이렇게 썼다. “카파의 손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말해주었고, 사진 한 장의 파급력은 엄청난 것이다.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이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If your photograph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라는 말을 남겼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는 41세 때인 1954년, 전쟁의 광기가 들끓고 있던 인도차이나에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몇 컷의 사진을 대가로 그가 베트남에서 돌려 받은 것은 지뢰 폭발이었다. 어느 전장에서건 병사보다 더 적진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하는 그의 정신은 결국 목숨을 앗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