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9. 휴먼다큐멘타리의 선구자 '유진스미드’

by 노용헌
유진 스미스1.jpg

1. 실천적 이상주의자로서의 유진 스미드

유진 스미드는 다큐멘타리 사진에 있어서 새로운 형식을 발전시킨 사진가이다. 라이프(Life)지의 종군 사진기자(photojournalist)로서의 사진은 시골의사의 포토스토리를 계기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휴머니스트(실천적 이상주의자)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저널의 기록성(단순히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형태)을 넘어 두 가지 방법(photo story, photo essay)으로 따뜻한 인간애를 표현하였다. 이 두 방법은 현재까지도 다큐멘타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포토스토리'적인 접근이다. <시골 의사(1948)>에서 그는 의사를 특별한 사람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서 고뇌와 열정을 표현하였고, <조산원(1951)>에서 그는 머드 칼렌(Maude Callen)의 입장에서 다름 아닌 피사체의 입장에서 피사체와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슈바이처 박사(1954)>에서 그는 라이프 편집장의 의도(성인으로서의 슈바이처)와는 달리 인간적인 면을 비추고자 하였다. 그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진지한 탐구정신은 포토스토리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포토스토리는 주인공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기승전결식으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주인공으로 표현되는 사람(피사체)을 면밀히 관찰하여 보여 주는 데는 포토스토리만한 전달방법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는 시골의사의 박애정신과 불쌍한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흑인 조산원의 봉사정신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과 삶을 함께 하면서 생명경외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슈바이처의 사진은 그의 인간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유진스미스4.jpg


두 번째는 '포토에세이'적인 접근이다. 포토스토리가 미시적인 접근이라면, 포토에세이는 거시적인 접근이다. 포토스토리가 인물의 내면에 대한 탐구라면, 포토에세이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방법일 것이다. 포토스토리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포토에세이는 주제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포토스토리가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소설이라면, 포토에세이는 거대한 서사시인 것이다. <스페인마을(1951)>에서 그는 독재 정권이 가져다준 스페인의 한 실태를 스페인 서부의 한 마을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빈곤한 생활을 기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전달하고자 하였다. <피츠버그(1956)>에서 그는 미국 도시 의 강렬한 표본으로 거대한 서사시를 보여주었다. 17000장의 사진을 찍고 2년에 걸친 작업은 그에게 있어서 예술가로서의 큰 전환점이었고 포토에세이의 장을 연 계기가 된 것이다. <미나마따병(1972)>에서 그는 일본의 구마모또현 미나마따시 지역의 오염으로 인한 산업공해를 고발하였고 오늘날 공해병의 상징처럼 돼버린 미나마따병의 희생자들의 고난과 그들의 투쟁을 사진으로 증언하였다.

유진스미스5.jpg


유진 스미드는 스스로 실천적 이상주의자임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그는 그가 꿈꾸고 바라는 이상을 머리 속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포토스토리와 에세이라는 사진 형식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실천하는 이상주의자(휴머니스트)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작업한 그의 사진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엮음사진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관념(이상)을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포토스토리와 포토에세이의 형식을 발전시켜 자신의 이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하였고, 예술적 완벽함뿐만 아니라 도덕적 완벽함까지도 함께 추구하였던 것이다.


또한 현실과 이상은 하늘과 땅처럼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진세계로 승화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유진 스미드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사진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가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한다. 이 모든 것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어떤 사진들은 그것들이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소리를 듣게 만들고, 이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때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내도록 인도해 갈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생활방식이 그들에게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잘 구성하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들려줄 수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포토스토리와 에세이는 사진에 대한 새로운 인식(서술방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하나의 사진이 가지는 상징성은 비로써 포토스토리와 에세이의 형식으로 더욱 심화되고 장엄한 서사시를 완결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장의 좋은 사진은 감탄사이지만 여러 장의 좋은 사진은 각 사진의 시너지 효과로 웅변과도 같은 감동을 전달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50년대 미국의 그래픽저널리즘(ex; life)이 행해왔던 연출된 엮음사진의 형식은 객관적으로 보도해야하는 객관성과 윤리적인 면에서 스미드는 철저히 거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진 스미드의 포토스토리와 에세이는 현재까지도 많은 포토 저널리스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진 스미드상의 수상자들인 유진 리차드(Eugene Richards, 1981),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o Salgado, 1982), 제임스 나츄웨이(James Nachtwey, 1993)등에게 유진 스미드의 전통은 이어진다. 현대의 다큐멘타리 사진가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제한된 지면에서 자신의 스토리를 한층 더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대안매체로서 웹 상으로도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널리즘은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현실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그의 고민은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감동을 포토스토리와 에세이의 형식을 통해 무한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일례로 '조산원'(1951년)의 사진은 당시 간호원들의 봉사정신에 감동한 사람들이 그 병원의 설립에 많은 기부금을 보내기까지 했던 사실로 보아 그의 사진은 단순히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사진의 예술적 요소의 강렬함뿐만 아니라 대상의 진실을 깊이 통찰하려 하였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한 인간이 육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변화된 삶을 사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찾아야 하듯, 진정한 포토저널리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가 정신적으로 불신과 절망과 고통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평화와 화해와 사랑의 메시지를 사진으로 보여 줌으로서 대중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킴으로서 보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유진 스미드는 이런 점에서 자신의 이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산업화는 인간을 더욱 풍요하고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과학기술에 노예화되고, 비인간화에 철저히 반대하는 휴머니스트였던 것이다.


유진 스미드는 실천가이면서 삶(사랑)을 증거한 증거자이다. 슈바이처가 의술을 통한 사랑을 실천하였듯이 그는 사진으로 실천한 예술가인 것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사진문화운동을 펼친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잡지 Life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던 바는 인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일 것이다. 유진 스미드의 다큐멘타리 사진은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려는 의식과 통찰력을 지닌 작가의 해석 그리고 그것을 미적인 형식으로 전달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킴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2. 종교적 예술가로서의 유진 스미드

유진 스미드의 사진세계에 있어 가장 주된 테마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처럼 "사랑"이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살길을 위해 잔인함과 폭력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슈바이처와 같은 이름난 성인이 아닌 시골의사나 머드 칼렌의 경우처럼 그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품성을 통해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캔사스(Kansas)에서 태어나 카톨릭 학교를 나온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 네티 스미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형은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유진 스미드에게 투자했다. 전쟁은 스미스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 거대한 정서적 경험은 그의 종교적 믿음을 살아나게 했다. 그의 도덕성의 회복은 종교적 믿음과도 일맥상통한다.


<도모꼬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라는 사진을 보면, 미나마따 병으로 고통 받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종교적인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이 사진에 대해 미국의 평론가 수잔 손탁은 "주민 대부분이 수은 중독으로 신체장애를 일으켜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기록한 유진 스미스의 이 사진은 우리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고뇌를 기록했으며, 어머니 무릎 위에서 온몸을 비틀며 빈사상태에 있는 딸은 현대 각본연출법(Dramaturgie)의 참된 주제로서 탐구된 페스트의 희생자가 넘치는 세계를 찍은 한 장의 피에타(Pieta :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체를 무릎에 안고 있는 그림상)이다."라고 격찬하였다. 또한 <유일한 생존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보도한 수많은 사진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사진이다. 대부분의 종군사진기자들이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전달하는데 반해 그는 어린 생명을 소중히 안고 있는 군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진한 인간애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동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를 따뜻하게 품에 안고 있는 병사의 모습은 마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것처럼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유진 스미스2.jpg


그의 사진 중에 인간가족전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낙원 뜰에 이르는 길 A Walk to Paradise Garden> 작품을 통해서 그의 기독교적인 종교관을 드러낸다. 두 아이가 숲을 빠져나가 낙원인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고통 받는 현실(악, 전쟁)에서 자신의 이상인 천국(선, 평화)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언제나 보이는 현상 이면의 진실을 추구하였고, 악과 싸우는 무기로서 인간의 선을 감염시키려고 노력한 본질적으로 종교적 예술가인 것이다.

유진 스미스3.png


유진 스미드는 인간의 대한 사랑을 흑백의 톤으로 표현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빛과 그림자의 균형은 그의 작업에서 아주 중요하다. <스페인 마을>에세이 중 <임종>에서는 한 노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들의 슬픔을 어둠(검은색, 죽음의 색)으로 표현하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흰색, 구원의 색)을 통해서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빛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모든 화조가 어두운 점은 어두운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둡기 때문에 더욱 밝음을 역설적이게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어두운 현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밝음으로 도약하려는 어둠이다. 그러기 때문에 차분히 가라앉은 정적의 어둠이 아니라 몸부림이 도사리고 있는 긴장된 어둠이다. 그리고 밝음(구원의 메시지)을 향해 나아가는 지향적인 어둠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빛의 상징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우라(Aura)는 시간과 공간이 함께 내재되어 있어서 멀고도 가까운 신비로운 교감이라고 한다. 그의 색조는 신비스런 아우라를 담아내고 있다. 유진 스미스의 <임종>은 스페인 한 작은 마을에서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서 빛은 구원(종교적)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종종 과다노출로 검은 색을 만들어 이들 그림자에 상대적으로 빛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빛과 그림자의 균형은 그의 사진 프레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내가 현실의 해설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을 주의 깊게 탐구하는 일이며, 사건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찍는 사진은 진실을 꿰뚫은 것이라야 하며, 또 나의 판단력을 집중하여 진실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또한 상징화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주의 깊은 연구와 이해가 가능한 광범위한 감성을 통한 정직한 해석에 있다. 만약 내가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재능을 좀 더 심화시킬 수 있고, 그 정밀도를 보충하면 내가 이룩한 이미지는 문자 그대로의 진실을 능가하고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진실과 상징을 나타낼 수 있다. 나의 유일한 편집자는 나의 양심이고 나의 양심은 나의 책임이다”(Eugene Smith Photography, Exhibition catalogue of University of Minnesota, 1975)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도덕적 양심에 기초로 그의 종교적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진실을 정확히 표현하려 하였으며 이러한 믿음을 완강하게 지켜나갔다. 따라서 그의 실천적인 윤리적 판단으로서의 양심은 종교적 의미로서 파악할 수 있다.


17세기 들어서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은 근대 과학의 합리적 정신과 결부된 인문주의의 형태로 휴머니즘은 발전하였다. 신학자들의 ‘은총의 빛’은 데카르트와 같은 근대이성 철학자들에게 ‘자연의 빛’으로 세계를 인식하였고 인식의 중심에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유진 스미드는 단순히 인식의 도구로서의 인간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의 근원을 종교적 세계관에서 찾으려 했던 것을 위의 예(낙원 뜰에 이르는 길)에서 알 수 있다. 도덕과 미학의 일치를 내세우는 그의 세계관은 상실된 도덕성의 회복(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을 찾고자 한 것이다. 시골의사나 조산원에서 보듯이 기독교의 이웃사랑에 대한 가치가 내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사회의 상실된 인간애를 표출시키려는 그의 상징적 표현을 통해 그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폭력과 가난, 편견으로 가득 찬 우울한 세계에 그는 더 나은 삶의 희망과 믿음을 전하려고 한 것이다. 불안과 공허감과 소외의식이 팽배한 가치혼란과 도덕적 위기의 상황에서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애라는 사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인간 이해는 결국 종교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치 수도사처럼 자신의 소명에 헌신하고, 궁극적인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의 사진들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그는 다큐멘타리 사진에서의 성자요, 순교자적인 종교적 예술가이다. "나의 사진이 말하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그가 외치듯이, 그는 사진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적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3. 휴먼 다큐멘타리 사진가로서의 유진 스미드

다큐멘타리는 '진실'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다큐멘타리가 픽션과 다른 점은 허구가 아닌 사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큐멘타리는 말과 영상, 그리고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의미를 찾는다. 실재에 바탕을 둔 다큐멘타리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사실성(fact)을 기초로 한 다큐멘타리는 강한 리얼리티와 함께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인간의 의식은 현상(phenomenon)에서 본질로 나아가며, 이와 같이 다큐멘타리는 대상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현상을 다각적인 구성을 통해 본질(사실 또는 진실)로 귀결된다. 이때 본질은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이다. 과연 다큐멘타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항상 질문을 던진다. 정직한 저널리즘은 사실인가? 이상적인 것인가? 아니면 피상적인 이야기인가? 포토스토리가 단지 약간의 사실을 담은 오락인가? 어디에 경계선이 있는가? 라이프와 결별을 선언하기까지 그는 저널리즘안에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다큐멘타리는 이성에 호소한다. 실버스톤(Roger Silverstone)이 말한 것처럼, "현실에 대한 보도가 단순히 사실 그 자체만이라면 뉴스다. 특정한 사실보다 어떤 감정이나 논리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드라마다. 이것도 저것도 없이 그냥 감정에만 호소하면 오락이다. 이에 비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바로 다큐멘타리이다"라고 다큐멘타리의 개념을 규정하듯이, 다큐멘타리의 이성은 진실함에서 오는 승리일 것이다. 진실함을 담고 있는 다큐멘타리야말로 어느 허구영화보다도 진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에서 감동은 다름 아닌 메시지인 것이다.


Humanistic Photography의 선구자 유진 스미드는 오늘날 많은 다큐멘타리 사진가들에게 휴머니스트 사진가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다. ICP를 통해 1979년이래 많은 사진가들에게 유진 스미드 상을 수여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을 존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휴먼 다큐멘타리사진은 단지 어려운 사람을 보여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표현하고, 그들의 의지에서 우리는 무언가 배우는 것이다. 동정심이 아니라 그들과의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낄 때 그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을 발견했을 때만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가 "나의 철학은 휴머니즘이며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가진 목소리를 주고받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대상을 소재로 삼거나 작가의 의도대로 연출하는 방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그들과 동질화하려 했던 것이다. 레비나스(Levinas)의 대표적인 저서인 <전체성과 무한(1961)>, <존재와 다른 것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1973)>에서 보면 “타자에 대한 책임”으로서 휴머니즘을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휴머니즘의 근원은 타자이며, 이런 휴머니즘 안에서 타자에 대한 책임과 윤리가 중요한 근거로 파악한다. 타자에 대한 책임과 윤리는 ‘나-타자’의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그의 타자성의 윤리는 인간의 도덕성을 확고히 하는데 있는 것이다. 유진 스미드의 사진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나’로부터 ‘다른 이’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레비나스의 철학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세계-내-존재를 인간 실존의 기본 틀로 보는 하이데거와는 달리 레비나스는 ‘다른 이’와의 윤리적 관계위에서 인간을 적극적으로 이해한다. ‘나-너’, 또는 ‘사진가-피사체’의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용해하는 사랑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는 표정을 통해서 나에게 다가오고 나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결합된다. 그러기에 유진 스미드는 카메라라는 매체를 가지고 타자와의 만남을 전달하며, 타자의 위치에 서서, 다가가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정치, 사회적 문제에서 현실의 문제상황만을 드러내는데 반해 그는 이러한 문제상황들의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문제상황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편견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진실이 편견이 되게 하자(1970년 대규모 회고전, Let truth be the prejudice)”고 사진으로 그는 외치고 있다. 머드 칼렌의 스토리를 통해 당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과 대립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품성을 표현하였다. 폭력과 빈곤, 편견으로 파멸되어 가는 이 세상에 대해 그의 사진은 보다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사랑(인류애, humanism)이라는 메시지(사진)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도덕적(또는 종교적) 메시지는 그의 모든 사진에 생명력을 주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나의 사진은 기껏해야 조그만 힘을 갖지만, 그것들을 통해 나는 제안하고 비평하고 계몽하고 동정적인 이해를 주려고 시도한다. 나는 사진에 대한 열정을 통해 교사로서의 힘을, 외과 의사로서의 치료를, 예능인으로서의 목적을 창조하기 위한 정화를 소리쳐 구하며, 격렬하고 열광적인 이 새로운 세대 내에서 인간의 지위와 보존에 대해 비평을 한다"(The World's 10 Greatest Photographers, Popular Photography, Vol. 42. No. 5, 1978 p. 84)라고 말한 것처럼,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평을 휴머니즘적인 사고에 기초로 하여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유진 스미드는 자신에 관해 "나는 이상주의자이다. 나는 종종 상아탑 속의 예술가가 되었으면 하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소명이기 때문에 나는 그 상아탑을 버려야만 한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나는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 즉 포토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의 기록자인 저널리스트와 사실과는 필연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한 예술가의 두 태도 사이에서 항상 갈등을 느낀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성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성실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예술가(artist, 미적 요소)와 저널리스트(journalist, 메시지 요소)로서의 두 가지 관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예술적 완벽함과 저널의 도덕적 완벽함의 일치를 꾀하였고 스스로 몸소 실천하는 예술가였다. 현대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는 전통적 시각과 예술적인 표현을 융합하여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다큐멘타리 사진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주관적인 이해이든, 객관적이든 이해이든, 인간 존재자체에 대한 관심이든, 자연과 사회에 연관되어진 인간이해이든지 그의 사진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진 스미드는 자기의 작품들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도록 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정력적이고 강렬하게 자신의 삶과 예술을 살아간 것이었다"라고 윌리엄 존슨이 말하듯이, 다큐멘타리 사진의 역사에서 그의 사진이 현재까지도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포토저널리스트를 넘어서 휴먼 다큐멘타리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KrhF5Mwx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