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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16. 2023

조지 오웰의 <1984>

영화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 <1984> 1984년

마이클 앤더슨 감독 <1984>(1956)      

복도에서는 양배추 삶는 냄새와 낡은 매트 냄새가 풍겼다. 복도 한쪽 끝 벽에 컬러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실내에 붙이기엔 지나치게 큰 것이었다. 포스터에는 폭이 1미터도 넘는 커다란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덥수룩한 검은 수염에 마흔 댓 살쯤 되어 보이는 잘생긴 남자 얼굴이었다. 윈스턴은 계단 쪽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경기가 좋을 때도 좀처럼 가동되지 않았다. 그런 터에 지금은 한낮이라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증오주간(Hate Week)에 대비한 절약 운동 탓이었다. 윈스턴의 방은 7층이었다. 서른아홉 살의 그는 도중에 몇 차례나 쉬면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오른쪽 발목에 정맥류성 궤양을 앓고 있기 때문이었다.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P9-10)     


신어(新語)로 ‘진부’라고 하는 진리부는 다른 건물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흰색 콘크리트로 번쩍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그 웅장한 건물은 층마다 계단식으로 쌓아올려진 채 300미터나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흰 건물의 전면에는 윈스턴이 서 있는 곳에서도 훤히 보이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진리부에는 지상에 삼천 개의 방이 있는데, 지하에도 그만한 수의 방이 있다고 한다. 런던에는 외형과 규모가 이와 비슷한 건물이 세 동이나 더 있다. 그런데 이들 건물 때문에 주위의 다른 건물들은 형편없이 작아 보인다. 그래서 승리 맨션 지붕에서는 이 네 건물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다. 이 건물들은 모든 정부기관이 들어서 있는 네 개의 청사이다. 보도, 연예, 교육 및 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平和部),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愛情部),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풍요부(豊饒部)가 그것이다. 이 이름들은 신어로 각각 ‘진부’, ‘평부’, ‘애부’, ‘풍부’라고 한다.   (P12-13)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적인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관중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갈색 머리의 자그마한 여자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꽥꽥 질러댔다. 골드스타인은 오래전(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의 지도급 인물로서 빅 브라더와 거의 맞먹는 지위를 누렸는데,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용케 탈출한 뒤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변절자이자 반동분자였다. ‘이 분 증오’의 프로그램은 날마다 바뀌었지만, 중심인물은 언제나 골드스타인이었다. 그는 최초의 반역자요, 당의 순수성을 처음으로 모독한 인간이었다. 그 후에 일어난 모든 반당죄, 즉 반역과 파업 행위, 이단과 탈선 등은 그의 사주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골드스타인은 아직도 어디 에선가 생존해 있어 음모를 꾸미고 있을 터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바다 건너 어딘가의 나라에서 외국인 후원자의 보호를 받고 있거나 이 오세아니아의 깊은 은신처에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P23)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그는 후회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 보앗자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그런 특이한 낱말을 되풀이해서 쓴 것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더 위험한 일이었다. 잠시나마 그는 망쳐버린 페이지를 찢고 일기를 쓰는 일마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일기 쓰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짓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라고 썼든 안 썼든 다를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일기를 계속 써나가든 그만 포기하든 다를 것이 없으리라. 이래저래 사상경찰은 그를 똑같이 다룰 것이다. 설령 펜을 들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이미 다른 모든 사소한 죄까지 포함한 본질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요컨대 ‘사상죄(thoughtcrime)'를 저질렀던 것이다. 사상죄는 영원히 은폐할 수가 없다. 얼마 동안, 심지어 몇 년 동안 교묘하게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끝내는 발각되고 만다.   (P32)     

당에서는 오세아니아가 유라시아와 동맹을 맺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가 사 년 전에 유라시아와 동맹을 맺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이 어디에 존재흔 것일까? 바로 그의 의식속에, 여차하면 완전히 지워져 버릴 그의 의식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만일 사람들이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 --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과거는 본질적으로 변경 될 수 있음에도 여태 그런 적이 없다. 지금 진실한 것은 영원히 진실하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말살시키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이를 ‘현실 제어’라 칭했는데,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P53)   

  

“....신어의 최종판에는 이 낱말들만 수록될 걸세. 그러니까 좋고 나쁘다는 전체적인 개념은 여섯 개의 낱말(따지고 보면 단 한 개의 낱말이지만)로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지. 어때, 멋지지 않나, 윈스턴? 물론 이건 원래 B.B.(빅브라더)의 아이디어였다네.”

사임은 뒤늦게 생각난 듯 빅 브라더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자 윈스턴의 얼굴에 맥 빠진 듯한 표정이 스쳤다. 사임은 윈스턴이 신어에 흥미가 없다고 간주했다.

“윈스턴, 자네는 신어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군.”

사임이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심지어 자네는 신어로 글을 쓸 때도 여전히 구어를 생각하고 있어. 자네가 <타임스>에 쓴 기사를 종종 읽어봤네. 아주 좋긴 하지만 번역에 불과하더군. 자네는 마음속으로 말 자체가 애매하고 쓸데없는 뜻까지 들어 있는 구어에 집착하고 있어. 낱말을 없애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어휘 수가 줄어드는 언어는 신어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나?”

윈스턴은 물론 알고 있었다.   (P75)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만 있다.(라고 윈스턴은 썼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무산계급에만 있다. 왜냐하면 오세아니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우글거리는 피압박 대중만이 당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은 내부로부터는 전복될 수 없게 되어 있다. 당 내부에 적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모일 수도, 서로 알아볼 수도 없다. 전설적인 형제단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두세 명 정도라면 모를까 구성원 전체가 한자리에 모일 수는 없을 것이다. 주고받는 눈짓이나 목소리의 억양이 수상하다든지 귓속말을 하거나 하면 그것만으로도 반역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힘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따로 음모를 꾸밀 필요도 없다. 그냥 들고일어나서 파리 떼를 쫓는 말처럼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내일 아침에라도 당을 산산조각 내버릴 수 있다. 조만간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산다. 그러나 아직은 ......!  (P98-99)     


윈스턴으로서는 몇 번의 변화가 더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자백서는 본래의 사실이나 날짜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쓰이곤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이미 변조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조될 것이다. 그를 악몽처럼 괴롭히는 것은 ‘왜’ 그 같은 엄청난 사기 행위가 행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얻게 되는 이점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썼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그는 전에도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정신병자는 단지 몇 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 대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믿는 사람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엔 과거는 움직일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어쩌면 이렇게 믿는 사람이 윈스턴 혼자뿐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 혼자뿐이라면 그는 진짜 정신병자일 수 있다.   (P112)     

그는 어린이용 역사책을 집어들고 권두에 실린 빅 브라더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빅 브라더의 두 눈이 최면을 거는 듯 윈스턴을 쏘아보았다. 마치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와 머릿속을 강타함으로써 그의 신념을 위협하고 설득하여 그 자신의 판단으로 얻은 증거를 스스로 부인하게끔 압박하는 것 같았다. 결국 당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발표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 것이다. 조만간 당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그 같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경험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외적 현실의 존재마저 그들의 철학에 의해 교묘하게 부인될 것이다. 이미 이론(異論)에 대한 이론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무서운 것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그들의 견해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게 무서운 것이다. 도대체 둘 더하기 둘이 넷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중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과거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 과거와 외적 세계가 오직 정신 속에만 존재한다면, 그리고 정신 자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P113)      


당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증거를 부인하라고 강요했다. 이것이 당의 가장 궁극적이고도 핵심적인 명령이었다. 그는 자신이 대답할 수 있기는커녕 이해할 수도 없는 미묘한 문제를 논쟁으로 몰고 감으로써 당의 지성인들이 자기를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치 앞에 거대한 힘이 버티고 있기라도 한 듯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그가 믿고 있는 것이 옳다! 당은 틀리고, 그는 옳다. 명백한 것, 순수한 것, 진실한 것은 보호받아야 한다. 자명한 것은 진실이므로 끝까지 사수하라! 이 세계는 굳건히 존재하며, 세계의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허공에 던져진 물체는 지구의 중심부를 향해 낙하한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말하는 투로, 그리고 중요하고 자명한 이치를 밝히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P114)     

“사생활이란 매우 가치 있는 거예요.”

채링턴 씨가 말했다.

“누구나 때로는 혼자 있을 곳을 갖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런 곳을 갖게 되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해요. 그건 상식적인 예의이지요.”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의 존재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듯이 공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P195)     

그 같은 사실도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이래저래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뉴스는 그 내용이 어떻든 모두 거짓말일 뿐인데요.” 그녀는 짜증나서 못 참겠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이따금씩 그는 기록국과 거기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뻔뻔스런 날조 행위에 대해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런 일에도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거짓이 진실이 된다고 해서 자신의 발밑에 무서운 함정이 생긴다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P219)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여졌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물론 나는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이 날조 행위를 하면서도 내게는 이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일단 날조되고 나면 그 어떤 증거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결국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내 기억을 믿어주기나 할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딱 한번 그 사건 이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가졌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있었나요?”    (P220)    

 

“.....물론 우리 평생에 어떤 것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러나 여기저기서 일어날 소규모의 저항 운동은 상상할 수 있어. 만약 그 세력이 점점 불어나서 후세에 몇 마디의 기록이라도 남기게 된다면, 우리가 떠난 뒤에라도 다음 세대가 뭔가를 수행할 수 있을 거야.”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관심 없어요. 저는 지금 우리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  (P221)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윈스턴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그는 잠들지 않고 언제나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텔레스크린을 생각했다. 그들은 밤낮으로 사람들을 감시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한 그들을 얼마든지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영리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P236)     


맨 처음 기계가 등장했을 때,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의 단조로우면서도 고된 노동을 맡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인간의 불평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약 기계가 그 같은 목적에 적절히 부합하도록 사용되었다면 기아, 과로, 불결함, 문맹, 질병 등은 몇 세대 안에 모두 근절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기계가 그런 목적에 사용되지 않았으면서도 가끔 분배하지 않을 수 없는 부를 생산함에 따라서 그 부산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오십 년간 일반 국민의 생활수준이 상당히 향상되긴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의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P266-267)     

늘 전쟁을 했고, 승자는 언제나 패자를 약탈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지배자들은 서로간의 전쟁은 하지 않는다. 전쟁은 이제 지배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결국 ‘전쟁’이란 낱말은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늘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전쟁이 없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신석기 시대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인간에게 가한 압박은 이제 전혀 다른 것으로 대치되었다. 삼 대 열강이 전쟁을 하거나 서로 간섭하는 대신에 저마다의 영토 안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살기로 약속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외적인 위험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각 나라마다 안고 있는 내부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똑같다. 대부분의 당원들은 그저 희미하게 이해할 뿐이지만, 이것이 바로 당이 내건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란 말의 참뜻이다.   (P279)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빅 브라더가 있다. 빅 브라더는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모든 성공, 모든 성취, 모든 승리, 모든 과학적 발견, 모든 지식, 모든 지혜, 모든 행복, 모든 덕성이 그의 지도력과 영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빅 브라더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벽에 나붙은 포스터 속의 얼굴과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보고 들은 것의 전부이다. 그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선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확실치 않다. 빅 브러더란 당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설정한 가공인물이다. 그의 역할은 집단보다 개인에게서 쉽게 느껴지는 사랑과 공포와 존경과 감동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P290)     

“지금 몇 시나 됐나?”

그가 물었다. 앰플포스는 다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네. 내가 체포된 게 이틀 전이었는지 사흘 전이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창문이라도 찾는 것처럼 벽 쪽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에는 밤낮의 차이가 없네. 시간을 알 수 없다. 이 말일세.”    (P323)    

 

“그렇다면 과거는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 거지?”

“기록 속에 존재합니다. 과거는 기록되는 겁니다.”

“기록된다...... 어디에?”

“마음속에요. 인간의 기억 속에 기록됩니다.”

“기억 속이라...... 좋아. 우리가, 즉 당이 모든 기록을 지배하고, 모든 기억을 지배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지배하는 것이 되겠군. 그렇지 않나?”

“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걸 어떻게 정지시킬 수 있습니까? 그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불가항력입니다. 기억을 어떻게 지배하겠습니까? 결국 당신들은 내 기억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윈스턴이 순간적으로 다시 다이얼을 잊고 소리쳤다.   (P346)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가 하지. 바로 이런 걸세. 당은 오직 그 자체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추구하네. 우리는 타인의 행복 따위에는 관심도 없네. 오로지 권력에만 관심을 둘 뿐이지. 재산도, 사치도, 장수도, 행복도 아닐세. 오직 권력, 순수한 권력만 바랄 뿐이네. 순수한 권력이 뭐냐고? 자네도 그게 뭔지 이해하게 될 걸세.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과두정치와 다르네. 우리와 다르든 비슷하든 과거의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고 위선자일세.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당은 그 수법에서는 우리와 매우 흡사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동기를 인정할 만한 용기가 없었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만 권력을 장악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꾸며댔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믿기까지 했네. 우리는 그들과 다르네.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법이지.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이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박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박해일 뿐이네.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말일세. 그처럼 권력의 목적도 권력 그 자체이네.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나?”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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