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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25. 2023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2022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79),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30)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칸토레크는 우리 담임 선생이었다. 회색 프록코트를 입고 다니는 엄하고 작은 키의 남자로 얼굴은 꼭 서생원처럼 생겼다. 체격은 <클로스터베르크의 공포>라 불리는 히멜슈토스 하사와 거의 똑같았다. 세상의 불행이 종종 키 작은 사람들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다. 이들은 키 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왕성하고 융통성은 부족하다. 나는 늘 키 작은 중대장이 지휘하는 중대에 들어가는 것을 피해 왔다. 그런 자들은 대체로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는 자들이다. 

칸토레크는 체육시간에 우리에게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더니 급기야는 우리 반 친구들을 모조리 이끌고 지역 사령부에 가서 자원입대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그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번득이는 안경알 너머로 우리를 쳐다보며 감동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제군, 여러분은 함께 갈 거지?”

이런 교육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끼 주머니 속에 준비해두고 있다가 끄집어내기 일쑤이다. 심지어는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놓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이런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P19)     

이들은 열여덟 살의 우리들을 성인 세계와 중개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했다. 노동과 의무, 문화와 진보의 세계, 즉 미래의 세계로 말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들을 조롱하기도 했고, 이들을 속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권위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속에서 더 깊은 통찰 및 인간적인 지식과 결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동료가 처음으로 죽는 것을 보자 우리의 확신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우리 또래가 어른들보다 더 정직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점은 상투어를 사용하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뿐이다. 처음으로 쏟아지는 포탄을 뚫고 돌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포화를 맞으면서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의 세계관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리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역자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거나,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이런 표현들을 쓰곤 했다. 우리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향을 사랑했다.   (P21)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띄자 나는 그의 소매를 꽉 붙잡고 말한다. “빨리 갑시다, 안 그러면 케머리히가 죽는단 말이에요.”

군의관은 나의 손을 뿌리치고 옆에 서 있는 군병원 조수에게 묻는다. “어찌 된 일이지?”

조수는 이렇게 말한다. “26번 침대, 넓적다리 절단 환자입니다.”

군의관은 퉁명스럽게 말한다.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알겠나. 오늘만 해도 다리를 다섯 개나 잘랐는데.” 그는 나를 밀치고는 조수에게 말한다. “가서 봐줘라.” 그러고는 수술실로 급히 가버린다. 

나는 위생병과 같이 가면서 분노에 치를 떤다. 그 남자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침 5시부터 줄곧 수술이 있었어. 좋아, 자네에게 말해 주지. 오늘만 해도 열여섯 명이 죽었어. 자네 친구는 열일곱 번째지. 금방 스무 명까지 찰지도 몰라.”   (P41)     


내게 전선이란 모골이 송연한 소용돌이이다. 잔잔한 물에 소용돌이가 일면 그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미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느껴진다. 그리하여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하고 서서히, 소용돌이에 빨려 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땅과 공중에서 방어 세력이 우리에게 몰려든다. 그중 땅에서 오는 게 가장 많다. 뭐니 뭐니 해도 군인에게 땅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다. 군인이 오랫동안 땅에 납작 엎드려 있을 때, 포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얼굴과 수족을 땅에 깊이 파묻을 때 땅은 군인의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이며 어머니가 된다. 군인은 묵묵 말없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땅에 대고 자신의 두려움과 절규를 하소연한다. 그러면 땅은 그 소리를 들어 주면서 다시 새로 10초 동안 그에게 생명을 주어 전전하게 한다. 그러고는 다시 그를 붙잡는데, 때로는 영원히 그러고 붙잡고 있기도 한다.   (P64)     

“우리가 고향에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야?” 이렇게 말한 뮐러 자신도 당혹스러워한다. 

크로프는 어깨를 으쓱한다. “난 모르겠어, 그때가 되면 뭐 어떻게 되겠지.”

우리는 사실 모두 속수무책이다.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묻는다. 

“난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크로프가 피곤하다는 듯이 말한다. “언젠가는 너도 죽게 되겠지. 그러면 다 부질없는 짓이야. 난 우리가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알베르트, 이런저런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잠시후 나는 말하며 등을 대고 돌아눕는다. “평화라는 말을 들으면, 그리고 정말 평화가 온다면, 난 무언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어져.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여기서 온갖 역경을 이겨 낸 만큼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말이야.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하지만 내가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온 것, 즉 직업이니 학업이니 월급같은 온갖 것을 생각하면.... 토할 것 같아. 그런 것은 늘 있어 왔기에 역겨워. 그러니까 난 아무것도 찾지 못하겠어. 아무것도, 알베르트.”

갑자기 나에게는 모든 것이 전망이 없고 절망적인 것으로 비쳐진다.   (P97)     


알베르트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다. “전쟁이 우리 모두의 희망을 앗아 가버렸어.”

사실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상대로 싸울 의지가 없어졌다. 우리는 도피자들이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과 현존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터진 유탄은 바로 우리의 심장에 명중했다. 우리는 활동, 노력 및 진보라는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P98)     

포탄에 맞는 것도 우연이듯이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연이다. 포탄으로부터 안전한 엄폐부에서도 나는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엄폐물이 없는 전쟁터에서 열 시간 동안 포탄이 비 오듯 쏟아져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할 수 있다. 어떤 군인이든 온갖 우연을 통해서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리고 군인이면 모두 이런 우연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P111)     


우리에게 청춘의 풍경이 다시 주어진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일지도 모른다. 청춘이 우리에게 부여한 저 부드럽고 은밀한 힘이 다시는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추억 속에 살아 있고, 추억 속에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추억을 되살리고, 추억을 사랑하며, 추억의 모습에 감명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전사한 동료의 사진을 보고 <이것의 그의 특징이고, 이것이 그의 얼굴이다>라며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지냈던 날들이 우리의 추억 속에서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게 전우 자신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더는 추억과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청춘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인식해서 우리가 이끌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형제 관계라는 공통된 감정에 우리가 이끌린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를 격리시켰고, 우리 부모의 세계를 늘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늘 아련하게 청춘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어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P133)     

이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한다. 이들에게는 걱정, 목표, 소망이 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그들과 똑같이 파악할 수 없다. 때때로 나는 그들 중의 한 명과 작은 음식점에 앉아,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나의 유일한 낙임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그들은 물론 내 말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말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 것이다. 이들은 내 말에 공감하지만 늘 절반밖에 공감하지 않는다. 이들의 나머지 절반은 생각이 다른 데 가 있다. 이들의 생각이 이렇게 분산되어 있으니, 아무도 온몸으로 나의 말에 공감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나 자신도 나의 의견을 그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P181)     

우리가 모르는 몇몇 사람들이 어딘가의 탁자에서 어떤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우리의 최고의 목적은 평상시 같으면 세상의 멸시를 받고, 최고형을 받을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이곳에 와서 어린이 같은 얼굴과 사도 같은 수염을 지닌 이 조용한 사람들을 직접 본다면 누가 이들을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적인 것 이상으로 하사관이 신병에게, 고등학교 선생이 학생에게 더욱 고약한 적이다. 그런데도 만일 이들이 풀려난다면 우리는 다시 이들을, 이들은 우리를 쏠 것이다.

나는 소름이 끼친다. 여기에서 더 이상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가는 나락에 빠져들게 된다. 아직은 그럴 시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슴에 간직한 채 묻어 두고 싶다. 내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이것이 내가 참호 속에서 생각해 낸 목표이자 위대한 것이고 일회적인 것이다. 모든 인간성이 이처럼 파탄 난 후에 내가 존재의 가능성으로 찾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이 공포의 세월을 보상할 만한 앞으로의 삶의 과제가 아닐까?    (P205)     


우리 아버지의 삶은 어머니 병구완하느라 다 지나갔다. “수술비가 얼마나 드는지 그것만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말한다. 

“안 물어봤어요?”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어. 그럴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가 의사 선생님이 불친절해지면 안 되니까 그러지. 너의 어머니가 수술해야 하는데.”

그래요. 나는 쓰라린 마음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래요. 가난한 사람들은 다 그렇죠. 이들은 감히 수술비 같은 것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걱정할 뿐이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미리 값을 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죠. 이들에게는 의사 선생님도 불친절하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보니 붕대 값도 만만치 않더라.” 아버지가 말한다.

“의료보험으로 좀 해결할 순 없어요?”

“어머니가 이미 너무 오래 아파서.”      (P208)     

“국가가 없는 고향은 생각할 수 없어.”

“맞는 말이야. 하지만 좀 생각해 봐. 우리들은 거의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 직공이나 하급 공무원이야. 그럼 무엇 때문에 프랑스의 열쇠공이나 구두 수선공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는 거니? 아니야. 모두 정부가 하는 일일 뿐이야. 난 군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인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대부분의 프랑스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일 거야.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고 전쟁에 끌려 나온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전쟁이란 게 있는 거지?” 차덴이 묻는다. 

카친스키는 어깨를 추스른다. “전쟁으로 분명 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 거지.”

“뭐, 나는 그렇지 않은데.” 차덴이 히죽이죽 웃으며 말한다. 

“물론 너는 아니지, 여기에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지.”

“그럼 대체 누가 득을 본다는 거야?”    (P216)     


오랜 침묵이 계속된다. 나는 말을 하고 싶어져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이렇게 말한다. “이봐, 전우, 나는 자네를 죽이고 싶지 않았어. 자네가 이곳에 또다시 뛰어든다 하더라도 자네가 얌전히만 있으면 자네를 죽이지 않을 거야. 자네는 전에 나에게 하나의 관념이자 내 머릿속에 살아 있다가 결단을 하게 만든 하나의 연상에 불과했어. 내가 찔러 죽인 것은 이러한 적이라는 연상이야. 지금에야 자네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알게 되었어. 난 자네의 수류탄을, 자네의 총검을, 자네의 무기를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나는 자네의 얼굴을 보고 자네의 아내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있어. 전우여, 부디 나를 용서해 다오! 우리는 이러한 점을 늘 너무 늦게야 깨닫곤 하지. 왜 우리에게 일러 주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자네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쌍한 개란 사실을, 자네들 어머니들도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근심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죽음과 고통을 똑같이 두려워하며 똑같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말이야. 부디 용서해 다오, 전우여, 어째서 자네가 나의 적이 되었던가. 우리가 이런 무기와 군복을 벗어던지면 카친스키나 알베르트처럼 자네도 나의 벗이 될 수 있을 텐데. 전우여, 나의 목숨에서 20년을 떼어가서 일어나 다오. 아니 더 많은 햇수라도 가져가 다오. 내가 살아 있다 한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P234-235)    

 

나는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되는 파릇파릇한 젊은이다. 하지만 내가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뇌의 심연과 더불어 절망과 죽음, 불안,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련의 피상적인 모습밖에 없다. 나는 여러 민족들이 적대 행위에 내몰리며, 말없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우둔하고도 유순하고 순진무구하게 서로를 죽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들이 무기와 말을 발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더욱 교묘하고도 오랫동안 지속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나와 나이가 같은 모든 젊은이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의 세대의 젊은이들은 이를 나와 함께 체험하고 있다. 우리가 언젠가 일어서서 우리의 아버지들 앞으로 걸어가 책임을 추궁한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만약 전쟁이 없는 어떤 시절이 온다면 그들은 우리보고 무엇을 하라고 그럴까? 수년 동안 우리가 해온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받은 최초의 직무였다. 우리가 삶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다. 죽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P275)     


우리는 이제 더는 날짜를 세지 않는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어서, 포탄이 터질 때 얼어붙은 흙덩이가 거의 파편만큼이나 위험했다. 이젠 나뭇잎이 다시 파릇파릇하다. 우리는 전선과 막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생활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런 생활에 벌써 이력이 났다. 전쟁이란 암이나 결핵, 유행성 감기나 이질처럼 죽음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된다. 하지만 전쟁의 경우에는 훨씬 더 자주, 더 다양한 모습으로, 더욱 잔혹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생각은 점토와 같아서, 나날의 변화에 의해 반죽된다. 우리가 쉬고 있을 때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포화 속에서 누워 있을 때는 생각이 죽어 있다. 전쟁터는 바깥에도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도 있다.   (P281)     

삶에 대한 모든 표현은 오로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야 하고, 불가피하게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타의 모든 것은 불필요하게 힘을 낭비한다고 해서 배제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해주는 유일무이한 방식이다. 조용한 시간에 과거의 불가사의한 반사광이 마치 흐릿한 거울처럼 나의 현존재의 윤곽을 비춰 줄 때, 나는 종종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나 자신과 대면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삶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가 바로 이러한 형식에 적응한 사실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다른 표현들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반면, 오직 삶만은 죽음의 위협에 맞서 계속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본능이라는 무기를 주기 위해 우리를 생각하는 동물로 만들었다. 명료하고 의식적인 사고를 할 때 우리를 덮치는 공포로부터 우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삶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둔탁하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구이가 고독의 심연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삶은 우리 마음속에 동료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사람은 우리가 야수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밀려드는 허무의 공격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극도로 피상적일 뿐만 아니라 닫혀 있는 가혹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어쩌다가 어떤 사건이 불꽃을 던져 줄 뿐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놀랍게도 무겁고도 끔찍한 동경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P283-284)    

 

탱크는 조롱의 대상에서 중요한 무기로 바뀌었다. 철판으로 몸을 두르고 기다란 열을 지어 굴러오는 이들의 모습은 다른 어느 것보다 전쟁의 공포를 구체화시켜 준다.

우리에게 집중 포화를 퍼붓는 대포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공격하는 적의 제일선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탱크들은 기계들이다. 탱크의 쇠사슬을 두른 벨트들이 전쟁처럼 끝없이 굴러온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포탄 구덩이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가 멈추지 않고 다시 기어 올라오는 모습은 가차 없는 파괴 그 자체이다. 이는 으르렁거리며 포연을 뿜어 대는 장갑차들의 함대이며, 포격에도 끄떡없이 사상자들을 무자비하게 으깨 버리는 강철로 된 짐승들이다. 얇은 피부를 가진 우리는 이들 앞에서 잔뜩 움츠러든다. 이들의 육중한 무게 앞에서 우리의 팔은 빨대가 되고, 우리의 수류탄은 성냥개비가 된다.   (P292)   

  

1918년 여름 -- 굳게 입을 다물고 전선으로 떠나는 순간보다 더 견딜 수 없는 때는 없었다. 휴전과 평화에 관한 거칠고 자극적인 풍문이 떠돈다. 그러한 소문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키고, 이전보다 전방으로 가는 길을 더 힘들게 한다!

1918년 여름 -- 파리한 얼굴들이 진창에 나뒹굴고, 양손은 경련을 일으킨 채 꼭 쥐고 있는 포화의 순간보다 이전 생활이 더 쓰라리고 참혹한 적이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지금은 아직 아니야! 최후의 순간이나 지금은 아직 아니야!

1918년 여름 -- 불타 버린 전쟁터 위를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왜?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     (P295)     


"이봐 카친스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해. 네가 다시 돌아오긴 전에 정말 평화가 오면 말이야.“

“내가 이렇게 뼈가 박살이 났는데도 <출정 가능> 판정을 받을 것 같니?” 그는 신랄하게 힐난한다. 

“푹 쉬면 다 나을 거야. 관절은 괜찮으니까 말이야. 어쩌면 좀 다리를 절지는 모르지.”

“나에게 담배 한 개비 좀 줘.” 카친스키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 나중에 함께하게 될지도 몰라. 카친스키.”

나는 무척 슬퍼진다.   (P298)     

나는 일어선다.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하다. 몇 달이 지나든 몇 년이 흐르든 이제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런 것에 더 이상 개의치 않는다. 나는 너무나 외롭고 아무런 기대마저 없으므로 두려움 없이 이런 것과 대면할 수 있다. 이런 수년 동안 나를 지탱해준 삶이 아직 나의 두 손과 두 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이런 삶을 극복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속의 <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간에 그 삶은 자신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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