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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29. 2023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년

진정한 할리우드 흥행대작, 30년간 흥행 순위 1위를 고수한 영화, 쉬는 시간까지 있었던 222분의 긴 러닝타임, 1930년대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 425만 달러, 12명의 참여 작가와 3명의 감독(조지 쿠커, 샘 우드, 빅터 플레밍) 손을 거쳐 완성, 1,400명의 여배우가 인터뷰를 하고 400명의 대본 오디션을 거쳐서 선발한 배역 스칼렛 오하라, 여주인공 비비안 리가 상대 배우 클라크 게이블의 입 냄새 때문에 키스 신을 꺼렸다는 영화,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이다. 2021년 4월 28일 재개봉했다.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해했고, 마침내 공모 끝에 마거릿 미첼의 유족에 의해 공식인정된 알렉산드라 리플리(1934~2004)라는 작가에 의해 1992년에 후속작인 '스칼렛'이 쓰여졌다.      

[1]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이 아니었지만, 탈턴 쌍둥이 형제처럼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프랑스 형통을 이어받은 해안 지역 귀족 집안 출신인 어머니의 섬세한 용모와 다혈질 아일랜드계인 아버지의 묵직한 인상이 지나치게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턱이 뾰족하고 턱뼈가 각이 진 얼굴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은 담갈색이 전혀 섞이지 않은 엷은 초록빛이었으며, 빳빳하고 검은 속눈썹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눈꼬리는 약간 치켜 올라갔다. 그 눈 위로는 짙고 검은 눈썹이 비스듬히 올라가서, 목련처럼 하얀 피부에 산뜻하고 비스듬한 선을 이루었는데 -- 남부의 여자들은 이런 피부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고, 뜨거운 조지아 태양으로부터 그런 살갗을 보호하려고 둥근 모자와 베일과 장갑을 동원했다.   (P11)     


애슐리가 멜라니 해밀턴과 결혼하다니!

아, 그럴 리가 없어! 쌍둥이들이 잘못 알았으리라. 그들이 그녀에게 또다시 장난을 쳤으리라. 애슐리는 그럴 리가, 그 여자를 사랑할 리가 없었다. 멜라니처럼 생쥐 같고 하찮은 여자를 사랑하다니. 그럴 수가 없었다. 스칼렛은 어린애처럼 빈약한 멜라니의 몸매와, 거의 못생겼다고 할 만큼 평범한 심장 모양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자 혐오감을 느꼈다. 그리고 애슐리는 몇 달 동안이나 그 여자를 만나지 못했으리라. 그는 <열두 참나무 집>에서 작년에 열었던 파티 이후로 애틀랜타에는 두 번 이상 나간 적도 없었다. 그렇다. 애슐리는 -- 아, 그녀가 잘못 알았을 리가 없으니까! -- 스칼렛을 사랑했기 때문에, 멜라니를 사랑할 리가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그녀, 스칼렛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분명히 알았다!   (P42)    

 

아, 왜 그는 그토록 멋진 금발이며, 그토록 초연하고 예절에 빈틈이 없고, 유럽과 책과 음악과 시와, 그녀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들에 관한 얘기만 늘어놓아 그토록 미칠 정도로 사람을 따분하게 하고 -- 그런데도 왜 그토록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밤이면 밤마다, 어두컴컴한 앞쪽 포치에서 그와 함께 앉아 있다가 잠자리에 들면, 스칼렛은 몇 시간씩이고 초조하게 몸을 뒤채었으며, 다음에 만나면 틀림없이 애슐 리가 구혼을 하겠거니 하는 생각에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하지만 다음번은 왔다가 흘러갔어도, 그녀를 사로잡은 열병이 더 심해지고 더 뜨거워졌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런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그를 원했고,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라 농장의 하늘에서 불어 대는 바람과 타라에서 구불구불 흘러가는 누런 강물처럼 솔직하고도 단순했던 그녀는 죽는 마지막 날까지 복잡한 일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으리라. 그리고 지금, 난생처음으로, 그녀는 복잡한 성격의 인물을 접하게 되었다.

그 까닭은 애슐리가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행동보다는 사고를 하느라고, 전혀 현실 감각을 내포하지 않은 화려한 빛깔의 꿈을 엮어 내느라고 시간을 보내는 그런 기질의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지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마음속의 세계에서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마지못해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기는 했어도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는 삶을 둘러보았고, 그 삶으로 해서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는 세계와 거기에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가볍게 관심을 돌리고는 음악과 책과 보다 훌륭한 그의 세계에 탐닉했다.

그의 이성이 그녀의 세계와는 딴판이었는데도 왜 애슐리가 그녀를 사로잡았는지 스칼렛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지닌 신비 그 자체가 자물쇠도 없고 열쇠도 없는 문처럼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에 관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양상들은 그녀로 하여금 그를 더욱 사랑하게만 만들었고, 이상하고도 신중한 그의 애정 표현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독차지해야 되겠다는 그녀의 결심을 더욱 굳혀 주는 역할만 했다. 너무 어리고 지나치게 응석받이로 자랐기 때문에 패배가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던 그녀는, 애슐리가 언젠가는 청혼을 하리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청천벽력 같은 무서운 사실이 눈앞에 닥쳤다. 애슐리가 멜라니와 결혼하다니! 그럴 리가 없어!  (P48-49)    

    

그리고 그 무렵에 남부를 휩쓸던 번영의 거센 물결이 이 고장의 온갖 양상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온 세상이 목화를 구하려고 야단이었으며, 비옥하고 한 번도 경작되지 않은 카운티의 새로운 땅은 목화를 풍부하게 생산했다. 이 고장에서는 목화가 심장의 고동이었고, 목화를 심고 따는 일은 붉은 대지에서 심장의 확장 수축 작용이나 마찬가지였다. 곡선을 그린 밭고랑들로부터 부(富)가 쏟아져 나왔고 또한 오만함도 머리를 들었으니, 그 오만함은 푸른 숲과 양털처럼 새하얗고 광활한 땅에서 솟아났다. 목화로 한 대(代)에 부자가 된다면, 다음 대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더 부유해질 것인가!   (P93)         

 

<그이는 내가 브렌트나, 스튜어트나, 케이드를 사랑하는 줄 알고 상심했겠지. 그리고 아마 그이는 나를 차지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멜라니하고 결혼해서 식구들이라도 기쁘게 해주자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만일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듣기만 한다면 -- .>

변덕스러운 그녀의 기분은 지극히 깊은 좌절감에서 흥분된 행복감으로 치달았다. 애슐리의 과묵함. 그의 이상한 행동을 설명하는 해답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이는 몰랐다! 그녀의 허영심은 무엇인가 믿으려는 욕망의 도움을 받고 도약했으며, 상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진실을 알기만 하면 애슐리는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돌아오리라. 그녀가 할 일이라고는 --.

<아!> 수그린 이마를 손톱으로 후벼 파듯 움켜잡고 그녀는 황홀하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다니 나 같은 바보가 또 어디 있을까! 사랑한다는 걸 알면 애슐리는 그 여자하고 결혼하지 못해! 어떻게 그러겠어?>   (P114)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분명히 스칼렛 혼자뿐은 아닌 모양이어서, 몇몇 청년이 불쾌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존 윌크스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남자는 그으 손님이고 더구나 숙녀들도 있는 자리임을 일깨워 주려는 듯, 태연하게 그러나 재빨리 레트 버틀러에게로 되돌아갔다. 

“우리들 대부분의 남부인은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말이죠.” 레트 버틀러가 얘기를 계속했다. “우린 여행도 충분히 하지 못하려니와, 여행을 해도 얻는 바가 많지 않아요. 하기야 물론 여러분들이야 여행을 많이 했죠. 하지만 여러분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유럽과 뉴욕과 필라델피아, 그리고 물론 숙녀들께서는 새러토가를 다녀오셨을 거예요.”(그는 정자나무 밑에 모인 여자들에게 약간 머리를 숙여 보였다) “여러분은 호텔과 박물관과 무도회와 도박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남부처럼 좋은 곳이 없다고 믿으며 고향으로 돌아오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나는 찰스턴 태생이면서도 지난 몇 년을 북부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왜 더 이상 찰스턴에서 살지 않았는지를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훤히 알고 있음을 깨달은 듯, 그리고 그들이 사실 안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 모두가 보지 못한 것을 나는 많이 봤습니다. 먹을 식량에 몇 달러만 얹어 주면 기꺼이 양키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나설 수천 명의 이민자들. 생산 공장. 주물 공장. 조선소. 철과 석탄 광산 -- 이런 자산이 우리에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들이 가진 자산이라고는 목화와, 노예와, 교만함뿐입니다. 그들은 한 달이면 우리를 해치울 거예요.

한순간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레트 버틀러는 저고리 호주머니에서 고급 아마포 손수건을 꺼내 소매에 묻은 흙을 여유만만하게 털었다. 그러자 모인 사람들 중에서 불길하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일었고, 정자나무 밑에서는 방금 흔들어 놓은 벌통처럼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아직도 뺨에서 화끈거리는 분노의 뜨거운 피를 느끼면서도 스칼렛의 현실적인 머릿속에서는 무엇인가 이 남자의 말이 옳고, 상식에 맞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스칼렛은 공장이라고는 구경조차 못했고, 공장을 봤다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더구나 수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파티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행동은 신사다운 짓이 아니었다.   (P177-178)     


그녀는 옆에 놓인 작은 탁자로 손을 떨구고는, 방긋 웃는 두 아기 천사를 조각한 작은 도자기 장미 꽃병을 만지작거렸다. 방안이 어찌나 고요한지 그녀는 침묵을 깨뜨리려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무슨 짓인가 저지르지 않고서는 꼭 미쳐 버릴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꽃병을 집어 방의 건너편 벽난로를 향해 냅다 던졌다. 꽃병은 소파의 높다란 등받이를 겨우 넘어 대리석 벽난로 선반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이거 너무하신데.” 소파에 푹 파묻혀 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로 하여금 이토록 놀라거나 두렵게 했던 상황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다. 입이 너무 바싹 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릎에서 기운이 빠져 스칼렛이 겨우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 몸을 지탱하려니까, 소파에 누웠던 레트 버틀러가 몸을 일으키더니, 일부러 과장해서 예의를 차리며 그녀에게 절을 했다. 

“그런 대화 때문에 오후의 낮잠이 방해를 받은 것만 해도 그런데, 왜 내 생명까지 위험에 빠져야 하나요?”

그는 현실이었다. 그는 유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자들이여 굽어살피소서. 그는 얘기를 다 들었다! 그녀는 기운을 차려 억지로나마 위엄을 되찾았다.

“거기 계시다는 기척이라도 해주셨어야죠.”

“그렇습니까?” 그의 하얀 이빨이 반짝거렸고, 대담하고도 검은 눈은 그녀를 보고 웃었다.  (P190-191)     

<이 사람은 돈이 굉장히 많아.> 그녀는 머리가 빨리 돌아갔고, 어떤 생각과 계획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 남자에게는 나를 귀찮게 괴롭힐 부모도 없고, 우린 애틀랜타에서 살게 되지, 그리고 만일 내가 당장 그와 결혼한다면, 내가 애슐리에게 관심이 조금도 없고 -- 그냥 불장난 삼아 그를 사귀었음을 애슐리에게 증명하는 셈이야. 그리고 우리들이 결혼하면 허니는 죽고 싶겠지. 그 애는 절대로, 절대로 애인을 또다시 구하지 못할테고, 모두들 그 애를 보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웃어 대겠지. 그리고 찰스를 그토록 사랑하는 멜라니도 속이 상하겠고. 그리고 스튜와 브렌트도 크게 상심하고 -- .> 스칼렛은 말이 많은 누이 동생들을 두었다는 이유 말고는 왜 그녀가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은지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멋진 마차를 타고, 예쁜 옷을 잔뜩 가지고, 내가 살 집도 따로 있는 몸이 되어 이곳으로 찾아오면, 그들은 약이 잔뜩 오를 거야. 그러면 그들은 절대로, 절대로 나를 비웃지 못해.>  (P200)     


지난 한 해동안 그녀는 자신의 근심 걱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고, 전쟁 얘기라면 무턱대고 너무나 따분해했기 때문에, 전투가 처음 시작된 순간부터 애틀랜타가 변모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화 시에 도시를 상업의 교차점으로 만들었던 철도가 이제는 전시를 맞아 애틀랜타를 중대한 전략적 요충지로 바꿔 놓았다. 애틀랜타와 이곳의 철도는 멀리 떨어진 전선으로부터 남부 동맹의 두 군데, 그러니까 버지니아와 테네시의 군대를 서부와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애틀랜타는 또한 그들 군대를 그들에게 보급품을 조달하는 남부의 내륙 지방과도 연결시켰다. 이제 전쟁의 필요성에 따라 애틀랜타는 생산 중심지가 되었고, 전선의 병력을 위한 식량과 보급품을 수집하는 남부의 주요 병참 요충 겸 병원 기지가 되었다.  (P228)     


멜라니가 보여 준 처신도 따지고 보면 남부 처녀들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배우는 올바른 행실에 지나지 않아서 --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편하고 자신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도록 해주었을 따름이었다. 남부의 사교계를 그토록 즐겁게 만든 힘은 바로 이런 행복하고도 여성적인 결탁이었다. 여자가 함부로 말대꾸를 하지 않아 자존심이 상처를 받지 않아서 남자들이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안전한 곳이라면 당연히 여자들이 살기에도 아주 쾌적한 곳임을 그들은 알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자들은 그래서 남자들로 하여금 자만심을 갖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흡족해진 남자들은 흠모와 겸양을 여자들에게 아낌없이 표현하여 보상했다. 이지적인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무엇이나 다 기꺼이 내주었다. 스칼렛도 멜라니와 똑같은 마력을 구사하기는 했지만, 치밀한 기교와 계산된 효과에 의존한다는 점이 달랐다. 두 여자 사이의 차이는, 비록 한순간 동안이더라도 멜라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욕망에서 우러났기 때문에 상냥한 찬사의 말을 해주었지만, 스칼렛은 오직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만 그랬다.    (P245)    

 

그곳에 모인 여자들은 스칼렛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으로 활활 타올랐다. 그런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당황하고 답답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쩐 일인지 행사장은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았고 처녀들이 별로 멋지게 여겨지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얼굴에서 아직도 빛나는 듯싶은 남부의 대의명분에 대한 헌신의 찬란한 열기는 뭐랄까. 그냥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놀라서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자아의식, 섬광처럼 불현 듯 터득한 각성을 통해, 스칼렛은 그들이 대의명분을 위해 모든 재산과 그들 자신을 희생하려는 욕구,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강렬한 자부심에 공감하기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이냐, 아냐! 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돼!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 죄악이야>라는 공포를 미처 느끼기도 전에, 스칼렛은 남부의 이념이란 그녀에게는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광신적인 표정이 서린 눈으로 늘어놓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따분함을 느꼈다. 그녀에게는 남부의 이념이 신성하지 않았다. 전쟁은 거룩한 일처럼 여겨지지도 않았고, 남자들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돈이 많이 들어갈 뿐 아니라, 사치스러운 물건을 구하기 어렵게 만드는 골칫거리일 따름이었다. 스칼렛은 밤낮으로 뜨개질을 하고, 한없이 붕대를 감고, 손톱의 껍질이 거칠어지도록 조면(繰綿)을 뽑기에도 진력이 났다. 그리고, 아, 그녀는 병원이라면 정말로 지긋지긋했다!  (P269)


비록 우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우리들이 꿈꾸던 목화 왕국을 이룩한다고 해도, 우리들은 마찬가지로 패배한 셈인데, 그것은 우리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겠고, 조용했던 과거의 삶은 사라져 버리겠기 때문이라오. 전쟁에서 승리하면 온 세상이 목화를 구하려고 우리들에게 몰려와 아우성을 치겠고, 우리들은 마음대로 값을 정할 입장이 되겠죠. 그러면, 바로 이것이 내가 걱정하는 바이지만, 우리들은 양키들과 똑같아지고, 지금 우리들이 경멸하는 그들의 상업주의에 -- 돈을 벌려는 극성과 욕심에 우리들이 물들게 되리라고 난 생각해요. 그리고 만일 우리들이 패배하면, 멜라니. 우리들이 패배하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오!

나는 위험이 닥치거나, 포로가 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불가피하다면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경우까지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일단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옛 삶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게 될까 봐 심히 걱정이 된다오. 그리고 나는 그 옛 삶의 한 부분이라오. 나는 살인이 판치는 미쳐 버린 현재의 한 부분은 아니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내가 어떤 미래에도 적응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앞서요. 당신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그 이유는 당신과 내가 같은 피를 타고났기 때문이오. 미래가 무엇을 가져다줄지를 나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과거만큼 아름답거나 만족스럽지는 않을 거요.   (P332-333)     


레트는 여유만만해 보였고, 목소리는 따분한 듯 느긋한 어조였다.

“전쟁이란 다 신성합니다.” 그가 말했다.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죠. 만일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그 전쟁을 성스럽게 꾸며 놓지 않았다면, 전쟁에 나가서 싸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쟁터에서 싸우는 멍청이들에게 웅변가들이 어떤 열렬한 표어를 제시하든지 간에, 그리고 전쟁에 어떤 숭고한 목적의식을 부여하든지 간에, 전쟁을 하는 이유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돈이라는 이유죠. 모든 전쟁은 사실상 돈 싸움입니다. 하지만 그런 진실을 깨닫는 사람이 너무나 드물어요. 사람들은 나팔과 북 소리, 그리고 고향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웅변가들의 멋진 연설 때문에 다른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아요. 때로는 사람들이 <이단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켜라!>라고 외칩니다. 때로는 <천주교를 타도하라!>고 절규하는가 하면, 때로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며, 또 어떤 때는 <목화와, 노예 제도와, 주권을 지키자!>라는 구호로 바뀝니다.   (P363)     


스칼렛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위안을 얻고 싶어서 그녀의 손바닥에 얹은 멜라니의 손을 잡아 주지도 않았다. 그녀는 애슐리가 아직도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오직 그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서 그의 편지를 읽었었다. 그런데 멜라니는 스칼렛의 눈에 거의 띄지도 않았던 구절들에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애슐리처럼 철저하고 완벽한 사람이 레트 버틀러 같은 그런 타락한 인간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스칼렛은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전쟁의 진실을 파악했지만, 애슐리는 그래도 기꺼이 죽으려 하고 레트는 그렇지 않아. 내 생각엔 그것이 레트가 똑똑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그녀는 애슐리에 대해서 자기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데 대해서 두려움을 느껴 잠깐 생각을 멈추었다. <두 사람 다 불쾌한 진실을 보기는 하지만, 레트는 그것을 정면에서 직시하고 솔직하게 얘기함으로써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애슐리는 그것을 직시하면 견디기가 힘들겠지.> 

뭐가 뭔지 통 모를 일이었다.   (P369)     


“오, 애슐리, 난 기꺼이 --”

그녀는 <당신이 원한다면 난 내 심장이라도 꺼내서 당신에게 덮어 드리겠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어요!>라고 말끝을 맺었다. 

“정말 그러겠어요?” 그가 물었고, 음울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서 조금 걷혔다.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줄 일이, 스칼렛, 멀리 떠난 내 마음을 훨씬 편하게 해줄 일이 있어요.”

“그게 뭔데요?” 무슨 엉뚱한 약속이라도 기꺼이 할 각오가 된 그녀가 기뻐서 물었다.

“스칼렛, 내 대신 멜라니를 돌봐 주겠어요?”

“멜리를 돌봐 줘요?”

씁슬한 실망으로 그녀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P429-430)     

                 

[2]

“집으로 가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집이라뇨? 타라 말인가요?”

“네, 그래요! 타라요! 오, 레트, 우리 서둘러야 해요!”

그는 마치 정신이 나갔느냐는 듯한 눈초리로 스칼렛을 쳐다 보았다.

“타라요? 하느님 맙소사, 스칼렛! 존즈버러에서 하루 종일 전투가 벌어졌다는 걸 몰라요? 러프 엔드 레디에서 앞뒤로 15킬로미터에 걸쳐 전투가 치열했고, 존즈버러에서는 시가전까지 벌어졌어요. 양키들은 지금쯤 타라로 이동해서 카운티에 좍 깔렸을텐데요. 그들의 현 위치가 어딘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타라 부근 어디쯤이겠죠. 집으로 갈 수는 없어요! 양키 군대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야 하니까요!”

“난 집으로 가겠어요!” 그녀가 소리쳤다. “난 가겠어요! 난 가겠다고요!”   (P592)    

 

“어머니! 어머니!” 스칼렛이 속삭였다. 엘렌에게 가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슨 고생이라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하느님의 기적에 힘입어 만일 타라가 온전히 그대로 남았고, 그래서 그녀가 나무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선 길을 따라 마차를 타고 올라가서, 집으로 들어가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두려움을 잠재우던 부드럽고 믿음직한 어머니의 두 손을 다시금 만져보고, 엘렌을 부둥켜안고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어머니는 잘 알리라. 어머니는 멜라니와 아기가 죽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으리라. 어머니는 “조용해라, 조용해라”라고 가만히 말하면서, 모든 유령과 두려움을 쫓아 버리리라. 하지만 어머니는 병이 들었고,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P622)  

   

“집을 태울 테니까 나더러 이곳을 떠나라고 그러더구나. 그래서 나도 함께 태우라고 했지. 네 동생들하고 -- 너희 엄마하고 -- 우린 떠날 수가 없으니까 --”

“그래서요?” 그는 꼭 엘렌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나?

“집에 병자가,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들을 옮기면 죽게 된다고 난 그들에게 말했어. 그러니까 우리들을 안에 그대로 두고 몽땅 태워 버리라고 그랬지. 어쨌든 난 -- 난 타라를 떠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 ”

그는 말끝을 흐리고 잠잠해지더니 멍하니 벽을 쳐다보았고, 스칼렛은 이해를 했다. 제럴드의 등 뒤에는 너무나 많은 아일랜드 조상들이, 밭을 갈고 사랑을 나누며 자식을 낳고 살아온 고향을 떠나기보다는 차라리 끝까지 싸우겠다고, 손바닥만 한 땅이나마 악착같이 지키겠다고 싸우다가 죽어 간 사람들이, 제럴드의 등 뒤에서 버티고 있었다. 

“죽어 가는 세 여자를 안에 남겨 둔 채로 집에 불을 지르려면 지르라고 난 그들에게 말했어. 그래도 우리들은 떠나지 않겠다고 말이야. 젊은 장교는 -- 신사였지.”   (P641)   

  

믿음직한 무엇이, 변하지 않는 옛 삶의 무엇이 여기 남았구나! 스칼렛은 생각했다. 하지만 어멈이 한 첫마디 말은 그 환상을 쫓아 버렸다. 

“어멈의 아기 돌아왔군요! 오, 스칼렛 마님! 이제 엘렌 마님 무덤 묻혔는데, 우리 어떡하나요? 오, 스칼렛 마님, 나 차라리 엘렌 마님 함께 죽었다 그러면 좋았겠어요! 엘렌 마님 안 계시다 하니 나 아무것 못하겠어요. 이제 남았다 하는 거 비참한 거 골치 아픈 거 모두예요. 무거운 짐 전부예요. 무거운 짐 전부라고요.”

어멈의 젖가슴에 머리를 꼭 누르며 껴안았던 스칼렛은 <무거운 짐>이라는 두마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은 오늘 오후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찌나 단조롭게 윙윙거리며 울렸는지, 스칼렛은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이제야 그녀는 노래의 나머지 내용을 기억했고, 그것을 기억하자 그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며칠만 더 이 무거운 짐 나르면!

조금도 이 짐 가벼워지지 않아도 좋으니!

며칠만 더 지나면 길을 걷게 될지니!                    (P649)     


스칼렛은 언젠가 땅에 관해서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리에 떠올랐고, 세상에서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는 오직 땅뿐이라고 한 아버지의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고, 얼마나 무식했는지 이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끝까지 남는 건 땅이 전부이기 때문이고..... 몸속에 아일랜드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들이 살아가는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지..... 일할 가치가 있고, 싸울 가치가 있고, 죽을 가치가 있는 건 오직 땅을 위해서 뿐이야.”

그렇다. 타라는 싸울 만한 가치가 충분했고, 스칼렛은 단순하게 그리고 아무 의문도 없이 그 싸움을 받아들였다. 아무도 타라를 그녀에게서 빼앗아 가지는 못하리라. 어느 누구도 그녀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친척의 자비심에 빌붙어 살라고 뿔뿔이 흩어 버리지는 못하리라.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타라를 놓지 않을 각오였다.   (P678-679)    

 

“글쎄요, 난 오만한 카이사르 얘기는 모르겠어요” 윌이 참을성을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여 준 돈은 방금 당신이 웨이드에 관해서 한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어요. 미스 멜리, 그건 이 지폐의 뒷장에 붙여 놓은 한 편의 시 때문이죠. 미스 스칼렛이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지만, 이것만은 흥미를 느끼리라고 생각했죠.”

그는 지폐를 뒤집었다. 뒷장에는 집에서 만든 묽은 잉크로 쓴 조잡한 갈색 포장지 조각을 풀로 붙여 놓았다. 윌은 헛기침을 헤가며 목청을 가다듬고는, 더듬거리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시의 제목은 <남부 동맹 지폐의 뒷장에 부치는 글>입니다.”

그가 말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땅과 그 밑으로 흐르는 물에서도

이제는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하더라도

사라져 간 한 민족의 상징으로 삼아서

이것을 간직하라, 다정한 친구여. 그리고 보여 주어라.     

애국자의 꿈에서 탄생한 자유와

폭풍우에 휘말려 멸망한 한 민족에 대해서

이 소총이 하려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 주어라.

“오. 얼마나 아름다운 시예요! 얼마나 감동적이고요!” 멜라니가 소리쳤다. “스칼렛, 다락방에 바르라고 돈을 어멈한테 주면 절대로 안 돼요. 그건 단순한 종이가 아니고, 시에서 얘기한 그대로 <사라져 간 한 민족의 상징>이에요!”

“멜리, 감상적인 소리는 하지 말아요. 종이는 종이이고, 우린 종이가 넉넉하지도 못한 데다가, 난 다락방에 구멍이 났다고 어멈이 투덜거니는 소리를 듣기에도 지쳤어요. 난 웨이드가 자란 다음에는 남부 동맹의 쓰리게보다는 합중국 지폐를 잔뜩 모아서 주고 싶어요.”  (P805-806)     


경기의 규칙들이 달라졌으며, 정직한 노동은 더 이상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칼렛은 알지 못했다. 조지아는 지금 사실상 계엄령 통치를 받는 중이었다. 양키 군인들이 사방에 배치되어 주둔했고 노예 해방청은 업무를 완전히 장악해서 규칙을 그들에게 맞도록 닥치는 대로 뜯어고쳤다.

게으르고 흥분한 노예 출신 흑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연방 정부가 조직한 해방청은 노예들을 수천 명씩 농장에서 마을과 도시로 끌어들였다. 해방청은 빈둥거리며 게으름이나 피우는 그들을 먹여 살리며 옛날 주인들에 대해서 악독한 마음을 먹도록 선동했다. 이 지역 노예청의 책임자는 제럴드의 옛날 노예 감독이었던 조너스 윌커슨이었고, 그의 조수는 캐슬린 캘버트의 남편인 힐턴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남부인들과 민주 당원들이 흑인을 다시 노예로 만들기에 좋은 기회만 호시탐탐 기다리며, 흑인들이 불우한 운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희망이라고는 해방청과 공화당이 제공하는 보호에 의존하는 길뿐이라는 소문을 열심히 퍼뜨리며 돌아다녔다.

그뿐 아니라 윌커슨과 힐턴은 어떤 면에서도 흑인 백인만큼 훌륭하며, 머지않아 백인과 흑인의 결혼도 허락되고, 머지않아 그들의 옛 주인이 소유했던 땅을 재분배하여 모든 흑인은 40에이커의 땅과 노새 한 마리를 받게 되리라는 소문도 퍼뜨렸다. 그들은 백인 자행했던 온갖 잔혹한 얘기를 늘어놓아 계속해서 흑인들을 자극했고, 그래서 노예와 주인이 다정하기로 옛날부터 이름이 났던 지역에서도 증오와 의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P815-816)     


“벌거벗은 그대로의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 -- 그것은 저주예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삶이란 나에게는 커튼에 비친 그림자 연극 이상의 현실감을 주지 못했어요. 그리고 난 그런 쪽을 더 좋아했고요. 난 사물의 윤곽이 지나치게 선명하면 좋아하지를 않았어요. 약간 희미하고, 약간 지워진 모호함을 난 좋아했으니까요.”

그는 말을 멈추고는 마치 엷은 셔츠 속으로 찬 바람이라도 들어간 듯 몸을 약간 부르르 떨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하면. 스칼렛. 난 겁쟁이예요.”

그림자 연극과 희미한 윤곽에 관한 그의 얘기는 스칼렛에게 아무 의미도 전달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말은 그녀가 아는 어휘였다. 스칼렛은 그의 얘기가 진실이 아님을 알았다. 그에게는 겁쟁이다운 성품이 없었다. 그의 몸에서 나타나는 매끄러운 윤곽과 선은 용감하고 신사다운 남자들이 몇 대에 걸쳐 물려받은 유산이었고, 스칼렛은 그의 전공 기록을 환히 알았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겁쟁이라면 어떻게 게티즈버그에서 대포 위로 올라가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아 줄 용기를 발휘했겠어요? 장군님께서 손수 겁쟁이에 대한 편지를 멜라니에게 썼겠느냐고요? 그리고 -- ”

“그건 용기가 아닙니다.” 그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투란 샴페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전투는 영웅이나 겁쟁이를 따로 가리지 않고 똑같이 바른 속도로 취하게 만드니까요. 용감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전장에서라면 어떤 바보라도 용감해지게 마련이죠. 내가 한 얘기는 의미가 달라요. 그리고 내가 얘기하는 비겁함이란 첫 포성을 듣자마자 도망치는 행동보다도 훨씬 더 나빠요.”   (P825-826)     

“하지만, 애슐리,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나요?”

“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대상들이죠. 말로 표현하면 아주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그런 관념들이요. 삶이 갑자기 너무나 타산적이 되었고, 삶의 단순한 어떤 현실들을 개인적으로, 너무나 개인적으로 직접 대하게 되었다는 절실함이 가장 두렵다고나 할까요. 이곳에서 흙에 파묻혀 통나무를 쪼개야 한다는 신세를 내가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나는 마음에 걸립니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옛 삶의 아름다움이 상실되었다는 현실이 무척 답답해요. 스칼렛,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삶이 아름다웠어요. 옛 삶에서는 찬란함이 넘쳤고 -- 희랍의 완벽함과 완전성과 조화가 존재했었죠. 어쩌면 누구에게나 다 그렇지 않았을는지는 몰라요. 난 지금에야 그 점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열두 참나무 집에서 산다는 것이, 그 삶이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그런 삶에 잘 어울렸어요. 나는 그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과거의 삶은 사라졌고, 새로운 삶에서는 내가 끼여 들어갈 자리가 없고, 난 그래서 두려워하죠. 이제야 나는 옛날에 내가 보았던 세상이 그림자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림자가 아닌 모든 대상, 그러니까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지나치게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과 상황들을 꺼렸어요. 나는 그런 요소들이 나의 현실에 끼어들면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당신도 피하려고 했어요. 스칼렛, 당신은 삶으로 충만했으며,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던 반면에, 난 그림자와 꿈을 더 좋아할 정도로 겁쟁이였어요.”  (P827)     


“그건 아무도 몰라. 어쩌면 교수형을 시킬 때까지 가둬 둘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가 살인을 했다는 혐의를 결국은 증명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 어쨌든 양키들은 누구인가를 교수형에 처할 기회만 생긴다면 사람들이 죄가 있건 없건 구태여 신경을 쓰지 않아. 그들은 너무나 긴장했어.” 피티가 이상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큐 클럭스 클랜 때문에 말이다. 그곳 카운티에도 클랜 조직이 생겼니? 그래, 틀림없이 그곳에도 생겼을 테지만. 애슐리는 너희들에게 그런 얘기를 전혀 비치지도 않겠지. 클랜 단원들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약을 하니까. 그들은 한밤중에 귀신처럼 차리고 나가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돈을 훔치는 카펫배거들과 건방진 흑인들을 찾아가지. 때로는 그냥 그들에게 겁만 주고 애틀랜타에서 떠나라고 충고를 하지만, 얌전히 굴지 않는 자들은 채찍으로 때리기도 해.” 피티는 귀엣말로 얘기했다. “때로는 그들을 죽이고 큐 클럭스 쪽지를 달아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시체를 버리지.... 그리고 양키들은 그 문제 때문에 무척 화가 나서 누구인가를 본보기로 처벌할 속셈이야.... 하지만 휴 엘싱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양키들은 돈을 어디 숨겨 두었는지를 그가 알면서도 말을 안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버틀러 선장을 함부로 교수형에 처하지는 못하리라는구나. 그들은 버틀러 선장의 입을 열게 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지.”   (P880-881)     


프랭크는 마음이 지나치게 약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이용해 먹는 모양이야. <그래, 여기서 만일 절반만 받아 낸다고 해도, 그는 제재소를 사고 나서도 나한테 세금 낼 돈을 쉽게 내주었겠지.>

그러더니 그녀는 생각했다. <프랭크가 제재소를 운영한다고 상상이나 해봐! 귀신 속곳 같으니라고! 가게조차도 마치 자선단체처럼 운영하는 판인데, 제재소에서 어떻게 그가 돈을 벌겠어? 한 달도 못 가서 조지아 주 정부로 넘어갈 텐데, 그래, 내가 상점을 프랭크보다 훨씬 잘 운영할 거야! 그리고 난 목재업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프랭크보다는 훨씬 잘 운영할 자신이 있어!>

여자가 남자 못지않게, 아니면 보다 훌륭하게 사업을 꾸려 나가리라는 놀라운 생각은, 남자들이 전지전능하고 여자들은 별로 똑똑하지 못하다는 전통 속에서 자란 스칼렛에게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런 관념이 전적으로 진실은 아님을 알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편리하고 거짓된 그 개념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그녀는 스스로 터득한 놀라운 관념을 지금까지 한 번도 말로 표현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놀라서 입을 약간 벌린 채 묵직한 장부를 무르팍에 펼쳐 놓고, 꼼짝도 않고 잠자코 앉아서, 타라 농장에서 고생하던 몇 달 동안에 그녀가 남자 몫의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생각을 했다.   (P972-973)     

그놈의 제재소! 제재소 생각을 할 때마다 프랭크는 어쩌다가 그녀에게 얘기를 했을까 자신을 책망하며 투덜거리곤 했다.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버틀러 선장에게 아내가 귀고리를 팔았고, 남편하고는 의논조차 하지 않고 제재소를 사버렸다는 정도만 해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거기다가 그녀는 제재소의 운영권을 그에게 넘겨주지도 않았다. 제재소 건은 남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녀가 남편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테니까 말이다. 

그가 아는 모든 남자들이나 마찬가지로 프랭크 역시 아내란 남편의 우월한 지식에 따라야 하고, 남편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여자는 자기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는 어떤 여자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둘 그런 남자였다. 여자란 너무나 우습고 하찮은 존재였고, 그들의 자질구레한 소망을 들어줘 봤자 나쁠 일이 별로 없었다. 천성이 착하고 상냥했던 그는 아내의 청을 거절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나약하고 자그마한 여자가 저지르는 바보 같은 짓이라면 흐뭇해하면서 지켜보고는 그녀의 어리석음과 허영을 사랑스러운 말로 꾸짖을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스칼렛이 노리는 대상들은 상상조차 못할 정도였다.  (P1000-1001)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나온 지가 겨우 한 세대 될까 말까 한 자들까지도 포함한 많은 흑인들 때문에, 민족의 절반이 총검을 들이대며 통치하려고 다른 절반의 민족을 윽박지르는 기막힌 광경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흑인들에게는 투표권을 줘야하고, 과거에 그들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에게서는 대부분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양키들은 주장했다. 남부는 계속해서 기세를 꺾어 놓아야 했고, 백인의 공민권 박탈은 남부의 기세를 죽이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남부 동맹을 위해서 군인으로 싸웠거나, 관리직을 맡았었거나, 협조와 편의를 제공했던 사람은 대부분 투표가 용납되지 않았고, 공공 기관의 관리를 선발할 때도 제외되었고, 그래서 이곳은 완전히 외부인들의 통치를 받았다. 리 장군이 한 말과 스스로 보여 주었던 본보기를 진지하게 따져 본 사람들은 선서를 하고, 다시 시민이 되어 과거를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서도 못하게 금지되었다. 선서를 해도 좋다고 용납된 몇몇 소수의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그들을 굴욕과 잔혹성에 시달리게 만드는 정부에 대한 충성의 맹세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코웃음을 치며 열을 올리고 거부했다. 

스칼렛은 똑같은 얘기를 너무나 여러 번 거듭해서 들었기 때문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일 그들이 점잖게 굴기만 했더라면, 난 패전 직후에 그놈의 거지 같은 선서를 했겠지. 난 합중국 시민으로 보권이 되는 건 괜찮겠지만,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재편입되고 싶지는 않아!”   (P1031)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성서 다음가는 진리의 계시로 꼽던 양키 여자들은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기 위해서 남부에서 집집마다 한 마리씩 키운다고 믿었던 블러드하운드 얘기를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그러면 스칼렛은 그들에게 평생 블러드하운드는 꼭 한 마리밖에 본 적이 없으며, 그나마도 작고 온순한 개였지 사납고 거대한 놈은 아니었노라 얘기했고, 그러면 북부 여자는 스칼렛의 말을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농장주들이 노예의 얼굴에 표시하려고 사용했던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는 쇳덩이와, 농장주들이 노예를 때려죽이느라고 사용했던 아홉 가닥의 채찍에 관해서도 알고 싶어 했으며, 노예를 첩으로 삼는 관습에 대해서는 아주 고약하고 교양 없는 관심을 나타냈다. 양키 군대가 이곳에 눌러앉게 된 이후로 애틀란타에는 혼혈 아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녀는 이런 시각의 관심이 특히 못마땅했다.   (P1054)    

 

그들은 흑인을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게 다루어서, 가르쳐 주고, 칭찬하고, 귀여워하고, 야단도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흑인을 이해하지 못했고, 흑인과 주인이었던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흑인을 해방시키겠다고 전쟁까지 벌였다. 그리고 일단 해방시켜 놓은 다음에는 남부인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이용하려는 목적 이외에는 그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양키들은 흑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신뢰하지도 않았으며 이해도 못했지만, 그러면서도 흑인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남부인들이 알지 못한다고 끊임없이 외쳐 대기만 했다.

검둥이를 믿지 못하다니! 스칼렛은 그들을 대부분의 백인보다 훨씬 더 신뢰했고, 어느 양키보다도 분명히 더 믿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구할 길이 없는 충성과 끈기와 사랑이라는 특성을 지녔다. 그녀는 양키들의 침략을 눈앞에 두고 도망을 치거나, 군대에 들어가 편히 살아갈 길이 제공되었는데도 타라에 그냥 남았던 충직한 몇 명의 흑인이 머리에 떠올랐다.    (P1060)                      

[3] 

“오. 하지만 뉴욕으로 가자는 얘기를 했을 때는 난 당신이 애틀랜타에서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더구나 내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입장도 아니었잖아요. 마땅히 남편을 따라가는 것이 아내의 의무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스칼렛이 우리들을 그토록 필요로 하고, 당신 아니면 맡을 사람이 없는 자리까지 났으니, 우린 고향으로 돌아각 되었잖아요! 고향으로요!” 스칼렛의 손을 꼭 움켜쥐던 그녀의 목소리는 환희로 도취되었다. “그리고 난 파이브 포인츠도 다시 보게 되고, 복숭아나무 거리와 그리고 또 -- 그리고 또 --. 오, 난 그런 곳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그리고 우린 자그마한 우리들만의 집을 장만하게 될는지도 모르죠! 아무리 작고 초라하더라도 -- 우리들의 집이기만 하면 좋겠어요!”

그녀의 눈은 행복감과 열광으로 불타올랐고, 어리둥절하고도 묘한 표정의 애슐리와, 놀라움과 수치심이 뒤섞인 표정의 스칼렛. 두 사람은 멜라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스칼렛은 멜라니가 애틀랜타를 그토록 그리워했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그토록 갈망하고, 자기 집을 가질 날을 그렇게 갈망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녀는 타라 농장의 생활에 만족하는 듯 보였기 때문에 멜라니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니까 오히려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P1151)     


그들이 멜라니에게로 돌린 시선은 이렇게 말했다. <멜라니는 왜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리나요? 우리들의 상처 --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는 아픔은 영원히 아물지 않는 그런 상처예요.>

고요한 방 안에서 멜라니의 목소리가 힘을 냈다. “양키들의 무덤이 이곳에 생겨났듯이 그들의 무덤은 양키의 땅 어디엔가 있을 텐데. 오, 어떤 양키 여자가 그들의 무덤을 파버리자고 그런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 ”

미드 부인이 나지막하고 음험한 소리로 불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선량한 어느 양키 여자가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 그리고 선량한 양키 여자들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나쁘기만 할 리는 없으니까. 난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아요! 비록 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장병들의 무덤에 난 잡초를 그들이 뽑아주고, 꽃을 가져다 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일 찰리가 북부에서 전사를 했다면, 난 누구인가 그랬으리라고 믿으면 마음이 놓일 테고 -- . 난 여러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울먹거렸다 “나는 양쪽 단체에서 다 탈퇴하고, 난 -- 그리고 난 양키 무덤에 돋아난 잡초를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뽑아 주고, 꽃도 심어 놓고 -- 그리고 -- 나를 말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그냥 두지 않으리라고 다짐합니다!”    (P1163)    

 

하지만 틀림없이 그는 요령을 습득하리라! 그리고 그가 배우는 동안 스칼렛은 애슐리의 실수에 대해서 애정과 모성애적인 관용과 인내심을 보여 주었다. 그가 저녁마다 지치고 풀이 죽어서 집으로 찾아오면 스칼렛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도움이 될 제안들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격려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어도 묘하게 그의 눈에서는 죽음의 표정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스칼렛은 그런 표정을 이해할 길이 없었고, 그 표정이 두려웠다. 그는 달라졌고, 과거의 애슐리와는 무척이나 달라졌다. 그와 단둘이 만날 기회만 난다면 왜 그런지 그녀는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그녀가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그가 불행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불행하다면 훌륭한 목재상이 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알았기 때문에, 스칼렛은 애슐 리가 걱정되었다. 휴와 애슐리처럼 사업에 대한 감각이 없는 두 남자의 손에 제재소를 맡기기란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절망적이었던 지난 몇 달 동안 그토록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좋은 고객을 경쟁자들이 빼앗아 가는 꼴을 보면 속이 상했다. 오,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녀는 애슐리의 손을 이끌어 주고,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배우리라, 그리고 조니 갤러거에게 다른 제재소의 운영을 맡기고, 그녀가 판매 활동을 담당하고, 그러면 만사가 잘 돌아가리라. 그래도 휴가 스칼렛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면 마차로 목재를 배달하는 업무를 맡기면 되리라. 그는 겨우 그런 능력밖에 없었다.   (P1174-1175)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면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애슐리 윌크스는 -- 흥! 그런 족속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런 무질서한 세상에서는 아무 쓸모나 가치가 없어요. 세상이 거꾸로 뒤집힐 때마다 그런 부류들이 제일 먼저 멸망하죠. 그야 그럴 만도 하잖아요? 싸우려 하지도 않고 -- 어떻게 싸워야 할지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남을 자격도 없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또 마지막도 아니죠. 전에도 그런 상황이 닥쳤었고, 또 앞으로도 일어날 테니까요. 그리고 어쩌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가진 것을 몽땅 상실하고, 그래서 온 세상이 평등해져요. 그러고는 그들은, 완전히 맨손으로,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돼요. 그러니까, 두뇌의 교활함과 두 손의 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다는 얘기죠. 하지만 애슐리 같은 사람들은 꾀도 없고 힘도 없거니와, 혹시 있더라도 그런 자질을 발휘하기를 주저해요. 그래서 그들은 탈락되고, 마땅히 탈락되어야 하죠.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그런 자들은 차라리 없어져야 세상이 더 잘 돌아갑니다. 하지만 극복하고 이겨 내는 강인한 소수의 사람이 언제나 나타나게 마련이고,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들은 세상이 뒤집히기 전에 차지했던 자리를 곧 되찾아요.”    (P1220)     


“앉아요.” 꼼짝 못하게 노려보며 아치가 말했다. “내가 얘기하겠소. 당신이 오늘 오후 싸돌아 다니다가 당신 잘못으로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윌크스 씨와 케네디 씨,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말썽을 피운 깜둥이하고 백인을 오늘 밤 잡으면 그들을 죽이고, 판자촌 마을을 몽땅 쓸어버리기 위해 출동했어요. 그리고 만일 아까 스캘라웩이 한 말이 맞다면, 양키들이 무슨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거나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는 잠복했다가 덮치려고 병력을 풀었다 이거요. 그래서 우리 편 사람들이 함정에 빠지고 말았소. 그리고 만일 버틀러라는 자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첩자가 분명하고, 그래서 그가 양키들에게 그들을 넘기고, 어쨌든 그들이 죽음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요. 그리고 만일 그가 정말로 우리 편을 그들에게 넘긴다면, 난 목숨을 걸고라도 꼭 그놈을 죽이고 말겠소. 그리고 그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두들 여기서 도망쳐 텍사스로 가 어디에 숨어 살면서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소. 이건 다 당신 탓이고, 당신 때문에 피를 보는 거라 이거요.”    (P1259-1260)      

“레트, 제발 이성을 찾아요. 난 누구하고도 결혼하고 싶지 않다니까요.”

“그래요? 당신은 나한테 그 참된 이유를 얘기하지 않았어요. 소녀다운 수줍음 때문은 아니겠죠. 무슨 이유인가요?”

문득 스칼렛은 애슐리를 생각했고, 햇빛처럼 눈부신 머리카락과 졸린 눈의 애슐리, 레트와는 철저히 달라서 위엄으로 넘치는 애슐리, 그가 바로 옆에 나타나기라도 한 듯 애슐리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선했다. 레트에 대한 불만은 없었고, 때로는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기까지 했어도, 그녀가 다시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참된 이유는 애슐리였다. 그녀는 영원히, 영원히 애슐리의 소유였다 그녀는 전혀 찰스나 프랭크의 소유가 아니었으며, 레트의 소유가 되기도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녀의 모든 부분, 그리고 그녀가 행하고 추구하고 달성했던 거의 모든 행동은 애슐리 때문에 비롯되었고, 그것들은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취한 행동이었다. 애슐리와 타라 농장이 그녀를 소유했다. 찰스와 프랭크에게 주었던 그녀의 미소와 키스는, 비록 그가 전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주장하지 않을지라도, 애슐리의 것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 어디엔가는, 비록 애슐리가 절대로 그녀를 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칼렛은 그를 위해 자신을 지키려는 욕망을 간직했다.   (P1316)     


“하지만 스칼렛, 부자냐 아니냐 여부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나요?”

그렇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리라는 가능성은 그녀의 머리에는 떠오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뭘 원하는데요?”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요. 전에는 알았었지만, 반쯤 잊어버렸어요. 남들이 성가시게 굴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달리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그런 정도겠죠. 어쩌면 난 옛날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데 과거는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난 지나간 시절의 추억과 내 코앞에서 무너지던 세계의 환각에 지금까지 줄곧 쫓겼는지도 몰라요.”     (P1454-1455)    

 

<난 애슐리가 뒤를 돌아다보게 해서는 안 돼.> 그녀는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의 내 생각이 옳았던 거야. 그건 너무나 고통스럽고, 되돌아보기만 할 뿐 전혀 아무것도 못하게 될 때까지 우리들의 마음을 끌어내리니까. 애슐리는 그게 탈이야. 그는 더 이상 앞을 내다보지 못해. 그는 현재를 볼 능력이 없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그렇기 때문에 뒤를 돌아다보기만 하지. 난 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난 지금까지 전혀 애슐리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오, 애슐리, 내 사랑, 당신은 뒤를 돌아다봐서는 안 돼요!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난 옛 시절 얘기를 하게끔 당신이 나를 유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데 그랬어요. 행복을 회상하면 이런 일이 생겨서, 이렇게 고통과, 마음의 상처와, 울적함을 느끼기만 할 따름이라고요.>    (P1458)     


삶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바를 제공할 아무런 의무도 없으니까요우린 주어지는 만큼 얻을 따름이고그나마 현재가 우리에게 베푸는 바를 고맙게 생각해야죠.”   (P1458)     


그런 건 모두 내일 타라에 가서 생각하겠어그때는 버틸 힘이 생길 테니까내일 난 그이를 되찾을 무슨 방법을 생각해 내야지어쨌든 내일도 또 다른 하루가 아닌가.”    (P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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