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예모 감독 <인생> 1994년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인생'의 원작 소설. 원제는 活着(훠저(huó zhe), 살아간다는 것, Lifetimes). 중국 현대사의 3대 비극인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을 차례로 보여주기에 격동의 시대를 보여준다. 장예모 감독의 공리 주연이다. 공리의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 외에 장예모 감독이 만든 영화는 <국두>, <홍등>, <인생>, <귀주 이야기> 등이 있다.
“얼시! 유칭! 게으름 피워선 안 돼. 자전! 평샤! 잘하는구나. 쿠건! 너도 잘한다.”
소 한 마리에 이렇게나 이름이 많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밭께로 가서 노인에게 물었다.
“이 소는 도대체 이름이 몇 개나 됩니까?”
노인은 쟁기를 붙들고 서서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당신, 성안 사람이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한눈에 알아봤지.”
“이 소는 대체 이름이 몇 개냐구요.”
“이 소 이름은 푸구이야, 그거 하나지.”
“노인장께서는 방금 이름을 여러 개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아........”
노인은 기쁜 얼굴로 웃으며, 나를 향해 다소 신비롭게 손을 휘저었다. 내가 다가서자 막 말을 시작하려다 말고 고개를 치켜든 소를 꾸짖었다.
“엿듣지 마, 고개 숙여.”
그러자 소는 과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노인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 봐 이름을 여러 개 불러서 속이는 거지.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는 줄 알면 기분이 좋을 테니 밭도 신나게 갈지 않겠소?”
노인의 거무스름한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더욱 생기 있게 보였다.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이 흥이 나는 듯 움찔거리자, 그 골마다 진흙이 꽉 들어찬 모습이 마치 밭 사이사이로 난 작은 길처럼 보였다.
노인은 햇빛 쏟아지는 오후에 나와 함께 잎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 아래 앉아,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20-21)
사람은 다 마찬가지라네, 손을 뻗어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돈을 긁어낼 때는 미간을 펴고 웃음을 짓지만, 자기가 돈을 내줄 차례가 되면 하나같이 울상이 되거든. 그렇게 흥에 겨워하던 차에 누군가 내 옷을 잡아당겨 고개를 숙여보니 내 아내였다네. 자전이 무릎 꿇고 있는 걸 보자 불같이 화가 나더군. 내 아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꿇다니. 너무 불길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자전에게 말했지.
“일어나, 일어나라고. 제기랄, 일어나란 말이야.”
말 잘 듣는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지. 나는 또 이렇게 말했네.
“당신, 여기 와서 뭐 하는 거야? 어서 돌아가지 못해!” (P37)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곁에 앉으니, 아버지가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그 손이 얼음장같이 차서 내 마음도 함께 얼어붙었다네. 아버지는 가볍게 말씀하셨어.
“푸구이, 노름빚고 빚은 빚이다. 예부터 빚은 갚지 않을 도리가 없단다. 우리 땅 백여 묘와 이 집을 모두 저당 잡혔으니 내일 사람들이 동전을 가져올 거다. 나는 늙어서 짊어질 힘이 없으니 네가 지고 가서 빚을 갚고 오너라.”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또 길게 한숨을 쉬셨네. 그 말씀을 들으니 눈이 시큰시큰하더라구. 나는 아버지가 나와 사생결단을 내실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지. 하지만 어버지 말씀은 마치 무딘 칼로 목을 베이고도 머리가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날 고통스럽게 했다네. 아버지가 내 손을 탁탁 치면서 말씀하셨지.
“가서 자라.” (P47-48)
그런 노인을 시골에서 만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이 그들의 기억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대개 지난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몇 가지 사소한 일들만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소한 기억마저도 자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것이었고, 한두 마디 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종종 젊은 세대가 그들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를 개 몸뚱어리로 먹었나.”
그러나 푸구이 노인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꽉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P63)
더 이상 밥을 지을 땔감을 구할 수 없게 됐을 때까지도, 장제스 위원장은 우리를 구출해내지 못했다네. 다행히도 비행기는 더 이상 쌀이 아니라 다빙(밀가루를 반죽하여 크고 둥굴게 구운 떡으로 북방의 주식 중 하나)을 내려주기 시작했어. 보따리에 싼 다빙이 땅에 떨어지면, 국민당 형제들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뺏고 빼앗느라 난리를 피웠지. 그렇게 달려든 사람들이 한 겹 두 겹 포개져 있는 꼴은 마치 어머니가 촘촘히 엮은 신발 바닥처럼 보였다네. 거기다 괴성까지 질러대니 이리떼와 다를 바가 없더구먼. (P90-91)
해방군이 정말로 우리를 집에 돌려보내려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때껏 전쟁을 겪으면서 나는 전쟁이 어떤 건지 알게 됐어. 그래서 난 나 자신에게 ‘전쟁 같은 건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말했다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그 장교 앞으로 가서는 철퍼덕 꿇어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네. 원래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려 했는데, 어쩐 일인지 말이 입가에서 바뀌어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지.
“중대장님, 중대장님, 중대장님......”
다른 말은 나오지 않더라구. 그러자 장교가 나를 부축해 일으키며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지, 하지만 나는 중대장 소리만 하며 계속 울었다네. 그때 옆에 있던 해방군 하나가 그러더군.
“그분은 단장님이셔.”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망했구나 싶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포로들이 깔깔거리며 웃더라구. 단장도 웃는 얼굴로 물었지.
“자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말했지.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P104)
내가 돌아왔을 무렵 마을에서는 토지 개혁이 시작되었지. 나는 다섯 묘의 땅을 배분받았는데, 바로 내가 예전에 룽얼에게 빌렸던 다섯 묘 그대로였다네. 그런데 룽얼은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됐지. 지주가 되어 우쭐댄 지 채 사 년도 안 됐는데, 해방을 맞았으니 완전히 끝장난 게 아니겠나. 공산당은 그의 재산을 몰수해 이전의 소작인들에게 나눠줬지. 그는 죽어도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소작인들을 위협했다네.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찾아가 패기까지 하면서 말이야. 룽얼은 화를 자초했던 게야. 인민정부는 룽얼을 잡아들여 악덕지주로 몰았다네. 성안의 감옥에 들어간 후에도 그는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야. 어찌나 고집이 센지 거의 바위덩어리 수준이었다니까. 그러다 끝내는 죽임을 당했지. (P109)
“푸구이,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마세요. 나 유칭이 죽었다는 거 알아요.”
자전의 말에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네. 다리도 확 풀려버렸지. 그러고 있는데 목 주변이 서서히 젖어들더군. 자전의 눈물이었네.
“유칭을 보러 가게 해주세요.”
더 이상은 속일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업고 마을 서쪽으로 갔지. 자전이 낮은 목소리로 알려주더군.
“밤마다 당신이 마을 서쪽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유칭이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유칭의 무덤 앞에 이르자 자전은 등에서 내려달라고 하더니, 무덤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무덤 위에 놓은 두 손은 꼭 유칭을 쓰다듬는 듯했지. 하지만 기력이 없어 손가락 몇 개를 꼼지락거릴 뿐이었어. 그런 모습을 보니 괴로워서 숨이 탁 막혀버릴 것 같더구먼. 그렇게 몰래 묻어서 자전이 마지막으로 아들 녀석 얼굴 한번 못 보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자전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대로 엎드려 있었지. 난 밤이슬이 그 사람 몸을 상하게 할까 봐 억지로 등에 업었다네. 자전은 마을 어귀에 좀 다시 가보자고 하더군. 그곳에 다다랐을 때 내 옷은 흠뻑 젖어 있었지. 자전이 울면서 말했다네.
“유칭은 이제 이 길을 달려올 수 없겠군요.”
난 구불구불 성안으로 난 작은 길을 바라보았지. 내 아들이 벗은 발로 뛰어가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네. 달빛만 처연하게 길을 비추는데,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을 흩뿌려놓은 것 같았어. (P198-199)
쿠건이 죽은 다음해에 나는 소 한 마리를 살 만큼 돈을 모았다네. 보아하니 아직 몇 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쿠건이 없어도 소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소는 반 사람 몫을 한다네. 나 대신 일도 할 수 있고, 쉴 때 동무도 되어주거든, 마음이 울적할 때 난 녀석과 두런두런 얘기를 하곤 해. 게다가 풀을 먹이러 물가에 끌고 갈 때면, 꼭 어린아이를 데려가는 느낌이라네.
소를 사던 그날, 나는 돈을 가슴에 품고 신펑으로 갔지. 그곳에 아주 큰 소시장이 있거든. 근처에 있는 한 마을을 지나는데 곡식 말리는 곳에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더라구. 무슨 일인가 싶어 기웃거리다가 이 소를 발견했다네. 녀석은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옆으로 기울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 그 옆에서는 팔을 걷어붙인 남정네 하나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칼을 갈고 있었어. 둘러선 사람들은 칼을 어느 부위부터 대는 게 좋다는 등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네. 늙은 소가 구슬프게 우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괴롭더구먼. 생각해보게. 소란 놈은 얼마나 불쌍한가. 평생 사람 대신 죽도록 일만 했는데, 늙어서 기력이 다하면 또 잡아먹히고 말지 않나.
녀석이 도살당하는 꼴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그곳을 떠나 서둘러 신펑으로 향했다네. 그런데 걸어가는 내내 녀석이 계속 눈에 밟히는 게 아니겠나. 자기가 죽을 걸 알고 대가리 밑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도록 울고 있던 그 녀석이 말일세.
걸음을 옮길수록 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급기야는 그놈을 아예 사버려야겠다고 결심했지. 그러고는 당장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 돌아갔다네. 사람들은 이미 소의 다리를 묶어놓았더라구.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칼을 갈던 남자한테 말했지.
“괜찮다면 이 소를 나한테 파시오.” (P279-280)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제자이자 연인 쉬광핑(許光平)에게 이런 편지를 적어 보낸 적이 있다.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가지 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적(墨翟) 선생도 통곡하다 돌아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 자도 괜찮을 만한 길 하나를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을 달라 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도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놈이 배고픔을 참다못해 제 갈 길을 가면 그때 내려올 것이고, 끝내 가지 않는다면 나무 위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허리띠로 몸을 꽁꽁 묶어두고 시체마저도 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놈에게 잡아먹히긴 먹히되, 놈을 한 입 물어뜯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으로 완적(阮籍) 선생도 대성통곡을 하고 돌아갔다는 막다른 길에서는 갈림길에서처럼 성큼 걸어갈 것이고,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 해도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온통 가시밭뿐이어서 결코 갈 수 없는 길은 분명 한 번도 맞닥뜨려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본래 막다른 궁지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다행히도 아직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거나. (P28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