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영화 <인도로 가는 길> 1984년

by 노용헌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영화 <밀회>(1945), <올리버 트위스트>(1948), <콰이강의 다리>(1957),<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예수의 생애>(1965), <닥터 지바고>(1965), <라이언의 딸>(영국, 1970) 등 약 50여편의 명화작품들만을 만든 20세기 영화 명장으로 불리운다. 영화<인도로 가는 길>도 1984년에 그가 만든 작품으로, 그의 나이 77세로 고령의 나이에 찍은 영화인데, 영화는 섬세할 정도로 정교하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하여 정확히 7년 뒤 1991년 4월 16일에 8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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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도로 가는 길>은 [이슬람 사원], [동굴], [힌두 사원]으로 나누어지며 인도의 세 계절인 선선한 철, 무더위 철, 우기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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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

그가 좋아하는 사원이었다. 운치도 있는 데다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부서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도를 올리기 전에 몸을 씻을 수 있는,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한 저수지가 있는 마당이 나왔으며 늘 흐르고 있는 이 저수지의 물은 도시에 공급되는 수도의 일부였다. 마당에 깔린 평평한 돌들은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이곳의 지붕이 덮인 부분은 다른 모스크들보다 깊어서 측면을 들어낸 영국 교회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가 앉아 있는 곳에서 작은 등불 하나와 달빛으로 어둠을 밝힌 세 개의 회랑이 보였다. 달빛을 가득 받고 있는 정면은 대리석처럼 보였고,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도드라져 보이는 프리즈에 검게 새겨진 신의 아흔아홉 이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러한 흑백의 선명한 대조와 내부의 그림자들의 다툼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아지즈는 그 전체를 종교적 진리나 사랑으로 상징화하기 시작했다. 사원이 마음에 들다보니 상상력이 나래를 펼친 것이다. 힌두교나 기독교 혹은 그리스정교의 사원이었다면 따분하기만 했을 것이고 그의 미적 감각을 일깨우지도 못했을 터였다. 이슬람교는 그의 조국이었고 단순한 하나의 신앙이나 슬로건 이상의,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슬람교는 삶에 대한 우아하고 영속적인 자세이자 그의 육신과 사상의 고향이었다. (P28-29)


“제가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왜 하필이면 선선한 철이 끝나 가는 이때에 인도에 오셨나요?”

“원래 더 일찍 출발하려 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지요.”

“이제 곧 부인의 건강에 해로운 계절이 올 겁니다! 찬드라푸르에는 왜 오셨는지요?”

“아들을 만나러요. 이곳의 치안 판사로 있지요.”

“아니, 죄송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저희 시의 치안 판사는 히슬롭 씨거든요. 제가 그분을 잘 압니다.”

“그 사람이 내 아들이에요.” 무어 부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어 부인, 어떻게 그분이 아드님이 되지요?”

“난 두 번 결혼했어요.”

“아하, 이제야 알겠네요. 첫 번째 남편께서는 돌아가셨군요.”

“그래요.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떴지요.” (P33)


인도의 색깔은 이른 아침 새들의 화려한 행렬과 사람들의 갈색 몸뚱어리와 흰 터번과 주홍색이나 청색의 우상들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 것이며, 인도의 움직임도 시장통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저수지에서 목욕들을 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륜마차에 앉아 그들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 색깔과 움직임 뒤에 숨겨진 힘은 지금보다도 더 접하기 어려우리라. 그녀는 늘 인도를 하나의 정신이 아닌 벽에 새겨진 조각의 형태로 보게 될 것이다. 그녀는 무어 부인이 살짝 본 것이 바로 인도의 정신이리라 생각했다.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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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우린 여기 치안 유지를 위해 나온 거예요. 그것이 제 입장이에요. 인도는 응접실이 아니에요.”

“마치 신의 입장 같구나.” 무어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를 노하게 한 건 아들의 입장보다는 태도였다.

로니는 냉정을 되찾으려 애쓰며 말했다. “인도는 신들을 좋아하죠.”

“그리고 영국인들은 신처럼 행세하기를 좋아하지.”

“이래 봐야 아무 소용 없어요. 우리는 여기 와 있고 이 나라는 우리가 신이건 아니건 우리를 참고 견뎌야 해요. 저 좀 보세요.” 그는 애절해 보일 정도로 벌컥 화를 냈다. “어머니와 아델라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거예요? 제가 속한 계급, 제가 여기서 존경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기를 들라고요? 인도인들에게 친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 나라에서 일을 잘해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라고요? 어머니나 아델라나 일이 어떤 건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안다면 그런 허세를 부릴 수가 없죠. 저도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어쩔수가 없네요. 어머니와 아델라는 병적으로 예민하게 굴고 있어요. 징세관께서 수고를 마다 않고 어머니와 아델라를 즐겁게 해주려고 그런 자리를 마련했는데 아까 두 사람이 어땠는지 다 봤어요. 저는 여기 일하러 온 거예요. 이 형편없는 나라를 힘으로 다스리기 위해서요. 저는 선교사도 아니고 노동당원도 아니고 감상적인 문학가도 아니에요. 공무원이에요. 어머니께서도 제가 그 직업을 선택하기를 원하셨잖아요. 우리는 인도에서 친절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어요. 더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까요.”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는 날마다 거짓과 아첨이 난무하는 법정에서 거짓된 양쪽 주장 중에서 어떤 쪽이 더 거짓인지 가리고 두려움 없이 법을 집행하고 약자로부터 더 약자를, 그럴싸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부터 말주변이 없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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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람이 가까워져서 찬드라푸르의 이슬람교도는 여느 해처럼 행렬에 쓸 커다란 종이 탑들을 만들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탑들이 어떤 보리수나무의 가지에 걸려 그 밑으로 지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에 벌어질 일들은 뻔했다. 탑이 나뭇가지에 걸리면 이슬람교인이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잘라 낼 것이고 힌두교인들이 들고일어나 종교 폭동으로 번질 것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군대까지 출동될 터였다. 터턴의 후원으로 대표단과 조정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찬드라푸르의 모든 일상적인 업무들이 마비되었다. 행렬이 다른 길로 가는 안과 탑들을 작게 만드는 안이 나왔는데 이슬람교도는 전자를, 힌두교도는 후자를 고집했다. 징세관은 처음에는 힌두교도 편이었다가 그들이 일부러 나뭇가지를 아래로 늘어지게 만들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힌두교인들은 자연적으로 늘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측량, 계획, 공식적인 현장 답사, 그러나 로니는 그런 소동이 싫지는 않았는데 인도 땅에 영국인이 와 있어야함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인의 중재가 없으면 분명 유혈 사태로 번지리라. 그의 음성은 다시금 자기만족에 젖어 들었다. 그는 인도인들에게 친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안유지를 위해 이 땅에 온 것이며 아델라도 그의 아내가 되기로 약속했으니 그 점을 이해해야만 했다. (P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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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죽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죽지 않고 있으니 자비로운 신의 섭리를 믿을 수밖에요.”

“옳은 말씀이에요. 옳아요!” 하크 경감이 종교를 찬양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받았다.

“필딩 씨께서도 옳다고 생각하세요?”

“뭐가요? 세상은 죽어 가고 있지 않아요. 그건 확실해요!”

“아뇨, 아뇨, 신의 섭리 말이에요.”

“난 신의 섭리를 믿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신을 믿을 수가 있지요?” 시에드 모하메드가 물었다.

“난 신을 안 믿어요.”

인도인들 사이에서 <내가 워랬어!> 하는 식의 작은 동요가 일었고 분개한 아지즈가 필딩을 올려다보았다. “요즘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무신론자라는 얘기가 맞나요?” 하미둘라가 물었다.

“생각이 깊은 식자층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은 무신론자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에요. 사실 서양에서는 이제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50년 전, 아니 우리가 젊었을 때만 해도 그 문제로 법석을 떨어 댔지만 말이에요.”

“그럼 도덕성도 떨어지는 게 아닌가요?”

“그야 보기 나름이지만...... 그래요, 도덕성도 떨어진다고 봐야겠지요.”

“이런 질문 드려서 실례인 줄 압니다만, 그렇다면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지요?”

또 시작이다. 정치 얘기.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군요. 나는 개인적으로 일자리가 필요해서 여기 온 거지요. 영국이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에 꼭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어요. 나로선 알 수 없으니까요.”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인도인들도 교육분야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합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내가 먼저 잡았어요.” 필딩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또 실례되는 질문을 하겠는데, 인도인도 할 수 있는 일을 영국인이 잡고 있는 건 공정한 일인가요? 물론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당신이 이곳에 계시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이런 솔직한 대화를 통해 많은 걸 얻고 있으니까요.”

이런 식의 대화에서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것은 인도를 위해서이다>라는 대답밖에 없지만 필딩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정직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P165-167)


생물체의 다수에게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칭하는 소수가 무엇을 갈망하거나 결정하든 하등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인도 거주자들은 인도가 어떻게 통치되든 개의치 않는다. 물론 영국의 하등 동물들도 영국에 대해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열대 지방에서는 그 무심함이 더욱 두드러지고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의 세계가 인간 세계에 더 가까이 있으며 인간들이 지치면 더 빨리 지배력을 되찾는다. 집 안에서 그토록 다양한 의견들을 지녔던 일곱 남자는 밖으로 나오자 공통의 짐인 <다가오는 고약한 날씨>에 대한 막연한 징후를 발견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거나 일한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없으리라 느꼈다. 그들과 마차들 사이의 공간은 살을 짓누르는 물체들로 꽉 막혀 있었고, 마차의 쿠션들은 바지가 탈 정도로 뜨거웠으며, 눈이 따끔거렸고, 머리에 쓴 모자나 터번 안에 땀이 고여 얼굴로 비 오듯 쏟아졌다. 그들은 힘없이 인사를 나눈 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질과 자부심들을 되찾기 위해 각자의 집 안으로 흩어졌다. (P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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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걸요. 아내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예쁘지도 않았지요. 이제 치우세요.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직접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사진을 못 보겠습니까?”

“부인이 살아 있었다면 나와 만나게 해주었을 거라고요?”

“당연하지요. 전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푸르다 전통을 찬성하지만 아내에게 당신이 나의 형제라고 말했을 것이고 그러면 아내는 당신을 만나 줬을 거예요. 하미둘라와 몇몇 사람들도 아내를 보았지요.”

“부인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형제라고 생각했나요?”

“물론 그건 아니지만, 그런 표현은 엄연히 존재하고 또 편리하니까요. 모든 남자들이 제 형제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제 아내를 볼 수 있지요.”

“그럼 온 세상 남자들이 그에 맞게 행동한다면 푸르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군요.”

그러나 아지즈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갖고 그런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보여 준 거지요.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제가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저에게 예의를 지켜 주셨기 때문에 보여 준 거예요. 당신을 부르면서도 다시 들어오리라곤 기대도 못했었지요. 전 이렇게 생각했었죠. <내가 그를 모욕했기 때문에 이제 그는 나를 상대하지도 않을 거야.> 필딩 씨, 우리 인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친절을 필요로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우리 자신조차 알지 못해요. 하지만 친절을 받으면 알게 됩니다. 우린 친절을 잊지 못하지요. 겉으로는 잊는 것처럼 보여도요. 친절을 베풀고 베풀고 또 베푸는 것.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지요.” 그의 목소리는 꿈속에서 나오는 듯했다. (P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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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힌두교의 손길이 몇 개의 바위에 생채기도 내고 칠도 해놓긴 했지만, 비범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순례자들도 이곳은 비범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이 성지를 찾는 발길은 뜸하기만 하다. 몇몇 고행자들이 동굴에서 기거한 적도 있었으나 견디지 못해 떠났고, 부처조차 부다가야의 보리수를 찾아가는 길에 필시 이곳을 지났겠건만 자신보다 더 철저하게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이곳이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마라바르에 자신과의 싸움이나 승리에 관한 전설을 남겨 놓지 않았다.

마라바르의 동굴들은 설명하기가 쉽다. 길이 8피트, 높이 5피트, 폭 3피트의 굴이 지름 20피트 정도 되는 둥근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산 전체에 이런 동굴들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마라바르 동굴이다. (P188-189)


대부분의 인생은 단조롭기 짝이 없어서 사실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도 없으며,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내는 책이나 이야기들은 존재의 정당성을 갖기 위해 과장이란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정신은 일이나 사회적 의무의 고치속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으며 쾌락과 고통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겉으로 꾸미는 것처럼 그렇게 기민하지는 못하다. 아무리 흥분되는 날에도 아무 느낌이 없는 순간들이 있으며 우리는 계속해서 <나는 기쁘다>거나 <나는 겁에 질려 있다>고 외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내가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것은 기쁨이다. 혹은 공포이다>가 진실이며, 완전한 조화에 이른 사람이라면 침묵할 것이다. (P202)


인도는 끝도 없이 들판이 이어지다가 산, 정글, 산, 그리고 다시 들판이 이어지는 땅이다. 철도 지선이 끝나면 자동차들만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이어지고 그다음엔 황소가 끄는 수레들이 다니는 좁은 길이 이어지고 그다음엔 사람들이 다니는 좁은 길이 경작지 사이로 이어지다가 붉은 페인트를 칠한 이정표 근처에서 사라진다. 이런 나라를 어찌 이성으로 지배할 수 있겠는가? 침략자들은 인도를 이성으로 지배하고자 했지만 그들은 유배자의 신세로 남아 있다. 그들이 만든 대도시들은 피난처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 사이의 다툼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괴로움의 산물이다. 인도는 그들의 문제를 안다. 인도는 전 세계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인도는 백 개의 입을 통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존엄한 물체들을 통해 <오소서>하고 부른다. 하지만 어디로 오라는 말인가? 인도는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인도는 사람을 끄는 매력일 뿐 약속은 아니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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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동굴은 꽤 가까이에 있었다. 그들은 물웅덩이를 빙 돌아서 등에 작열하는 햇살을 받으며 매력 없는 바위 몇 개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하나씩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다양한 형체들과 색깔들이 시커먼 입을 벌린 작은 동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마치 물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밋밋하고 개성 없는 절벽들, 그 절벽들을 이어주는 점착성을 지닌 개성 없는 하늘, 인위적으로 보이는 서툰 동작으로 절벽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흰 솔개, 품위 있게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지닌 인간이 생겨나기 전의 지구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솔개가 퍼덕거리며 날아갔다. 어쩌면 새들이 생겨나기 전에..... 이윽고 동굴의 시커먼 구멍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어 부인에게 마라바르 동굴은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그녀는 동굴 안에서 거의 실신할 뻔했고 다시 바깥 공기 속으로 나오자마자 그 말을 하고 싶은 걸 참느라 애써야 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로 그녀는 평소에도 실신을 잘하는 데다 사람들이 모두 따라 들어오는 바람에 동굴이 꽉 찼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하인들이 빽빽하게 차자 동굴의 둥근 방에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아지즈와 아델라에게서 떨어진 무어 부인은 누구와 몸이 닿는지도 알 수 없었고 호흡조차 곤란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정체 모를 불쾌한 맨살이 얼굴에 부딪치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입구 쪽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밀려드는 인파에 도로 떠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머리를 부딪쳤다. 그리고 잠시 이성을 잃고 미치광이처럼 헐떡거리며 여기저기 부딪쳤다. 혼잡과 악취에 놀랐을 뿐 아니라 메아리에도 겁을 먹었던 것이다. (P222-223)


그는 필딩에게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이 아는 대로 숨김없이 들려주었다. 한 시간 전에 데릭 양이 무드쿨의 차를 몰고 도착했는데 그녀와 퀘스티드 양 둘 다 끔찍한 상태였다. 그들은 곧장 맥브라이드의 집으로 갔으며 마침 집에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고소장을 작성하고 기차역에서 아지즈를 체포하도록 조처했다.

“고소 내용이 정확히 뭡니까?”

“그가 동굴 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추행을 하려 했다는 겁니다. 그녀가 자신의 쌍안경으로 그를 때리자 그는 쌍안경을 잡아당겼고 쌍안경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녀는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답니다. 방금 그의 몸수색을 했는데 그 쌍안경이 주머니에 들어 있더군요.”

“오, 아니에요, 아냐, 아니에요. 5분이면 모든 오해가 풀릴 거예요.” 필딩은 다시 그렇게 외쳤다.

“이걸 보시죠.”

쌍안경의 끈은 끊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이 분명했고 렌즈 부분이 짓눌려 있었다. 증거상으로는 <유죄>였다.

“그녀가 더 한 말은 없나요?”

“메아리에 겁을 먹은 것 같더군요. 당신도 동굴에 들어가 봤나요?”

“한 군데요. 메아리가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건가요?” (P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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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면 짜증과 욕정이 독처럼 퍼지면서 나타나는 혼란은, 질서를 원하는 인간의 소망에 대한 인도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물고기들은 더 잘 견딘다. 물고기들은 저수지가 말라붙으면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비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인간들은 1년 내내 평화롭기를 원하며 그로 인해 이따금 재난이 발생한다. 문명이라는 의기양양한 기계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고 돌로 만든 자동차처럼 꼼짝도 않게 되면, 영국인들은 인도를 개조하겠다는 목적으로 들어왔으나 결국 인도의 방식에 통합될 뿐만 아니라 인도의 먼지를 뒤집어쓰게 된 앞선 침입자들과 비슷한 신세가 되고 만다. (P322)


“당신은 그 암붕에 이르러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피고가 따라 들어왔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퀘스티드 양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니에요.” 그녀가 단조롭고 매력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법정 여기저기서 작은 술렁거림이 일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필딩뿐이었다. 그는 퀘스티드 양이 신경 쇠약을 일으킬 것이며 친구 아지즈가 구원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씀이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크게 말씀해 주세요.” 판사가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제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아요.”

“무슨 실수요?”

“닥터 아지즈는 동굴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았어요.”

경찰서장은 서류를 탁 던졌다가 다시 집어 들며 차분하게 말했다. “자, 퀘스티드 양. 계속합시다. 사건 발생 두 시간 뒤에 저의 집에서 당신이 직접 서명한 조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맥브라이드 씨, 죄송하지만 중지해 주세요. 내가 증인과 직접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방청객께서는 조용히 해주세요. 계속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모두 퇴장시키겠습니다. 퀘스티드 양, 자신의 증언이 어마어마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명심하시고 이 사건의 담당 판사인 나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닥터 아지즈는 따라 들어오지......”

“의학적인 이유로 이 재판을 중단합니다.” 터턴의 말을 듣고 소령이 그렇게 외치자 영국인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덩치 큰 백인들에 가려 자그마한 판사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인도인들도 일어섰다. 수백 가지의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므로 나중에 사람들은 이 대이변에 대해 저마다 다르게 설명하게 되었다.

“기소를 취하하는 겁니까? 대답해 주세요.” 정의의 대표자가 외쳤다.

퀘스티드 양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이제 마라바르의 장면들은 사라지고 다시 현실의 무미건조함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속죄와 고백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녀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모든 것을 취하하겠습니다.” (P347-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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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어부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긴 했지만 이미 다른 곳에 열정을 바친 중년의 사내들이었기에 조금 안면이 있는 사람의 죽음에 슬픔이 폭발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뿐이었다. 잠시나마 두 사람이 슬픔을 교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곧 지나갔다. 한 인간이 지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슬픔들, 인간들의 슬픔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심지어 돌멩이의 그것에까지 애석함을 느낀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영혼은 금세 지치고 자신이 이해하는 얼마 안 되는 것까지 잃게 될까 봐 습관이나 형세에 따라 규정된 제한 선 뒤로 후퇴하여 거기서 인생을 견딘다. 필딩은 고인을 겨우 두세 번 만났고 하미둘라는 먼발치에서 한 번 보았을 뿐이므로, 둘 다 딜쿠샤에서 열릴 <승리의 만찬>에 더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들은 슬픈 소식이 아지즈의 즐거움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그에게는 내일에나 무어 부인의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P374-375)


그는 이슬람 사원을 지나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했다. <부질없는 짓이야. 모두 사상누각이지. 이 나라가 현대화될수록 붕괴는 더 끔찍할 거야. 잔혹과 부정이 판치던 18세기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파괴된 것들을 복구했지.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이 메아리치고 있고 그 메아리는 멈출 수가 없어. 원래의 소리는 무해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메아리는 모두 악하지> 이 메아리에 대한 생각은 그의 마음 끝자락에 놓여 있어서 더 이상 발전시킬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놓쳤거나 거부한 세계에 속했다. 이슬람 사원도 그것을 놓쳤다. 필딩과 마찬가지로 저 짧은 회랑들도 제한된 피난처만을 제공했다. <신(알라신) 외에는 신이 없다>는 구호는 복잡한 물질계와 정신계에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라 종교적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P418-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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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사원]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라얀 고드볼 교수는 마라바르산에서 서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신 앞에 서 있었다. 신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고 자정이 되어야 세상에 올 터였다. 그러나 신은 이미 수 세기 전에 탄생했다고도 할 수 있었고, <우주의 지배자>로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초월하므로 영원히 탄생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신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했다. 지금 신과 고드볼 교수는 긴 융단의 양 끝에 마주 서 있었다. (P431)


그들은 앞에 있는 신이 아닌 성자 투카람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비힌두교인들이 온당하게 여기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인도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우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혼돈이며, 이성과 형태의 실패였다. 신은 어디 있으며, 이곳의 군중은 누구를 모시기 위해 모인 것인가? 신은 잡다한 것들이 뒤죽박죽 널려 있는 자신의 제단에 있었지만 후손들 사이에 끼여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장미 꽃잎에 묻히고, 위를 덮은 석판화들에 압도되고, 왕의 조상들을 나타내는 황금빛 위패들의 광채에 눌려 알아보기도 어려웠으며, 바람이라도 불면 갈가리 찢긴 바나나 잎사귀에 가려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를 위해 수백 개의 전등이 밝혀져 있었지만 --그 발전기 소리에 찬가의 리듬이 깨졌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바치는 수백 개의 은접시들이 그의 주위에 쌓여 있었지만 최소한의 효과만을 발휘했다. 이 왕국의 시인들이 쓴 비문(碑文)들이 읽을 수도 없는 곳들에 걸려 있거나 벽토에서 못이 빠져 뒹굴고 있었는데, 그중에 신의 보편성을 나타내기 위해 영어로 쓰긴 했으되 도안가의 실수로 그만 <God si Love>라고 새겨진 것이 있었다.

God si Love. 이것이 인도의 최후의 메시지일까?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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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당신의 어머니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였지요.” 아지즈는 벅찬 감사의 마음에 당황하여 침묵에 빠져 들었다. 무어 부인의 이러한 영원한 미덕은 결과적으로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를 위해 증인이 되어 주지도 않았고 감옥으로 면회를 온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언제나 그녀를 사랑했다. “지금은 인도의 가장 좋은 계절인 우기지요.” 행렬의 등불들이 흔들리는 커튼에 수놓인 장식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분께 이 계절을 꼭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만물이 행복한 때예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들을 외쳐대는 저 밖의 사람들도 행복하지요. 저수지마다 물이 가득하니 즐거워서 춤을 추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도예요. 당신이 관리들과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를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어쩔 수가 없네요. 지금 30분 정도라도 배를 타고 나가 볼까요?” (P47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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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국가가 된 인도! 이 얼마나 멋진 이상인가! 따분한 19세기의 자매 국가 모임에 참여하는 마지막 주자! 현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뒤뚱거리며 오는 이! 필적할 만한 나라는 신성 로마 제국뿐인 인도는 어쩌면 과테말라나 벨기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리라! 필딩이 조롱했다. 아지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쩔 줄을 모르고 이리저리 날뛰다가 소리쳤다. “어쨌든 영국인은 타도되어야 해요. 그것만은 확실하지요. 당신들은 하루 빨리 타도되어야만 해요. 우리 인도인들은 서로를 증오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대상은 당신들입니다. 내가 하지 못하면 아메드가, 카림이 할 거예요. 50년이, 아니 5백년이 걸린다고 해도 우린 당신들을 몰아낼 겁니다. 그래요, 우린 지독한 영국인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바다에 처넣을 거예요. 그다음에.” 그는 필딩을 향해 맹렬히 달려갔다. “그다음에,” 그는 필딩에게 반쯤 입을 맞추며 결론지었다. “당신과 나는 친구가 될 거예요.”

“왜 지금 친구가 될 수 없지요?” 필딩이 그를 다정하게 껴안고 말했다. “나도 원하고 당신도 원하는데.”

그러나 말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졌고, 땅도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 바위들을 내밀어 그들이 나란히 달리지 못하도록, 앞뒤로 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사원들도, 저수지도, 감옥도, 궁전도, 새들도, 짐승의 썩은 시체도, 영빈관도, 그들이 숲에서 나와 마우를 내려다보았을 때 눈에 들어온 모든 것들도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 백 개의 목소리로 <아니, 아직은 안 된다>고 말했고, 하늘도 <아니, 여기선 안 된다>고 말했다. (P49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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