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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04. 2023

조셉 콘래드의 <노스트로모>

영화 <노스트로모> 1996년

'암흑의 핵심'에서의 제국주의는 아프리카의 야생과 참혹한 전쟁을 치른다. 수탈의 대상도 주로 원주민 그 자체다. 그래서 제국주의의 현실을 고발하는 르뽀의 성격이 있는 반면,  '노스트로모'의 제국주의는 엄밀히 말해 유럽인들 간의 전쟁이며, 은광같은 노획물을 놓고 벌어진다.      

[1]

아름답고 울창한 오렌지 과수원이 긴 역사를 드러내기는 했어도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시절과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술라코시는 쇠가죽과 인디고 교역이 꽤 성행한 해안의 항구에 불과했다. 쾌속 범선의 선체 선도에 기초해서 건조된 현대식 배라면 돛만 펄럭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강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야 움직일 수 있는 정복자들의 투박한 원해용 갤리언은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술라코만에 진입하지 못한 채 멈춰 있곤 했다. 세상의 어떤 항구들은 눈을 속이는 바닷속 암초와 해안에 몰아치는 사나운 비바람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술라코는 장엄한 정적이 감도는 플라시도만의 깊은 바다에서 교역 세계의 유혹이 침범할 수 없는 성소(聖所)를 찾아냈다. 애도의 휘장처럼 구름이 드리워진 깎아지른 고봉이 벽처럼 둘러싼 가운데 그것은 마치 바다 쪽으로 트이고 지붕 없는 거대한 반원형 사원(寺院)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P11-12)   

  

찰스 굴드는 이제 아무리 애쓰더라도 아버지에 대해서 살아 계실 때와 같은 식으로 생각할 수 없으리라는 느낌에 가슴이 아팠다. 이제 더는 살아 숨 쉬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이 그의 독자적 성격에 단단히 영향을 미치면서 애절하면서도 분노에 들끓는 행동에의 욕망을 그의 가슴에 채웠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본능은 옳았다. 행동은 위안을 준다. 행동은 생각의 적이고, 유망하게 보이는 환상의 벗이다. 우리는 행동할 때만 운명을 장악했다는 느낌을 얻는다. 그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분명 광산뿐이었다. 때로는 죽은 자의 진지한 소원을 따르지 않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는 (속죄로서) 가급적 철저히 불복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 광산은 어처구니없는 정신적 재앙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광산 개발은 진지한 정신적 승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승리를 망자의 영전에 바쳐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찰스 굴드의 감정은 이런 것이었다.          (P88-89)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오. 어디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겠소? 이제 우리 안의 모든 것이 이 일에 걸려 있소.”

그는 올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을 아주 다정하고도 약간 안쓰러운 듯이 내려다보았다. 찰스 굴드가 유능한 까닭은 환상을 품지 않기 때문이었다. 굴드 채굴권을 지켜 내기 위해 그는 도처에 만연되어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부패의 구렁텅이에서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무기를 갖고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그는 무기를 잡으려고 몸을 굽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친을 살해한 은광이 자신을 유혹해서 의도했던 것보다 더 멀리 가게 했다는 느낌이 한순간 들기도 했다. 그러나 두루뭉술한 감정의 논리로, 자기 인생의 가치는 성공에 달려 있다고 설득했다.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P111-112)     


한없이 펼쳐진 넓은 공간에서는 아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광대함에 도전하려는 듯이 나무 쟁기와 굴레에 매단 황소를 끌어 땅을 갈고 있었다. 멀리서 소몰이꾼들이 말을 타고 질주했고, 어마어마한 소 떼가 드넓은 가축 목장을 가로질러 까마득히 멀리까지 한 줄로 비뚤배뚤 서서 뿔 달린 머리를 한쪽 방향으로 향한 채 풀을 뜯고 있었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사시나무 한 그루가 길가의 초가지붕 오두막에 그늘을 드리웠다. 몇 줄로 대열을 이뤄 무거운 짐을 들고 터벅터벅 걷던 인디언들은 모자를 벗고 슬픔에 잠긴 무언의 눈을 들어, 노예였던 조상들이 맨손으로 만든 카미노 레알 대로에서 부서진 가루 먼지를 일으키는 행렬을 올려다보았다. 나날이 여행하는 동안 해안 도시의 하찮은 유럽식 허세에 물들지 않은 방대한 내지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자 굴드 부인은 그 땅의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그곳은 평원과 산, 그리고 말없이 고통을 겪으며 애처롭게도 변함없는 인내심으로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거대한 나라였다.              (P115-116)    

 

그는 어느 모로 봐도 몰락한 사람이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의 인생은 파탄 나지 않는 법이다. (P177)   

  

“.....영국인이 가진 확고한 분별력의 특징 중 하나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 순간에 실제적으로 유용한 것만 보는 거죠. 이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요. 우리에겐 정치적 이성이 없어요. 정치적 열정만 있죠. 때로 그렇다는 겁니다. 신념이란 게 대체 뭡니까? 실제적이거나 감정적으로 사적 이익이 되는 개별적 견해일 뿐이에요. 어느 누구도 아무 이유 없이 애국자가 되지는 않거든요. 애국자라는 단어가 자기 목적에 잘 들어맞는 거죠. 하지만 나는 명료하게 꿰뚫어보기 때문에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겁니다. 안토니아! 나는 애국적 환상 같은 건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오직 연인으로서의 지고한 환상만 있을 뿐입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가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그렇지만 그 환상으로 인해 아주 멀리 나아갈 수 있지요.”                   (P237-238)     


세관 아래층에 보관된 산토메 광산의 은괴를 장악하는 것이었는데, 볼손 출신의 지방 의회 의원인 가마초와 푸엔테스가 선두에 섰다는 점에서 정치적 색채를 띠었다는 걸 이해해야해. 사실 오후 늦게 폭도들은 약탈의 기대가 좌절되자 비좁은 거리에서 ‘자유주의 만세!’, ‘봉건제도 타도!’(그들이 생각하는 봉건 제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침략자와 병신들을 타도하자.’라고 외쳐 대며 저항했어. 가마초와 푸엔테스는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잘 알았을 거야. 빈틈없는 신사들이지. 의회에서 본인들을 중도파라고 불렀고, 늘 인도주의적 우려를 늘어놓으며 강력한 조처에 반대했거든. 그런데 몬테로가 승리했다는 소문이 돌자 그들의 신중한 처신이 미묘하게 달라지더니, 의장석에 앉은 가엾은 돈 후스테 로페스에게 뻔뻔스럽게 도전하기 시작하더군. 가엾은 의장은 도전을 받고 깜짝 놀라서 수염을 쓰다듬거나 의장석 종을 치는 수밖에 없었지. 리비에라 당파의 대의가 무너졌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그들은 확신에 찬 자유주의자로 변신했고, 마치 샴쌍둥이처럼 함께 행동하면서 결국에는 몬테로파의 명분을 내걸어 폭동을 지휘한 거였어.              (P283)   

  

사랑하는 누이야, 그 위대한 대의를 위한 대탈출에 나와 동행할 인간이 바로 이런 사람이란다. 약삭빠르기보다는 순진하고, 교활하기보다는 오만하고, 그를 부리는 사람들이 쓰는 돈보다 더 아낌없이 자기 능력을 베풀지. 감상이 아니라 자부심을 느끼며 그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와 사귀게 되어 다행이야. 자기 분야에서 작은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서보다는 동무로서 그가 더 중요하단다. (P308)    

 

[2]

찰스 굴드는 몸을 돌려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거의 화가 나서 지방 의회 의장의 불안한 시선에 거절의 표시로 고개를 약간 가로저었다. 그 어떤 공식적 절차에든 산토메 광산을 엮어 넣는 것은 찰스 굴드의 방침이 아니었다.

“여러분, 나는 각자 집에 들어앉아서 운명을 기다리라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공식적으로 몬테로의 손에 스스로를 넘겨줄 필요는 없어요. 돈 후스테의 말씀대로 불가피한 운명에 순종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과연 페드리토 몬테로가 그 불가피한 운명인지 밝혀질 때까지는, 얼마나 굴복할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 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나라의 결함은 정치 행위에 적절한 한도가 없다는 겁니다. 불법에 납작 엎드려 순종하고 난 다음에 피비린내 나는 반항을 이어 가지요. 그건 안정과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P79)     


산타마르타의 굴드 광산 대리인은 처음에 페트리토를 온건한 견해를 가진 인물로 보았고 그 장군의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허영심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시종이거나 하급 서기였던 페드리토 몬테로가 코스타구아 공사관이 외교관 숙소로 제공한 파리의 여러 호텔 다락방에서 뒹굴거리며 프랑스어로 쓰인 경박한 역사서, 가령 제2제국에 관한 앵베르 드 생타망의 책을 탐독했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페드리토는 화려한 궁정의 호사스러움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자신도 모르니 공작처럼 공사를 지휘하며 온갖 쾌락을 마음껏 누리고 다방면에서 최고 권력을 휘드르며 살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몬테로가 혁명을 일으킨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혁명의 근본적 원인이란 늘 매한가지여서, 대중의 정치적 미성숙과 상류층의 나태함과 하류층의 무지몽매함에 그 뿌리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도 믿기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P102-103)    

 

열네 시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노스트로모가, 누워 있던 긴 수풀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삭거리며 물결치는 풀 속에 무릎까지 빠진 채 서 있는 그는 방금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잘생기고 건장하며 유연한 몸으로 머리를 뒤로 젖힌 채 팔을 쭉 뻗고 허리를 서서히 비틀어 기지개를 켜더니 그는 으르렁거리듯 흰 이를 드러내며 여유롭게 하품했다. 잠에서 깨어난 이 순간 그는 당당하고 무심한 야생 동물처럼 사악한 구석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갑자기 뚫어지게 허공을 응시하자 그 시선에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났다. (P132~133)    

 

“소티요에게 여러 날 걸려야 샅샅이 수색할 만큼 넓은 은닉처를 알려 줘야겠지요. 엄청난 은괴를 숨기고도 표면에 자국이 남지 않을 곳을.”

“그리고 가까이 있어야겠지.” 의사가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물에 빠뜨렸다고 하세요.”

“그건 진실을 알려 주는 장점이 있군.” 의사가 경멸하듯이 말했다. “그 말은 믿지 않을 거야.”

“소티요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한 곳에 빠뜨렸다고 하세요. 그러면 당장 믿을 겁니다. 나중에 잠수부를 동원해서 되찾을 수 있도록 항구에 빠뜨렸다고 말하세요. 돈 카를로스 굴드가 방파제 끝과 입구를 이은 선 위의 어딘가에서 은괴를 갑판 밖으로 조용히 내던지라고 제게 명령한 것을 알아냈다고 하세요. 그곳은 그리 깊지 않아요. 소티요에게 잠수부는 없지만 기선과 보트, 밧줄, 사슬, 선원이라고 불릴 만한 자들이 있으니까 은괴를 찾아 뒤지게 하세요. 어리석은 부하들을 시켜서 뒤로, 앞으로, 옆으로 바닥을 훑게 만드세요. 그동안에 그 녀석은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지켜보겠지요.”

“정말 놀라운 생각이네.” 의사가 중얼거렸다.            (P195)   

  

미첼 선장은 발코니에서 걱정스럽게 그 소리를 들었다. “당시 항구의 유일한 영사 대리로서 입장이 미묘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당연히 모든 일이 걱정거리였지요.”라는 말은 이후 몇 년간 술라코를 찾은 외부의 유명 인사들에게 그 ‘역사적 사건’을 들려줄 때 판에 박힌 듯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는 “무법천지의 해적 같은 악당 소티요와 정규군으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잔혹함에서는 뒤지지 않는 돈 페드로 몬테로의 폭정 사이에서 복잡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자기 입장에서 품위와 중립성을 지키기가 몹시 어려웠다고 언급하곤 했다. 미첼 선장은 사소한 위험을 과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고 그는 거듭 주장했다. 그날 땅거미가 질 무렵에 “내 가엾은 부하, 노스트로모”를 보았던 것이다. “내가 발굴하고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선원, 카이타로 달려간 그 유명한 질주의 주인공 말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이지요!”          (P211-212)     


어리석음으로 따지자면 그들은 다 똑같다. 법과 정부를 만들고 하층민을 위해 쓸모없는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그 높으신 분들은.

카파타스는 삽을 집어 들었고, 손바닥에 손잡이의 감촉이 느껴지자 불현 듯 보물이 담긴 쇠가죽 상자를 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몇 번 흙을 파내자 상자 몇 개의 모소리와 귀퉁이가 드러났다. 그리고 흙을 더 파냈을 때 상자들 중 하나가 칼로 찢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그는 소리 죽여 탄성을 질렀고 털썩 무릎을 꿇고는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어깨 너머로 이쪽저쪽을 돌아보았다. 그 뻣뻣한 가죽은 찢어진 자리가 맞물려 있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찢어진 긴 틈으로 손을 밀어 넣어 더듬어 보았다. 은괴가 있었다. 하나, 둘, 셋, 그래 네 개가 사라진 것이다. 가져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드쿠가? 그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무슨 빌어먹을 변덕으로? 그에게 설명하려고 해. 은괴 네 개가 보트에 실려 갔고 그리고......... 피가 있었다!

훤히 트인 만 앞에서 구름에 가리지 않은 태양이 맑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모든 인간의 눈에 아득히 먼 무한히 장엄한 침묵과 평화 속에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엄숙하고도 고요한 신비 의식을 완성한 것이다. 은괴 네 덩어리가 부족하다니!....... 그리고 그 핏자국!

십장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냥 손을 베였을지도 몰라.” 노스트로모가 중얼거렸다.           (P238)   

  

“평화는 결코 오지 않는 걸까요? 평안함은 절대로 깃들지 않을까요?” 굴드 부인이 속삭였다. “내 생각은 우리가......”

“그렇습니다!” 의사가 부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물질적 이익의 발달에는 평화와 평안이 없습니다. 물질적 이익에 그 나름의 법과 정의가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편의에 기초한 것이라 비인간적입니다. 거기에는 도덕적 원칙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올곧음이 없고, 영속성과 힘도 없습니다. 굴드 부인, 굴드 광산이 상징하는 모든 것이 수년 전의 야만성과 잔인함, 무질서처럼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를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으세요. 모니검 선생님?” 그녀는 영혼의 가장 민감한 곳을 찔린 듯이 소리쳤다. 

“진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의사가 완고하게 말했다. “굴드 광산이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분노와 유혈 사태와 보복을 일으킬 겁니다. 사람들이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경영주를 구하려고 광부들이 지금도 시내로 진군해 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마주 잡은 손등으로 눈을 눌렀고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위해 우리가 지금껏 노력해 왔다는 건가요?”        (P258-259)     


'구제 불능‘이라는 -조금 전 모니검 의사가 사용한- 단어가 고요히 슬픔에 잠겨 꼼짝 않고 있는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 위대한 은광에 대한 헌신에 있어서 구제 불능인 사람은 바로 그 경영주였다! 질서와 정의의 승리를 위해 철석같이 믿은 물질적 이익에 굳은 결의로 맹렬히 봉사해 왔다는 점에서 그는 구제 불능인 사람이었다. 가엾은 남자! 그녀는 남편의 관자놀이에 난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생생히 떠올렸다. 그는 완벽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녀가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었을까? 그는 어마어마하고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사랑은 일순간의 망각이자 짧은 도취에 불과했다. 그 기쁨을 돌이켜 보면 마치 깊은 슬픔을 겪은 듯이 비애감이 느껴진다. 성공적인 행위에는 이념의 도덕적 타락을 낳는 무언가가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그녀는 산토메 광산이 평원 지대를 넘어 온 나라를 뒤덮고 위협하며,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서 엄청난 부를 누리고, 어떤 폭군보다도 무정하며, 최악의 정부보다도 잔인하고 독재적이며, 그 위대함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생명을 짓밟는 광경을 그려 보았다. 남편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는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완벽했고, 더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결코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결코 그녀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 스페인풍의 고택에서 단 한 시간도 온전히 독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코벨랑가의 마지막 후예와 아베야노스가의 마지막 후예는 구제 불능의 인간이라고 모니검 의사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산토메 광산이 코스타구아나 굴드가의 마지막 후예를 사로잡아 소진하고 태워 버리는 것을 생생히 보았다. 광산은 아버지의 가엾은 약점을 지배했듯이 아들의 활력적 정신을 지배했다. 굴드가의 마지막 후예에게 그것은 무서운 성공이었다. 마지막이라!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바라 왔다. 어쩌면..... 그러나 아니! 굴드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P270-271)     


“무얼 하셨어요?” 그녀가 평소의 목소리로 물었다. 

“라미레스를 쐈지...... 파렴치한 놈!” 그는 가장 시커멓게 그늘이 드리워진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녀석이 도둑놈처럼 왔다가 도둑놈처럼 쓰러졌어. 내 자식을 보호해야지.”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한 발짝도 내딛지 않았다. 자기 집안의 명예를 지킨 노인의 조각상처럼 억센 모습으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린다는 돌 조각처럼 흔들림 없는 그의 단단한 팔에서 떨리는 손을 떼고 말없이 가장 시커먼 그늘로 걸어갔다. 땅 위에서 알아볼 수 없는 형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절망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잔뜩 긴장한 그녀의 귀에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오늘 밤에는 오지 말라고 간청했잖아요. 오. 나의 조반니! 당신은 그러겠다고 햑속했고요. 아! 그런데, 왜 온 거예요. 조반니?”

동생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끊어졌다. 재주 많은 부두 노동자 십장, 은괴를 더 가져가려고 협곡 쪽으로 몰래 노지를 가로지르다가 조르조 영감에게 불시에 피격된 산토메 보물의 주인이자 노예인 그는 무심하고 냉정하게, 하지만 놀랍게도 가냘프게 들리는 소리로 땅바닥에서 대답했다. 

“당신을 한 번 더 보지 않고는 오늘 밤을 지낼 수 없을 것 같았어....... 나의 별, 내 작은 꽃.”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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