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요나손의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영화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13년

by 노용헌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셰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 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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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자기가 왜 트렁크를 훔칠 생각을 했을까 자문해 보았다. 그냥 기회가 왔기 때문에? 아니면 주인이 불한당 같은 녀석이라서? 아니면 트렁크 안에 신발 한 켤레와 심지어 모자까지 하나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인생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 그가 좌석에 편안히 자리 잡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P15~16)


그러고 나서 율리우스는 트렁크를 주방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자물쇠를 살펴봤다. 그가 말코손바닥사슴고기 스테이크를 감자와 곁들여 먹을 때 사용했던 포크를 혓바닥으로 스윽 핥은 다음 자물쇠 구멍을 쑤시자 자물쇠는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그는 알란더러 훔쳐 온 분은 당신이니 직접 여시라고 권했다.

「우리 사이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소?」 알란이 대꾸했다. 「얻은 것을 정확히 반씩 나눌 거요. 하지만 만일 이 속에 내게 맞는 신발 한 켤레가 들어 있다면, 그건 내가 챙기겠소.」

알란은 트렁크 뚜껑을 들어 올렸다.

「세상에나!」 알란이 외쳤다.

「세상에나!」 율리우스도 입을 딱 벌렸다. (P35~36)

알란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학교는 3년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쓰기와 읽기와 셈하기를 배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정치의식과 투철한 니트로글리세린사의 동료들은 그에게 세상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알란의 인생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알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메시지가 소년의 영혼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렇게 정착한 뒤에는 영원히 남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P47)


“시빌! 여긴 빌어먹을 호텔이 아니라고!”

아야야! 알란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정말로 뭔가 배를 채울 것과 다리 뻗고 누울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생을 조금 더 연장해 보기로 결정하고 나니, 사는 게 왜 이리도 고단한지! 사람들은 양로원 생활이 이러니저러니 불평하지만, 적어도 거기 앉아 있으면 이렇게 삭신이 쑤시는 일은 없지 않은가.

율리우스 역시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과 자기 친구들은 길을 잃어 몹시 피곤한 상태며, 여기서 잘 수만 있게 해준다면 물론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또 필요하다면 음식은 건너뛸 수도 있고.

“어딘가 잘 곳을 마련해 준다면 일인당 1천 크로나씩 드리겠소.”

“뭐? 1천 크로나? 당신들 혹시 수배범 아니야?”

그냥 해본 말이었으나 완전히 정곡을 찔렀다. 율리우스는 이 말을 못 들은 척하면서, 자신들은 장시간 여행했는데 자신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으나 여기 계신 알란은 너무 고령이어서 몹시 힘겨워하신다고 설명했다.

“난 어제부로 백 살이 되었다오.” 알란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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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을 단 짜리몽땅한 장군은 알란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진정한 장군은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하는 법이며 지금은 모두가 다리를 통해서든 다른 방법으로든 일단 강 건너편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알란도 함께 가기를 원한다면 대환영이며, 자기가 저녁 식사에 초대하겠다는 거였다.

“알라루시아식 파에야를 대접하겠소. 내 요리사가 남부 지방 충신이거든, 콤프렌데(내 말 이해하겠소)?”

물론 알란은 이해했다. 그는 자기가 방금 구한 사람이 다름 아닌 프랑코 총통이고, 자기가 군복이 아닌 더러운 재킷을 입고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으며, 몇백 미터 떨어진 언덕위에 있는 친구들이 아마도 이 모든 광경을 쌍안경으로 지켜 볼 것이고, 따라서 만일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자신으로서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이 분쟁 가운데서 이제 진영을 바꿔야 할 때라는 것을 이해했다. (P102)


이제는 물러설 수 없게 된 알란이 설명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만일 우라늄을 두 개의 동일한 부분으로 나누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하나로 합친다면, 우라늄은 지금 이 기지를 몽땅 날려 버리는 대신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폭발하지 않겠냐는 말이에요.”

“두 개의 같은 부분?” 프로젝트 책임자인 오펜하이머는 반문했다.

벌써 그의 머리는 아주 복잡한 계산들을 철컥철컥 수행하고 있었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 그래요! 물론 물리학자님 생각이 옳으세요.” 알란이 다시 말했다. “맞아요, 두 개의 부분이 반드시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지요. 요점은 이 두 부분이 다시 합쳐졌을 때, 연쇄 핵분열에 필요한 질량을 이룰 수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이 초특급 기밀 모임에 알란이 들어오게 된 데 일부분 책임이 있는 루이스 중위는 이 시건방진 스웨덴 놈을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데,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물리학자들 중 하나가 알란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당신은 우라늄의 두 부분을 어떻게 다시 합칠 생각이오? 그리고 언제? 공중에서?”

“네, 바로 그거예요. 물리학자님! 아님 혹시 화학자님이신가요?...... 오, 아니라고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지금 선생님들의 문제는 원자를 폭발시킬 수는 있는데 그걸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만일 임계 질량의 우라늄을 반으로 나눠 버리면, 그건 더 이상 임계 질량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거꾸로, 이렇게 나눠진 두 개의 비 임계 질량을 합쳐 놓으면 다시 임계 질량이 되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 개의 질량을 합쳐 놓을 생각이시오? 가만있자, 성함이..... 실례지만 당신은 누구시죠?” 수석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물었다.

“저는 알란이에요.” (P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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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네 시에서 양동이가 슈퍼마켓 앞을 지킨 지 벌써 나흘째였다. 그렇게 말뚝처럼 서서 볼트, 또는 백 살 먹은 늙은이, 또는 그보다 조금 덜 삭았다는 빵강 머리 여편네, 또는 말총머리라는 것 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어떤 친구, 또는 메르세데스 승용차 한 대가 혹시 나타나는지 보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 장소를 감시하겠다는 생각은 그가 아닌 보스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의 동생이기도 한 더 바이롤런스 갱단의 새 보스가 스몰란드의 어느 병원 앞에서 백 세 노인을 목격했다는 소식은 보스에게까지 올라갔다. 이 때문에 보스는 이 지역에서 가장 붐비는 식료품점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 한밤중에 로트네 시내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필시 그 근방에 살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배가 고프기 마련이고, 그러면 뭔가 먹어야 한다. 그리고 집에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지면 먹을 걸 사러 기어 나와야 한다....... (P149)

“손들어!”

“손들라고?”

이 말은 알란이 상당히 오랜 기간 들어 온 말들 중 가장 멍청한 말이었던지라, 그는 이 질문에 주절주절 논평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신사분은 우리가 손을 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백 살이나 먹은 늙은이가 사과를 던져 공격이라도 할 거라 생각하시나? 아니면 여기 계신 이 숙녀분께서 벨기에 딸기로 기총 소사라도 할 거라고 걱정하시나? 그것도 아니라면.....

“오, 알았어, 알았어! 그놈의 손은 올리든 말든 마음대로 해. 하지만 허튼수작하면 용서 없어, 알았어?”

“허튼수작이라고? 어떤 종류의 허튼수작을 말씀하시나?”

“아, 그 주둥이 좀 닥쳐, 할아범!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 빌어먹을 트렁크가 어디 있는지나 빨리 말해. 그리고 그걸 지키기로 되어 있는 친구는 지금 어디 있는지도 말하고.”

아이고, 올 게 왔구나. 예쁜 언니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무도 양동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머리통 터지게 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 장면에 등을 돌리고 있는 코끼리만이 예외일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녀석은 별안간 창자 속을 시원하게 비우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코끼리가 용변을 볼 때는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겐 큰 주의가 요망되는 법이다!

“으익, 이게 뭐야!” 양동이는 몇 걸음 도망가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 우라질! 그런데 당신들은 도대체 코끼리를 왜 데리고 있는 거야?” (P159-160)


물론 알란은 폭약 전문가였다. 그리고 술 몇 잔 나누면서 몇 시간 만에 미국 대통령과 절친이 된 사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스웨덴 사람이었다. 만일 알란이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다면, 왜 이 임무를 수행할 인물로 외국인인 자신을 선택했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받았더라면 대통령은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은 서로 별개이면서도 상충(相衝)될 가능성이 있는 두 개의 군사 지원 프로젝트를 공공연히 진행해 나갈 수 없는 입장이라고. 공식적으로 미국은 장제스와 국민당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중국의 다리들을 날려 버리기 위해 폭약을 가득 실은 배 한 척을 은밀히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작전을 지휘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장제스의 아름다운 부인, 하지만 트루먼이 보기에는 뱀 같은 여자이며 반은 미국인이라 할 수 있는 쏭메이링이었다. 가장 고약한 점은 이 모든 게 쏭메이링과 엘리너가 차 한잔 마시는 중에 결정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어쨌든 이제 대통령은 알란 칼손을 쏭메이링에게 소개해 준 다음 자기는 이 머리가 지끈지끈한 일에서 손을 뗄 생각이었다. (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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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하나가 당신은 누구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알란은 자신은 알란이며 스웨덴으로 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여행자들은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정말로 이 낙타를 타고 북유럽까지 갈 생각이오?

“물론이죠. 외레순드 해협을 건널 때는 잠깐 배를 타야겠지만요.”

세 사내는 외레순드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알란이 미국과 영국의 하인에 불과한 이란의 샤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기들과 동행하자고 청했다. (P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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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대통령이 당신 이름의 정확한 철자를 알고 싶답니다. 직접 통화해 보실래요?」 알란이 베리크비스트에게 말했다.

거의 무아지경 상태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자기 이름의 철자를 대고 난 제3서기관 베리크비스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적어도 8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8분은 타에 엘란데르 수상이 두 가지 지시 사항을 하달하기 위해 테헤란 주재 스웨덴 대사관의 제3서기관 베리크비스트에게 전화를 거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첫째, 즉각 알란 칼손에게 외교관 여권을 발급할 것.

둘째, 칼손 씨가 조속히 귀국할 수 있게 조치할 것.

「하지만 이분은 주민 등록 번호도 없는걸요.」 제3서기관 베리크비스트가 우는 소리를 했다.

「그 문제는 제3서기관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시오. 제4서기관 또는 제5서기관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오.」 엘란데르 수상이 쏘아붙였다.

「하지만 제4서기관 같은 것은 없는데요. 제5서기관도 없고요…….」

「그렇다면 결론이 뭐겠소?」 (P234)


“형이 항상 대장 노릇 하는 게 지겨워서 그랬어!”

보세는 자신의 대꾸에 대해 베니가 한 대꾸에 내놓을 대꾸가 벌써 준비되어 있는 듯,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알란이 두 형제의 말을 끊으면서 말하기를, 자기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구 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분쟁은 대개 <내가 멍청해! -아냐, 멍청한 건 너야!- 아냐, 멍청한 건 너라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서 보드카 한 병을 함께 비우고 나서 앞일을 생각하는 거란다. 문제는 베니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알란은 물론 그의 몫까지 마셔 줄 수 있지만, 이 경우 효력은 장담할 수 없단다.

“그렇다면 영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보드카 한 병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거요? 이 분쟁은 구약 성경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골 깊은 이야기인데?” 보세가 물었다.

“그 분쟁을 해결하려면 술병 개수를 좀 늘려야겠지. 하지만 원리는 같아.” 알란이 대답했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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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까짓 거 문제없어!” 알란이 말했다.

보드카 병의 내용물이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알란과 유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온갖 것들에(정치와 종교 얘기만 빼놓고)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원자 폭탄도 화제에 올랐다. 사실 이 주제는 앞으로 논의해 나가야 할 문제였지만, 얼근히 취한 알란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몇 가지 조언이 흘러나왔다.

“흐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소련의 수석 물리학자 유리 보리소비치 포포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P274-275)


알란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한반도는 일종의 공백 상태에 있었다. 스탈린과 트루먼은 나라를 사이좋게 나누어 점령했고, 임의로 38선을 그어 남과 북으로 양분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 나라를 어떤 형태로 독립시킬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협상이 이어졌다. 트루먼과 스탈린은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역사는 독일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즉 미국이 남한을 세우자 소련은 북한을 만들어 응수했다. 그러고 나서 미국과 소련은 한국 사람들이 자기네끼리 알아서 하도록 놔두었다.

한데 일이 삐딱하게 흘러갔다.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은 서로 자신이 한반도 전체를 통치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시작했다.

3년 후, 거의 4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북은 북이고 남은 남이었다. 38선은 여전히 반도를 가르고 있었다. (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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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알란과 헤르베르트가 흑백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 있다면 대답은 〈아니요〉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알란이 소련의 원수로 변신한 이후 한국의 강력한 이웃은 〈위협〉에서 〈약속〉으로 바뀐 것이다. 만일 김일성이 멋진 소개장까지 써준다면 금상첨화이리라. (……) 알란은, 계획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김일성에게 탱크 3백 대를 선사할 것이다. 아니, 4백 대도 무방하리라. 쩨쩨하게 굴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그런 다음 위원장 동무에게 정중히 부탁하리라. 마오쩌둥 동무와도 볼일이 있으니 중국까지 갈 교통수단과 비자 좀 마련해 달라고. 알란은 자신의 빈틈없는 계획에 만족했다.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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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오만하면서도 호기심이 섞인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야? 누가 당신들을 보냈어? 그리고 이렇게 사기를 치는 목적이 뭐야?”

알란은 미처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별안간 문이 왈칵 열리더니 진짜 메레츠코프 원수가 우당탕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이것은 암살 시도이며 지금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저놈들은 굴라그에서 탈출한 범죄자들이라고 고래고래 외쳤다.

갑자기 방 안에 너무 많은 원수와 부관들이 북적대는 통에 두 병사는 기관단총을 어디에 겨눠야 할지 몰라 잠시 허둥댔다.

하지만 지금 들어온 원수가 진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다시 두 사기꾼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진정하시오, 키릴 아파나세비치 메레츠코프. 내가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김일성이 말했다.

“이 나쁜 놈, 죽여 버리겠어!” 메레츠코프 원수는 알란이 훈장으로 뒤덮인 자기 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고는 길길이 뛰었다.

“네, 그렇네요. 지금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어린 김 동무께서, 그다음엔 위원장 동무께서, 그리고 이젠 원수님 당신도 그러시네요. 아직 내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바로 당신이군요.”

알란은 소파에 앉아 있는 위원장의 손님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난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지만, 이 문제에 대해 혹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천만에!” 문제의 손님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마오쩌둥이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해서, 내 친구 김일성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자들에게는 그다지 동정이 가지 않소.”

“마오쩌둥?” 알란이 외쳤다. “아, 정말 영광입니다! 내 비록 잠시 후면 새벽이슬처럼 사라질 목숨이지만, 그래도 당신의 아름다운 부인께는 꼭 안부를 전해 주세요.”

“당신이 내 아내를 아시오?” 마오쩌둥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알다마다요! 혹시 마오 선생께서 한때 자주 그러셨던 것처럼 근자에 부인을 또 바꾸지 않으셨다면 말입니다..... 전 장칭 님을 몇 해 전 쓰촨 성에서 만나 뵀어요. 그리고 아밍이라는 젊은이와 함께 셋이서 산지에서 트레킹을 좀 했죠.”

“아니, 당신이 바로 알란 칼손이오? 내 아내의 목숨을 구해 준 바로 그 사람?” 마우쩌둥이 놀라며 물었다. (P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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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는 완전히 활동을 멈췄는데 입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때가 있다. 라넬리드 검사가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알란의 이 마지막 헛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대꾸를 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 정말로 당신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셨소? 백 살이나 된 양반이?”

“아니, 내가 미쳤소? 이 나이에 히말라야를 넘게? 내가 항상 이렇게 백 살이었던 건 아니야. 백 살이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지.”

“아, 그래서요?”

“우리 모두는 자라나고 또 늙어 가는 법이지.” 알란은 철학자처럼 말했다. “어렸을 때는 자기가 늙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 자, 그 어린 정일이를 예로 들어 보자고.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엉엉 울어 대던 그 불쌍한 녀석이 이제는 자라서 일국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칼손 씨, 그 김정일 얘기는 생략해도.....”

“오, 미안하오. 그래, 검사님은 내가 히말라야를 넘은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지. 처음 몇 달 동안 내 유일한 길벗은 낙타 한 마리였어. 다른 사람들은 이 짐승에 대해 뭐라고 할지 몰라도, 알고 보면 얼마나 따분한 녀석인지.....”

“제발! 그건 듣고 싶지 않아요! 난 단지...... 제발 그냥 간단하게.....” 라넬리드 검사가 애원했다. (P44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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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드베테르 공항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으나, 베니는 손수 만든 가짜 수의사 자격증과 약간의 전문 용어로 신뢰성을 확보했다. 여기에다 코끼리에 대한 소유증과 위생 증명서, 그리고 알란이 인도네시아어로 작성한 그럴듯해 보이는 서류 한뭉치가 첨부되어 결국 모두가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또 여러 가지 허위 사실 가운데 승객들의 다음 기착지는 코펜하겐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여권 제시는 불필요했다.

승객은 도합 열 명이었다. 백 세 노인 알란 칼손, 악명 높은 도둑이었다가 이제 혐의를 벗은 율리우스 욘손, 만년 학생 베니 융베리, 그의 약혼녀 <예쁜 언니> 구닐라 비에르클룬드, 코끼리 소냐와 독일 셰퍼드 부스터, 식품 도매업자이며 최근에 신앙인이 된 베니의 형 보세, 왕년에 유명한 수사관이었던 아론손, 전(前) 갱단 두목 페르군나르 예르딘, 그리고 예르딘히 형을 살고 있을 때 아들에게 속 터지는 편지를 써서 보냈던 그의 노모 로즈마리 등이었다.

중간의 불필요한 기착들은 모두 생략하고 열한 시간 동안 비행한 끝에 인도네시아 기장은 비행기가 발리 국제공항으로 하강을 시작했다고 알렸고, 알란에게 이제 당신이 착륙 허가를 얻어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알란은 관제탑에서 연락이 오면 자기에게 연결시켜 주기만 하라고 대답했다. 나머지는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거였다.

“그러죠..... 어, 연락이 왔네요.....” 기장의 목소리가 불안해졌다. “그들에게 뭘하고 말하죠? 잘못하면 우릴 쏴버리겠는데요?”

“에이,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 알란은 기장의 헤드셋을 벗겨 자기가 착용하며 영어로 말했다. “헬로? 발리 공항이오?”

관제탑에서는 곧바로 그쪽의 정체를 밝힐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인도네시아 공군을 보낸다고 경고했다.

“내 이름은 달러요. 10만 달러.” 알란이 대답했다. (P48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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