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Mar 08. 2024

아니 에르노의 <사건>

영화 <레벤느망>  2021년

영화 <레벤느망>는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2021년 오드리 디완(Audrey Diwan)이 연출했다. 1963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여대생이 의도치 않은 임신을 한 뒤 중절을 결심하기까지 갈등을 그렸으며,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963년 10월, 루앙에서 생리가 시작되기를 일주일 이상 기다렸다. 쾌청하고 온화한 날들이었다. 너무 이르게 외투를 꺼내 입었고, 몸은 무겁고 무기력했다. 개강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다가 스타킹이나 사러 다녔던 백화점 안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에르부빌 거리에 있는 여학생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며, 팬티에 비친 피를 볼 수 있기를 내내 바랐다. 매일 저녁마다 수첩에 또박또박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쓰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자다가 깨었던 밤에도 곧바로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차렸다. 작년 이맘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일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마치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P13)     

계속 이어 갈 수 있으리라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일주일 전에 이 글을 시작했다. 그저 그 사건에 대해 쓰고 싶다는 욕망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 년 전부터 집필 중인 책을 쓸 때마다 그 욕망이 지속적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생각을 떨칠 수도 없으면서 저항했다. 그 생각에 빠져들면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바로 그 일이었을 거다. 어느 밤, 나는 임신 중절 경험에 대해 쓴 책을 두 손에 들고 있지만, 서점 어디에서도 그 책을 찾을 수 없고, 도서 목록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꿈을 꾸었다. 책 표지 아래에 큰 글씨로 ‘절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꿈이 책을 써야만 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런 경험을 글로 쓰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의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 이야기와 함께 시간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끌고 갔다. 이제 나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끝까지 가리라 결심했음을 알고 있다. 스물세 살, 임신 진단서를 찢어 버리며 임신 중절을 결정했을 때와 똑같이.           (P18-19)     

내가 겪은 임신 중절 체험 -- 그것도 불법으로 -- 이 끝나 버린 이야기의 형식을 띤다고 해서 그것이 그 경험을 묻히게 놔둘 타당한 이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정의로운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매번 ‘모든 게 끝났다.’라는 명목으로 이전 희생자들에게 입 다물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그 이전과 똑같은 침묵을 일어나게 하는 일들을 다시 뒤덮어 버려도 말이다. -- 1970년대의 투쟁들 --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 같은 것에 맞선 -- 이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한 문구들과 그런 집단적인 관점에 거리를 두면서,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P20)     


따라가야 할 길도, 따라야 할 표지도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과 이제 더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 사이는 생략되었다. 도서관의 색인 카드함에서 ‘임신 중절’이라는 카드를 찾았다. 그 표제어로는 의학 잡지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중 <외과 의학 자료집>과 <면역학 잡지>를 찾아 꺼냈다. 실용적인 정보들을 찾을 수 있길 바랐건만 기사들은 ‘불법 중절 시술’의 뒷얘기들만 언급했고, 그런 사실들에는 관심 없었다.         (P27)     

병원을 나서며, 마지막 기회를 망쳐 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법을 피해 무언가 해 달라는 요구를 끝내 하지 못했다. 임신 중절에 대한 나의 욕망을 의사가 들어주려면, 오로지 눈물을 더 흘리고, 더 애원해 보고, 내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최선을 다해 설명했어야만 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 어쩌면 잘못 생각했을지도. 오로지 그만이 말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그는 내가 패혈증으로 죽는 일만은 막고 싶어 했다. 

우리 중 누구도 임신 중절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언어 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P39)         

     

그녀는 테이블을 앞에 두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내 다리 사이로 커튼이 내려진 창문과 길가 반대로 난 다른 창문들, P.-R. 부인의 흰머리가 보였다. 이런 곳에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에 학교에서 몸을 숙이고 책을 보는 여학생들을, 콧노래를 부르며 다림질을 하고 있을 엄마를, 보르도 거리를 거닐고 있을 P.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자기 주변에 두고 싶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래 봐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은 이전처럼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만을 깨달을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계속 내게 ‘대체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고 묻게 할 뿐인데.

이제 방의 이미지에 다가선다. 분석이 불가능하다. 그 이미지 속에 잠식될 수밖에 없다. 내 다리 사이로 검경을 집어넣고 분주히 움직이던 여자가 나를 태어나게 하려는 것 같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내 엄마를 죽였다.              (P54-55)     

1월 19일 일기. ‘작은 통증들, 태아가 죽어서 떠나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누군가가 나팔로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하고, 위층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것이 인생이다.’            (P62)   

  

그날 저녁, 파뤼쉬 시네 클럽에서는 <전함 포템킨>을 상영했다. O.와 함께 극장에 갔다.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통증들이 간격을 두고 내 배를 조여 왔다. 자궁 수축이 올 때마다 숨을 참으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간격이 짧아졌다. 영화를 더는 볼 수 없었다. 쇠고리에 엄청나게 큰 고깃덩어리가 매달려 있었고, 거기에 벌레가 우글거리는 장면, 내가 기억하는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로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서, 소리를 참아 가며 침대 머리맡을 꼭 쥐기 시작했다. 구토를 했다. 한참 후 영화가 끝나고 O.가 들어왔다.             (P63)    

 

수술실에서, 나는 엄청 밝은 불빛 아래서 알몸이었다. 발받침에 두 다리를 묶어서 추어올렸다. 왜 수술이 필요한지 알 수 없었고, 내 배 속에서 꺼낼 건 하나도 없는데, 나는 젊은 외과 의사에게 뭘 하려는지 알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벌려진 내 두 다리 앞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 마취에 취해 어둠 속에 잠기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었다.               (P68)     

신성한 무엇처럼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 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어쩌면 고독한 항해자들, 약물 중독자들과 도둑들,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              (P75)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죄책감을 지웠다.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경험한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모든 이유를 넘어서서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P79)


이전 08화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