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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샴의 <타임 투 킬>

영화 <타임 투 킬> 1996년

by 노용헌

남부의 흑백갈등 속에 변호사의 정열적인 활동을 다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의 영향을 받았다. 1996년, 조엘 슈마허 감독, 매튜 매커너히, 산드라 블록, 새뮤얼 L. 잭슨, 케빈 스페이시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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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러드에게 당하고 있는 검둥이 계집애는 열 살인데도 제 나이보다 체구가 작았다. 아이는 누런 나일론 끈에 묶인 팔꿈치를 뒤로 한 채 누워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떡갈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왼쪽 다리는 낡은 울타리에 묶여 있었다. 스키 끈에 심하게 쓸린 발목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다리를 흠뻑 적셨고, 퉁퉁 부은 얼굴도 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한쪽 눈은 잔뜩 부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반쯤 뜬 다른 쪽 눈으로 픽업에 걸터앉은 백인을 보고 있었다. 자기 몸 위에 올라타 땀을 흘리고 있는 백인은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P6-7)


칼 리 헤일리는 집에 가는 걸 서두르지 않았다.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 싶으면 수백 번도 넘게 전화를 걸 만큼 아내가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확하게 퇴근 시간에 나와 평소처럼 차로 삼십 분 걸리는 길을 거쳐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갈 길에 이르러 자기 집 주위에 주차해 있는 순찰차를 보는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집으로 들어가는 긴 길가와 집 앞에는 친척들 차와 순찰차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고, 그중에는 처음 보는 차도 있었다. 대나무 낚싯대가 차창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고, 예닐곱 명이 밀짚모자를 쓴 채 빽빽이 앉아 있는 차였다.

토냐와 애들은 어디 있지? (P13)


클랜턴에 있는 세 군데 커피숍도 전부 클랜턴 광장에 모여 있었다. 두 개는 백인 전용이었고, 하나는 흑인 전용이었다. 백인은 주로 서쪽에 있는 클로드네나 클랜턴 광장 남쪽의 찻집에 갔고, 흑인은 워싱턴가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 여차하면 흑백간의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제이크도 매주 금요일에는 대부분의 백인들처럼 클로드네에서 바비큐를 먹지만, 나머지 엿새는 워싱턴 가의 커피숍을 애용했다.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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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바로 옆에 위치한 판사실에 앉은 퍼시 불러드는 영 심기가 편치 않았다. 작은 떡갈나무 책상을 앞에 두고 커다란 가죽의자 속에 몸을 묻은 채 신경질적으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강간사건의 예심을 지켜보러 온 방청객들이 잔뜩 몰려든데다, 바로 옆방에서도 변호사들이 커피 자판기 주위에 모여 강간사건을 놓고 쑥덕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P59)


20여 미터 떨어진 뒤쪽에 앉아 있던 칼 리는 고개를 들어, 자기 딸을 강간한 두 사내의 등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두 사내의 모습은 수염이 텁수룩한 인간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칼 리는 얼굴을 한 번 문지른 다음 다시 고개를 숙였다. 벽에 바싹 붙어 서 있던 보안관 대리들은 이런 모든 움직임들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P63)


“당신이라면 죽이겠다고 그랬잖아요?”

제이크는 문 쪽으로 걸어가 칼 리 옆에 섰다.

“나는 달라요. 나라면 아마 풀려날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요?”

“난 백인이고 이곳은 백인 동네죠. 운이 좋으면 전원 백인 배심원을 가질 수 있는데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내 편이에요. 여기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아니라고요. 남자라면 자기 가족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죠. 배심원들은 그래요.”

“나는요?”

“내가 말한 것처럼 여기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아니에요. 백인들 중 몇몇이 당신을 동정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당신을 처형하고 싶어할 겁니다. 당신은 석방되기가 훨씬 어려워요.”

“그렇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잖아요, 제이크?”

“그만둬요, 칼 리.”

“제이크,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 자식들이 죽기 전에는 나도 편히 잘 수가 없단 말예요. 나는 딸애한테 빚을 졌고, 우리 가족한테 빚을 졌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한테 빚을 진 거예요. 그러니 그 빚을 갚을 사람은 바로 나라고요.”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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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리는 다리를 꼬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있어서. 대단한 건 아니야.”

칼 리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팔을 활짝 벌렸다.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라고.”

“베트남에서 쓰던 M-16 있지? 그게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면 빨리.”

브루스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벌렸던 팔을 접어 팔짱을 꼈다.

“그건 위험한 장난감인데. 다람쥐가 큰가 보지?”

“다람쥐를 잡으려는 게 아냐.”

브루스터는 두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말 안 해도 무슨 이유인지 알 것 같았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칼 리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진짜 총?”

“그래. 성능 좋은 걸로.” (P87)


오지는 의자 속으로 몸을 파묻으면서 팔짱을 끼고는 잠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칼 리가 걱정하는 건. 첫째, 토냐가 육체적으로 문제가 없느냐 하는 거야. 그애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상처가 남지 않겠냐는 거지. 둘째로 과연 토냐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남은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게 칼 리의 걱정 거리겠지. 그리고 세 번째로, 그 더러운 자식들을 죽이고 싶을 거야.”

“자네라면?”

“나라도 그럴 거라고 말하기는 쉽겠지. 하지만, 정말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나도 몰라. 파치먼에 가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게 애들한테 좋을 테니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비슷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지. 아마 미쳐버리기는 하겠지.”

제이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책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라면, 그게 누구든 간에 심각하게 살인계획을 고려할 거야. 그런 놈들이 살아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잠이 오겠어?”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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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에 묶인 손을 뒤로 한 채 콥이 먼저 조심스럽게 층계를 내려가고, 윌러드와 보안관 대리인 루니가 그뒤를 이었다. 층계에서 열 걸음을 내려가면 층계참에 이르렀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열 걸음을 더 내려가면 1층 바닥이었다. 밖에서는 세 명의 보안관 대리가 순찰차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콥이 마지막 층계를 두 탄 내려서고 윌러드는 그보다 세 걸음 뒤쳐져 있었고, 루니는 첫 번째 층계의 마지막 칸을 남겨두었을 때였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작은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칼 리 헤일 리가 M-16 소총을 들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정면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재빠르게 터지는 총소리는 침묵을 깨트리고 법원을 뒤흔들었다. 두 강간범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다가 그대로 총에 맞았다. 총알은 먼저 콥의 배와 가슴에, 이어서 윌러드의 얼굴과 목에 구멍을 뚫었다. 수갑이 채워진 무방비상태이면서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층계를 향해 돌아섰다. 서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와 살덩이가 한데 뒤엉켰다.

다리에 한 발을 맞은 루니는 겨우겨우 층계를 기어올라가 대기실에 이르렀다. 몸을 숙이는 동안 그는 콥과 윌러드의 비명소리, 칼 리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좁고 어두운 복도 벽에 총탄이 튀었다. 바닥 아래를 흘끗 내려다본 루니는, 벽에 튄 콥과 윌러드의 피와 살이 범벅이 되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P108-109)


“버클리 씨, 피의자 헤일리 씨에게 조금이나마 동정을 느끼십니까?”

버클리는 웃음을 지으며 눈에 띄게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 그렇습니다. 자식이 강간을 당한 모든 아버지에게 저는 깊은 연민을 느낍니다. 진심으로. 그러나 제가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법체계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바로 이런 폭력적인 정의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와 딸이 둘인데, 그 중 하나는 헤일리 씨의 딸과 나이가 비슷합니다. 만약 제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저 역시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법체계가 효과적으로 강간범들을 응징해 주길 바랄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법체계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죄를 예상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제가 나선 사건들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도 유죄를 선고할 예정입니다.”

“사형을 구형하실 겁니까?”

“예, 이건 틀림없는 모살입니다. 사형 외에는 다른 처벌 방법이 없습니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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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 당신도 자식을 키우죠?”

“예.”

“딸이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럼, 당신 딸이 강간을 당했고, 강간을 한 놈들이 바로 저기 있다고 생각해 봐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오지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검사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검사의 목덜미가 불쾌함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보안관이 말했다.

“아니요, 대답을 해야 돼요. 당신은 여기 증언하러 왔잖아요. 당신, 증인 아니에요? 어서 대답하세요.”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보안관,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 줘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오지는 당황스러웠다. 이 낯선 백인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사실, 오지로서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나라면 그자를 거세하고, 사지를 다 찢어서라도 딸을 망친 데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배심원들이 칼 리를 기소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칼 리가 기소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는 도움을 청하듯 버클리 검사를 쳐다보았다. 검사 역시 잔뜩 긴장해 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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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소. 저는 배심원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누가 당신들의 딸이나 부인, 혹은 어머니를 강간했다면, 당신들도 헤일리처럼 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예닐곱 개의 손이 올라갔다. 버클리 검사는 고개를 푹 떨구었고, 크로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얘기를 계속해 나갔다.

“나는 칼 리 헤일 리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입니다. 저도 그런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을 테니까요. 사람이란 해야 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을 왜 기소합니까? 상장을 줘도 모자랄 판에?”

크로웰은 탁자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배심원 측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P201)


검둥이는 빌리 레이 콥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사전모의까지 했으며, 창고 속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그게 어떻게 흥분한 상태에서 나온 우발적인 범행일 수 있는가? 그런 냉혈한은 그냥 두어서는 안 되었다. KKK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검둥이들은 인권단체와 국가와 법의 보호 아래, 응석받이로 자라고 있었다. KKK단 외에는 어떤 백인도 그들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백인의 편에 서서 진군할 것인가? 법도 검둥이 편이고, 자유주의 물을 먹은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제 누군가 나서야 했다. 이것이 오늘 모임의 주제였다. (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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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는 칼 리의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칼 리. 그는 어린애나 마찬가지야. 대학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마샤프스키는 쉰 살이야. 아마 자네 변호사가 알고 있는 사건수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을 다뤘을걸. 이건 자네 생명이 달린 문제야. 절대 그런 애송이한테 맡길 순 없어.”

갑자기 제이크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스터 재판때 제이크는 지금보다 훨씬 어리지 않았는가.

“칼 리, 나는 법정에 많이 서봤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하는 거짓말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지 잘 알아. 딱 한 번의 실수면 자네는 끝이야. 그 애송이가 사소한 실수 하나만 저질러도 자네는 사느냐 죽느냐가 달라진다고. 자넨 지금 어린애한테 실수하지 말라고 얘기할 여유가 없어. 한 번의 실수는 바로 가스실 행이야. 하지만 마샤프스키는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지.”

브루스터는 한 번이란 단어에서 손가락까지 뻗어가며 열변을 토했다. 칼 리는 슬슬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그 사람, 내 변호사하고 같이 일하면 안 되나?”

칼 리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마샤프스키는 절대 같이 일하진 않아.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지. 그 애송이는 방해만 될 뿐이야.”

칼 리는 무릎 위에 양팔꿈치를 얹은 채 자기 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의사한테 줄 1천 달러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총을 쏠 때 자신이 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증명서가 필요한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증거로 그건 반드시 필요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싸구려 의사한테는 1천 달러가 들지만, 캣은 돈으로 살수 있는 최고의 의사를 제공해 줄 터였다. (P251)


1면 하단에 자기 얼굴이 실려 있었다. <제이크 브리건스, 해고>라는 표제와 함께, 그 옆에는 칼 리 헤일리의 사진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제이크도 본 적이 있는 눈부신 얼굴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보 마샤프스키, 기용>이란 표제가 씌어 있었고 신문은 멤피스의 형사사건 변호사가 ‘자경단(自警團) 살인자’를 변호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너무 놀란 나머지 힘이 다 빠져버렸다. ‘분명 오보일 거야.’ 그는 어제도 칼 리를 만났었다. 제이크는 다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어떻게 해서 보 마샤프스키가 사건을 맡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고, 그의 혁혁한 업적에 대한 얘기만 그득했다. 그가 한 말이라고는 클랜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겠다, 새로운 각오로 사건에 임하겠다, 포드 군 배심원들을 믿는다 따위뿐이었다.

제이크는 조용히 카키색 양복과 버튼다운 와이셔츠를 입었다. 칼라는 여전히 침대 깊숙한 곳에서 헤매고 있었다. 칼라한테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제이크는 신문을 집어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커피숍은 안전하지가 못했다. 그는 에셀의 책상에서 다시 한번 기사를 읽은 뒤 1면을 장식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시엔 윌뱅크스가 위로의 말을 보탰다. 그는 마샤프스키를 알고 있었으며, 그를 보고 ‘상어’라고 했다. 그는 닳고 닳은 너저분한 사기꾼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윌뱅크스는 마샤프스키를 존경한다고 했다. (P254-255)


칼라가 프레이서에게 물었다.

“경고예요,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멈추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작은 나무를 태우는 것보다 더한 짓을 할 테다. 뭐 그런 뜻이죠. 옛날에는 흑인들에게 동정하는 백인이나, 인권단체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이런 짓을 했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다음에 폭력이 뒤따르죠. 폭탄이나 다이너마이트를 쓰기도 하고, 구타하고, 심하면 죽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 옛날 얘기죠. 제이크 같은 경우에는 헤일리 사건에서 손을 떼란 얘기지요. 하지만 이제 헤일리 씨 변호사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가서 한나 좀 살펴봐.”

제이크가 칼라에게 일러주자 그녀는 얼른 안으로 사라졌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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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이사야 스트리트 목사는 포드 군 인권운동을 이끄는 핵심 세력이었다. 그는 멤피스와 몽고메리에서 마틴 루터 킹과 함께 가두 행진을 했으며, 클랜턴과 캐러웨이 그리고 미시시피 북쪽의 다른 도시에서 여러 차례 시위를 주도했었다. 1964년 여름에는 북부에서 내려온 학생들과 합세해서, 흑인 유권자표를 규합하기도 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해 여름에는 몇몇 학생들이 스트릿 목사의 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아직도 그 집을 종종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절대 과격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항상 조용하고 인자하고 지적이어서, 모든 흑인과 대다수의 백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스트리트 목사는 증오와 반목의 시대를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헤쳐나온 사람이었다. 공인된 얘기는 아니지만, 1969년의 학교 통합 문제를 해결한 것도 그였다. 클랜턴에는 그 이후로 반목의 시대가 막을 내렸던 것이다.

1975년에 발생한 뇌일혈 때문에 그는 오른쪽 몸을 못 쓰게 되었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이제 일흔여덟 살이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혼자 천천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가능하면 곧고 당당하게,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스트리트 목사는 보안관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테이텀은 커피 한잔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목사는 사양했고, 잠시 후 테이텀은 칼 리의 감방으로 갔다.

“칼 리, 일어났나?” (P307)


“그 사람은 공짜예요. 그는 나한테 단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아요.”

“자네가 죽는다면, 수임료는 중요한 게 아냐.”

침묵 속에서 몇 초가 흘러갔다. 스트리트 목사는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얘기는 충분히 한 것 같네. 이제 가봐야겠어. 행운을 비네.”

칼 리는 스트리트 목사의 손을 마주 잡았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요점은 이거네. 자네 재판은 이기기가 아주 어려울 걸세. 마샤프스키 같은 악당을 끌어들여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지는 말게.” (P311)


“알겠습니다. 증인의 얘기는 분한 일이 생기면 누구든 총을 들고 나와서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말이지요?”

“아이들은 강간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경우는 더욱 특별하지요. 내 어린 딸애가 나무에 묶여서 깡패 같은 마약사범한테 강간을 당했다면 나는 아마 미쳐버릴 겁니다. 선량한 아버지에게는 그들의 아이들을 해친 성도착자들을 단죄할 헌법상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딸이 어떤 놈들한테 강간을 당했는데, 그 강간범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며 겁쟁이일 것입니다.”

“보너 씨. 진정하세요.”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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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것은 사형이 아니라 범죄요. 죽음도 그들에겐 과분한 처사요. 너무 과분하지.”

“만약 헤일리 씨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져 죽게 된다면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10년 동안 항소를 반복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할 거요. 그래도 그가 결국 전기의자에 앉혀진다면, 나는 교도소 밖에서 당신과 교회 신도들과 수백 명의 다른 선한 영혼들과 함께 촛불을 켜들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위를 할 거요. 그러고 나서 교회 뒤편에 있는 그의 무덤가에 서서 그의 미망인과 아이들과 함께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를 할 거요.”

“사형 장면을 본 적 있어요?”

“없소.”

“저는 두 번 봤어요. 한 번이라도 보시면 마음이 변하실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보지 않겠소.” (P450)


“말 안 해. 목요일에 커다란 시위가 있을 거래.”

“KKK단이?”

“그래.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는 내일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더군. 시위가 끝나면 가두 행진도 할 모양이야. KKK단은 목요일날 평화시위를 하겠다고 했고.”

“몇 명이나 참가하지?”

“말했듯이 미키 마우스는 세부적인 얘기는 안 해.”

“KKK단이 클랜턴에서 행진을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심각한 문제네요.”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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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렐라가 물었다.

“나라면 재판에 넘길 거예요. 만약 우리가 강간범을 잡았는데 그게 흑인이라면, 우리는 대개 그를 감방에 가둡니다. 파치먼에 가면 그렇게 갇혀 있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렐라. 평생 교도소에서 썩을 놈들이죠. 여긴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처럼 미쳤다고 우기면 내보내주는 그런 허술한 데가 아니에요. 우리는 훌륭한 법제도를 가지고 있고, 누스 판사는 엄한 사람이죠. 그러니까 그 제도에 맡기면 되는 거예요. 사람들, 특히 검둥이 녀석들한테 자기 손으로 법 집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 사회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건 그거예요. 이 검둥이 녀석이 법정에서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된다고 생각해 봐요. 포드 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될 거고, 검둥이들은 모두 미쳐 날뛸 거예요. 검둥이들은 길을 건너다가 만난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는 잠시 미쳤었다고 말할 거예요. 그러고는 풀려날 테죠. 이 재판에서 가장 위험한 대목은 바로 여기예요.“

“그래, 흑인들은 잘 통제해야 돼.”

조 프랭크 페리먼이 윌 티어스의 말에 동의를 했다. (P482)


“나는 스텀프 시슨입니다. 보이지 않는 제국 쿠 쿨룩스 클랜(Ku Klux Klan)의 미시시피 주 지부장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미시시피의 백인들이 검둥이들의 도둑질과 강간, 살인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여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더러운 칼 리 헤일 리가 정의의 심판을 받아, 가스실로 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스텀프 시슨이 가면을 벗고 연설을 시작하자 흑인들은 일제히 한목소리가 되어 외쳤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닥쳐, 이 검둥이 새끼들아!”

시슨이 흑인들의 함성에 맞섰다.

“입 닥치지 못하겠나, 이 짐승 같은 자식들아!”

시슨의 군대는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등뒤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에 바짝 얼었다. 오지와 그의 부관들은 두 집단 사이를 가로막았다.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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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의 순간 속에 그들은 손쉬운 표적이 되어버렸다. 한 카메라맨은 오른쪽 눈 깊숙이 자기 카메라가 박혔고, 왼쪽 눈에는 뾰족한 벽돌 조각이 떨어졌다. 그와 그의 카메라가 길바닥에 나가떨어지자, 다른 카메라맨이 쓰러진 동료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멤피스 방송국에서 온 맹렬 여기자는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광란의 현장으로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카메라맨은 여기자의 뒤를 따랐다. 여기자는 날아오는 돌을 피하면서 요령 있게 광란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방금 10대 흑인 소년 둘을 해치운 거구의 KKK단원 곁에 너무 바짝 다가서고 말았다. KKK단원은 괴성을 지르면서 여기자의 작은 머리를 몽둥이로 내리치고는 발길질을 해댔다. 카메라맨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P509)


“클랜턴을 포위하라는 말입니까?”

“예,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거리를 순찰하면서 말입니까?”

“예, 총이나 다른 장비들도 갖추고 말입니다.”

“이런, 그건 비상이군요. 너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리 병력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데 역부족입니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폭동도 막지 못했습니다. KKK단이 불을 지르고 다니는데도 우리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흑인들까지 가세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 될 겁니다. 우리는 병력이 부족합니다. 시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가 막힌 생각이군.’ 제이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주방위군이 법원에 진주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한 배심원이 선출될 수 있겠는가? 제이크는 배심원들이, 총과 지프와 탱크로 무장한 채 진주해 있는 주방위군들 사이를 지나 법원으로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떻게 그들이 공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누스 판사가 재판지를 변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하늘이 심술을 부려서 칼 리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 난 판결을 어떻게 대법원이 취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말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등장한 것이다.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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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하얀 가운의 출현은 60미터쯤 떨어져 있던 흑인들을 자극시켰다. 그들은 다시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KKK단도 주먹을 쥔 채 맞받아쳐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칼 리를 죽여라! 칼 리를 죽여라! 칼 리를 죽여라!”

군인들은 법원 앞 층계까지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두 진영을 갈라놓았다. KKK단과 보도 사이에도 군인들이 경계를 만들었고, 흑인들과 보도 사이에도 경계를 만들었다. (P561)


“아버지로서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것과, 실제로 복수를 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슬슬 열기가 무르익자, 버클리는 연단을 무시하고 앞뒤로 몸을 움직이면서 박자를 탔다. 그는 사법제도와 그것이 미시시피 주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또 자신이 얼마나 많은 강간법들을 파치먼 교도소로 보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형벌을 받도록 만들었는지 장장 이십 분 동안 떠벌렸다.

“이렇게 법제도가 잘 돌아가는 이유는 미시시피 주의 주민들이 이만한 제도를 유지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 리 헤일리 씨와 같이 법제도를 무시하고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제도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P597)


제이크는 무스그로브가 설계도를 치우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석으로 갔다.

“루니 씨, 칼 리 헤일리 씨가 총을 쏠 때 누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까?”

“두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칼 리 헤일리 씨와 눈길을 마주친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그와 눈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었으니까요.”

“칼 리 헤일리 씨가 당신을 겨눴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두 사람을 겨눴고, 그들에게 총을 쐈습니다.”

“총을 쏘면서 칼 리 헤일리 씨가 어떻게 했습니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웃었습니다. 미친 사람 같았죠. 제가 들은 소리 중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소리였습니다. 진짜로 미친 사람의 소리였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모든 소음입니다.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 살을 뚫는 소리, 비명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제압하는 칼 리 씨의 웃음소리. 미쳐서 날뛰는 웃음소리 말입니다.”

루니의 대답은 완벽했다. 제이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제이크와 루니는 이미 백 번도 넘게 연습을 했지만, 이건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어휘 선택도 아주 완벽했다. 제이크는 서류를 뒤지는 척하면서 배심원들의 동향을 살폈다. (P62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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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튼 규칙이 의미하는 것은 뭡니까?”

“맥노튼 규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든 피고인들은 우선 정상적인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심신장애라는 것으로 변호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행위 당시 이성의 결함이나 정신병으로 인해 자기 행동의 성격이나 의미를 알지 못했거나, 또는 자기와 행위가 뭔지는 알았어도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명백히 증명되어야 합니다.”

“좀 더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 피고인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는 법적으로 심신장애자라는 것입니다.”

“심신장애를 정의해 주시겠습니까?”

“그것은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개인의 정신 상태와 정신 환경에 대한 법적 기준인 것입니다.”

제이크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논의를 좀더 진전시켰다. (P662)


“자네 탓이 아니야. 미친 세상 탓이지. 사방이 다 미친 놈들 투성이라고. 그들 중 반은 포드 군에 있는 것 같고.”

“두 주 전에는 내 침실 창문 아래다 다이너마이트를 갖다 놓았어요. 그다음엔 내 비서의 남편을 때려죽였고, 어제는 나를 쏘려다가 군인을 맞혔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내 법률 서기까지 잡아다가 기둥에 묶어놓고 옷을 찢고 머리칼을 잘라서,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었어요.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군요.”

“자네, 항복할 것 같군.”

“그러고 싶어요. 지금 당장 법원으로 가서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저어서 포기하고 싶다고요. 그러나 누구한테 항복을 하죠? 적은 보이지도 않는데.”

“포기하지 말게, 제이크, 칼 리에게는 자네가 필요해.”

“내 고객더러 지옥에나 가라고 하세요. 오늘 나를 해고하려고 했다니까요.”

“그에겐 자네가 필요해. 재판은 끝나야 끝나는 거야.” (P67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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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분이 유죄고 다섯 분이 미결, 한 분은 기권입니다. 그리고 무죄가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많은 토의가 필요할 것 같군요.”

배심원들은 사진, 지문, 탄도 보고서 등 제출된 증거물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6시가 되자 그들은 누스 판사에게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모텔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누스는 화요일 아침까지 휴정을 선언했다. (P723-724)


제이크와 보너와 윌뱅크스는 발코니에 느긋하게 앉아, 아래서 벌어지는 서커스를 감상했다. 탁자 위에 놓인 차가운 마가리타 주전자는 천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이따금씩 군중들과 합세해 ‘칼 리를 석방하라’고 외쳤고, <우리 승리하리라>를 따라 불렀다. 그러나 가사를 아는 사람은 윌뱅크스뿐이었다. 그는 1960년대 민권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흑인들의 노래를 배웠고, 지금도 흑인들의 영가를 줄줄이 꿰고 있는 유일한 포드 군민이라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P740)


레바 베츠가 미결에서 무죄로 돌아서자, 배심원실 안은 십오 분 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강간했고, 나한테는 복수할 기회가 생겼다면, 나는 그놈의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는 게 레바 베츠의 변(辯)이었다. 유죄 대 무죄는 5대 5로 팽팽했다. 아직 두 사람이 미결이었고,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배심장은 계속 방 안을 왔다갔다했고, 늙은 율라 델 예이츠는 자꾸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노파가 틀림없이 대세가 기우는 쪽으로 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울음을 봇물처럼 터뜨린 율라 델 예이츠를 클라이드 시스코가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마치 자기가 교도소에 갇힌 죄인 같다는 것이다. (P741)


누스 판사가 칼 리에게 말했다.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

그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형사사건의 변호사에게 판사의 그 같은 명령만큼 무섭게 들리는 말은 없을 터였다. 칼 리는 어색하게 일어나 섰다. 불쌍해 보였다. 제이크는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손이 떨리고, 속이 아릿하게 쓰려왔다.

누스는 평결문을 다시 진 길레스피에게 넘겼다.

“자, 서기, 판결문을 읽어주십시오.”

진 길레스피는 종이를 펴고 나서, 피고인의 얼굴을 보았다.

“본 배심원은 칼 리 헤일리의 기소 내용에 대해서, 심신장애를 이유로 무죄를 평결합니다.”

순간 칼 리가 뒤로 돌아서서 난간을 뛰어넘었다. 토냐와 아이들이 자리에서 퉁겨져올라 아버지를 힘껏 부둥켜안았다. 법정 안을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P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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