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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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평화를 교란하는 반역자들아, 이웃의 피로 칼을 더럽히는 불경한 자들아! 내 말이 안 들리느냐? 사람이면서 짐승 같은 것들아! 너희 혈관에서 샘물처럼 솟는 붉은 피로 흉악한 격분의 불길을 끄려 하다니! 고문의 고통이 두렵거든, 그 피 묻은 손에서 끔찍한 무기를 땅에 던지고, 분노한 이 영주의 엄명을 들으라. 캐풀렛 영감과 몬터뷰 영감은 하찮은 말을 빌미로 세 번이나 사사로운 싸움을 벌여 조용한 이 도시의 거리를 소란스럽게 했다. 그리하여 베로나의 노인들은 그들의 점잖은 나이에 어울리는 지팡이를 내던지고 평화로 녹슨 낡은 미늘창을 그 미늘창만큼 늙은 손에 쥐고서 병든 증오심으로 가득 한 너희를 뜯어말려야 했다. 다시 한 번 이 거리를 소란스럽게 한다면 평화를 깨뜨린 죄의 대가로 너희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이들은 모두 물러가라. 캐풀렛, 당신은 나와 함께 가고, 몬터규, 당신은 오늘 오후에 우리의 공공 법정인 유서 깊은 프리타운으로 출두하시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가 원하는 바를 알려 주겠소. 다시 한 번 명령한다. 죽음이 두렵거든 모두 해산하라. (P14)
벤볼리오 아니, 로미오, 차라리 울고 싶군.
로미오 착한 자네가 무엇 때문에?
벤볼리오 자네의 착한 마음이 짓눌려 있으니까.
로미오 아니, 그건 한도를 넘어선 애정이야. 내 슬픔만으로도 가슴이 무거운데, 자네 슬픔까지 더해서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를 셈인가? 자네가 보여 주는 이런 우정은 그렇잖아도 감당키 어려운 내 슬픔을 더해 줄 뿐이라네. 사랑이란 한숨의 숨결로 이루어진 연기, 깨끗이 씻기면 연인들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불꽃이 되고, 흐려지면 연인들의 눈물로 넘쳐흐르는 바닷물이 되지. 그게 아니면 뭐랄까? 대단히 분별 있는 광기요. 숨 막히게 쓴 쓸개즙이면서 활력 주는 감로수(甘露水)이기도 해. 잘 있어, 사촌. (P19)
로미오 내 마음이 여기 있는데 내 어찌 지나칠 수 있으리? 우울한 흙덩이여, 발길 돌려 그대의 중심을 찾아가라. (P50)
줄리엣 당신의 이름만이 내 원수랍니다. 몬터규란 이름이 아니어도 당신은 당신이죠. 무엇이 몬터규란 말이죠? 손도 아니고, 발도 아니고, 팔도 얼굴도, 남자의 신체 다른 어떤 부위도 아니잖아요. 아, 제발 다른 이름이 되어 주세요. 이름에 뭐가 들어 있단 거죠?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그 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똑같이 향기로울 거예요. 그러니 로미오는 로미오라 부르지 않는다 해도 그 이름과 상관없이 그분이 지닌 저 고귀한 완전무결함을 그대로 간직할 거라고요. 로미오, 당신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당신의 어떤 부분과도 상관없는 당신 이름 대신 저를 송두리째 가져가세요.
로미오 그대의 말대로 그대를 가져가셌소. 나를 연인이라고만 불러 주오. 그럼 새로 세례를 받을 것이니, 이제부터 나는 영원히 로미오가 아닐 겁니다. (P55)
로미오 아, 줄리엣, 그대의 기쁨의 양이 내 기쁨의 양만큼 크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이 나보다 한 수 위라면, 그대의 말로 주위의 공기를 향기롭게 해 주시고, 음악처럼 풍부한 목소리로 지금 이렇게 만나 서로 주고받고 있는 꿈같은 행복을 말해 주시오.
줄리엣 말보다 내용이 더 풍성한 생각이라면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자랑으로 삼지요. 재산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그저 가난뱅이에 불과하죠. 하지만 제 진실한 사랑은 너무도 크게 불어나서 그 재산의 절반도 헤아릴 수 없답니다.
로런스 자, 나와 함께 가서 빨리 일을 마치세. 미안한 말이네만, 신성한 교회가 자네 두 사람을 하나로 맺어 주기 전까지는, 이렇게 둘만 놔둘 수가 없다네. (P84-85)
벤볼리오 불같이 화난 티볼트가 여기로 다시 돌아오고 있네.
로미오 의기양양하게 다시? 머큐쇼를 죽여 놓고? 인정사정 같은 건 하늘나라로 가 버려라! 이젠 눈에 불을 켠 분노가 내 안내자가 될 거다! 티볼트, 아까 네놈이 내게 불렀던 ‘악당’이란 말을 도로 가져가. 머큐쇼의 영혼이 바로 우리 머리 위를 떠돌면서 네놈의 영혼과 동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네놈 아니면 내가, 혹은 우리 둘 다 그와 함께 가야 해.
티볼트 망할 녀석, 네놈은 이승에서 그놈과 한패거리였으니 저승길도 함께 가게 해 주마.
로미오 그건 이 칼이 결정할 문제야. (둘이 싸운다. 티볼트가 쓰러진다.)
벤볼리오 로미오, 달아나, 도망치라고. 시민들이 흥분했어, 티볼트는 죽었고, 멍하니 서 있지 마. 잡히면 영주님은 자네에게 사형을 선고하실 거야. 어서 달아나게, 도망쳐!
로미오 아! 난 운명의 노리개로구나!
벤볼리오 왜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P92-93)
줄리엣 아이 참, 무슨 소식이냐니깐? 왜 그리 손을 쥐어짜고 있어?
유모 아이고,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어요. 우린 다 틀렸어요. 아가씨 다 틀렸어요. 아이고, 그분이 떠나셨어요. 살해되셨어요. 돌아가셨어요.
줄리엣 하늘이 그리 무정할 수가 있어?
유모 로미오는 그럴 수 있어요. 하늘은 그럴 수 없지만, 오, 로미오 님, 로미오 님. 누가 그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로미오 님!
줄리엣 대체 유모는 어떤 악마이기에 날 이토록 괴롭히는 거야? 이런 잔혹한 말은 무시무시한 지옥에서나 외치는 소리야. 로미오 님이 자살했다는 거야? ‘예’라고만 해 봐요. 그 ‘예’라는 외마디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인다는 저 독사의 독기 서린 눈초리보다 더 치명적인 독이 될 거야. 만일 그런 ‘예’라는 답이 있거나 그분의 두 눈이 감겨 유모가 ‘예’라고 답하게 만든 거라면, 난 더 이상 내가 아니야. 그분이 살해되셨다면 ‘예’라고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해 봐요. 그 짧은 한마디에 내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어.
유모 상처를 봤어요, 내 두 눈으로 그걸 봤다고요. 아이고 맙소사! 대장부다운 그분 가슴에 난 상처를요. 가련한 시체, 피투성이가 된 가련한 시체, 잿빛처럼 창백하고, 온통 피범벅이 되어, 온통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고요. 그 광경을 보고 난 기절했답니다.
줄리엣 아, 찢어져라, 내 심장아! 불쌍한 파산자, 당장 터져 버려! 두 눈아, 감옥으로 가서 다시는 자유를 보지 마라! 천한 흙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 여기 그만 멈춰 버려! 하여 그 흙이 로미오와 함께 무거운 관에 묻혀 버려!
유모 아, 티볼트 님, 티볼트 님! 제 절친한 친구이셨는데요. 아, 예의 바른 티볼트 님, 고귀하신 신사분. 여태 내가 살아서 당신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줄리엣 이렇게 거꾸로 불어 대는 폭풍은 대체 뭐지? 로미오 님이 살해되었다고? 그리고 티볼트 오빠가 죽었다고? 내가 사랑하는 오빠와 그보다 더 사랑하는 남편이? 무시무시한 나팔이여, 최후의 심판 날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라. 두 분이 돌아가셨다면 이 세상에 누가 살아남겠어?
유모 티볼트 님은 돌아가셨고, 로미오 님은 추방되셨어요. 티볼트를 살해한 로미오 님이 추방되셨다고요. (P99-100)
줄리엣 아, 패리스 백작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제게 어떤 탑이든 그 탑의 흉벽에서 뛰어내리라고 하세요. 도둑들이 우글거리는 길을 걸으라고 하시든가, 뱀들이 득시글대는 곳에 숨으라고 하세요. 으르렁거리는 곰과 함께 절 쇠사슬로 묶어 두시든지, 깜깜한 밤에 덜거덕거리는 송장들의 뼈와 냄새 지독한 정강이뼈와 턱이 떨어져 나간 누런 해골들이 꽉 차 있는 납골당 속에 절 가둬 놓으시든가요. 아니면 저더러 새로 만든 무덤 속에 들어가 수의로 감싼 시체와 함께 숨어 있으라고 하세요. 그런 일은 이야기만 들어도 절 벌벌 떨리게 하지만-- 그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개를 지키는 아내로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면 아무 두려움이나 의심 없이 하겠어요.
로런스 그렇다면 잠깐만. 집으로 가서 유쾌한 태도로 패리스의 결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해. 수요일이 내일이야. 내일 밤에는 꼭 혼자 자야 한다. 유모가 네 방에서 함께 자지 않도록 하고. 이 약병을 갖고 가서 잠자리에 들 때 온몸에 스며드는 효력이 있는 이 물약을 다 마셔라. 그럼 곧 혈관 전체를 통해 졸음이 오게 하는 싸늘한 액체가 퍼져 나가 맥박이 원래대로 뛰지 않고 멈출 것이고, 체온은 내려가고 호흡도 정지되어 네가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거지. 네 장밋빛 입술과 뺨은 시들어 허연 잿빛으로 변하고, 죽음이 생명의 빛을 막아 버리듯 네 눈의 창문인 눈꺼풀도 닫히게 될 거야. 탄력을 잃은 네 신체의 각 부분은 굳어 뻣뻣해지고 싸늘해져 죽은 것처럼 보일 거고. 이렇게 오그라든 가사(假死) 상태에서 마흔두 시간이 경과하면 마치 상쾌한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뜨게 될 거야. 하지만 새신랑이 아침에 잠자리로 널 깨우러 올 땐 넌 죽은 듯이 있게 되겠지. 그러면 이 나라의 관습에 따라 네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관대(棺臺) 위에 눕혀 캐풀렛 집안의 조상들이 대대로 누워 있는 바로 그 유서 깊은 지하 납골당으로 널 데려갈 것이다. 그동안 나는 네가 깨어날 때를 대비하여 로미오에게 편지로 우리의 계획을 알리고 이곳으로 오게 하겠어. 그와 나는 네가 깨어나는 것을 지켜본 뒤, 바로 그날 밤으로 로미오가 널 여기서 만투아로 데려갈 거야. 그럼 너는 당장 코앞에 닥친 치욕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지. 이 일을 실행에 옮길 때 변덕이나 여인네의 공포심 때문에 용기를 잃는 일이 절대 없다면 말이다.
줄리엣 주세요, 어서요! 아, 제게 공포심 같은 건 말씀하지 마세요!
로런스 그만하고, 이제 가 보거라. 마음 단단히 먹고, 이 일을 잘 치러 내야 한다. 나는 급히 신부 한 사람을 만투아로 보내 네 남편에게 편지를 전해야겠다.
줄리엣 사랑이여, 내게 힘을 다오! 힘이 있으면 해결 방도가 생기겠지. 안녕히 계세요. 자애로운 신부님! (P134-136)
로런스 로미오! (신부가 몸을 숙여 핏자국과 칼들을 본다.) 아이고, 이런, 이 무덤의 돌 입구에 묻어 있는 이건 웬 피란 말이냐? 이렇게 주인 없는 피범벅의 칼들이 이 안식의 장소에 흉측한 몰골로 놓여 있는 건 또 웬일이냐? (납골당 안으로 들어간다.) 로미오! 아, 창백하구나! 또 누구지? 아니, 패리스 백작도? 피투성이로 말인가? 아, 얼마나 비정한 시간이기에 이런 비통한 죄를 저지른단 말인가! (줄리엣이 일어난다.) 아가씨가 깨어나는군.
줄리엣 오, 도움을 주시는 신부님, 제 남편은 어디 계시죠? 전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잘 기억하고 있고, 지금 전 거기에 있습니다. 로미오 님은 어디 계시나요? (안쪽에서 소리가 난다.)
로런스 무슨 소리가 들린다, 줄리엣. 죽음과 전염병과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잠이 둥지를 튼 그곳에서 빨리 나오너라. 인간이 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우리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말았으니, 자, 어서 나가자. 네 가슴속의 남편은 죽어서 저기 누워 있고, 패리스 백작 역시 그렇다. 너를 수녀들이 있는 수녀원에서 지내게 할 것이야. 야경꾼들이 오고 있으니, 이것저것 묻느라 지체하면 안 된다. 자, 가자, 착한 줄리엣. 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퇴장)
줄리엣 신부님이나 가세요. 전 가지 않겠어요. 이게 뭐지? 진실한 내 사랑의 손에 쥐어진 잔은? 이제 보니 독약을 마시고 때아닌 종말을 맞으신 것 같아. 아, 인색한 사람! 다 마셔 버리고, 나도 뒤따라가게 해 줄 친절한 단 한 방울도 남겨 놓지 않았단 말이지? 그럼 당신 입술에 키스하겠어요. 혹시 독약이 거기에 조금 묻어 있어서 그 생명의 영약으로 날 죽게 해 줄지도 모르니까. 당신 입술은 따뜻하군요.
야경꾼 1 (안쪽에서) 앞장서라, 얘야, 어느 쪽이냐?
줄리엣 그래, 인기척이 들리네. 어서 끝내야겠어. 오, 행운의 단검이여. (로미오의 단검을 집어 든다.) 여기가 너의 칼집이다. (자신을 찌른다.) 거기서 녹이 슬어 버려라. 그리고 날 죽게 해 다오. (로미오의 시신 위에 쓰러져 죽는다.) (P16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