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못 공부하는 방법 10편
가르치는 책임을 가진 사람이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강제적인 방법 vs 두려움을 주는 방법.
강제적인 것은 아이가 공부를 안 하면 혼내거나 때리거나 하는 방식이다. 뭐, 많은 부모님들이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교육학을 들춰볼 것도 없이 이 방법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누구나, 아니 세상은 넓으니까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왠만하면 알고 있을 것이다. 사족을 붙인 이유는 아직도 애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거나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
두려움을 주는 방식은 아이가 공부를 하게 만들기 위하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너 공부 이렇게 안 해서 나중에 뭐가 될래?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고, 그 외에도 명문대학 못 들어가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미래에 아이가 비참한 결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심어준다. 보통 학원에서는 이런 것을 정신교육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도 이 방식을 써봤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실이자 진실이니까.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무언가를 성공하는 것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지 않나.
강제적인 방법이 선호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대부분의 경우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군대에 다녀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기는 암기력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몇번 육체적인 압박을 가하면 복무수칙을 다 외운다. 실제로 내가 병생활 시절에 몸담았던 박격포반의 경우는 나 뿐만 아니라 그렇게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조차 그 수십장의 작은 노트에 있는 내용들을 다 외울 수 있었다. 못 외운다면, 아, 생각도 하기 싫다.
이 방식은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편하다. 과제를 던져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때리거나 기합을 주면 되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 방식은 인간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훈련시키는 방식에 가깝지 않나. 다만, 이 방식은 교육받는 사람에게 벌어지는 부작용이 너무나 커서,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서 두려움을 주는 방식은 조금 더 인간적이고, 지성적이다. 아이가 공부를 안 했을 때 벌어지는 미래의 문제점들을 먼저 겪은 어른들이 이야기해 주며 설득하는 것이니까. 때리지도 않고 기합을 주지도 않으며, 심지어 선생, 즉 먼저 살아온 사람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니 왠지 모르게 더 선생님 같기도 하다.
아주 예전에 부모님들은 학원에 와서 선생님에게,
때려서라도 가르쳐 주세요
라고 했다면, 요새 부모님들은 학원에 와서
우리 애가 선생님 말은 들으니까,
좋은 말씀 좀 많이 해주세요
라고 부탁하시게 되었다. 즉, 학교에서의 체벌이 금지되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교육방식이 강제적인 방식에서 두려움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려움을 주는 방식이 강제적인 방식보다는 두말 할 것 없이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두려움을 주는 방식조차 아이들에게 큰 부작용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 아이들에게 이 방식을 쓰면, 대부분의 경우 잘 먹힌다. 왜냐하면 공부 안 하면 미래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미지가 머리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통 공부를 안 하던 아이들도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여기까지 보면 공부에 대한 동기를 만들어 주는데 효과적이다.
문제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묻건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후로 작심삼일이라는 마의 벽을 넘어간 적이 몇번이나 있는가. 나는 지금까지 많은 부모님들에게 이런 말씀을 들어왔다.
우리 애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은 하는데,
핸드폰만 하고 공부는 전혀 안 해요.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지.
그래, 딱 이거다. 누구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는 의지는 있다. 그런데 정작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화가 너무 나고, 그에 대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도 이미 알고 있다. 자기가 꿈은 큰데, 거기에 비해 노력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으면, 자신이 잘못 하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내면서,
아씨, 이제 하려고 했는데,
왜 자꾸 잔소리야.
맨날 잔소리하니까 더 하기 싫지.
딱 이 패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잔소리를 계속 들으면, 그때부턴 마음을 닫는다.
실제로 나는 예전에 한 초등학생에게 잘못된 수학공부 습관을 잡아주려고, 그 아이가 무엇을 잘못 하는지에 대해 콕콕 찝어서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몇번 하고 난 후에 그 아이가 내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한마디 했다.
선생님, 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말 더 안 하셔도 되어요.
부모님에게 매일 들으니까요.
그렇다. 그동안 한 잔소리는 그 아이에게 조언이 아니라 그냥 나이 많은 꼰대가 하는 잔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아이가 집에서, 학원에서 이런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왜 나는 이 아이에게 괜찮다, 문제없다고 안심시켜주지 못 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공부 안 해서 뭐가 어떻게 된다던가 하는 조언은 하지 않는다. 그건 처음에 한번 하고 효과 없으면 더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계속 하면 그저 꼰대의 잔소리가 되어 버릴 뿐, 아이들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뭐, 아이가 조언을 잔소리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 정도로 끝난다면, 그게 뭐 큰일일까. 차라리 그 정도에서 끝난다면 그 정도는 인류역사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 아닌가.
라떼는 말이야. Blah Blah
뭐, 이런 것처럼.
문제인 것은 가끔씩 어떤 아이들, 특히 성실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러한 조언을 정신 깊숙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지속적으로 어떤 암시에 가깝게 아이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데, 대부분의 경우 공부를 못 하면, 혹은 실패하면, 성적이 안 좋으면, 나는 망한다 라는 것을 굳게 믿게 된다. 거의 세뇌라고 할 수 있겠지.
이 아이들은 대부분의 경우 학원의 우등생이 된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쫓겨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여기까지만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것이 왜 문제인지 얘기해 보겠다.
첫째, 두려움에 쫓겨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제를 풀 때, 오랜 시간 고민하려고 하지 않으며, 개념이 이해가 안 가면 그냥 외워서 넘어가려고 한다. 이해할 시간에 문제를 몇개 더 풀면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한시간 동안 한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못 푸는 것보다 차라리 50문제를 풀어서 맞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는 말이다.
둘째,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쌓이다보면,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때가 보통 고등학교부터이다. 처음 공부할 때 이해 못 하는 것 한 두개 정도는 외워서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챕터가 지나갈 때마다 계속 쌓이게 된다면, 나중엔 이제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더욱 더 외울 수 밖에 없다.
셋째, 외우는 방식은 공부량이 중요한데, 더 이상 공부량을 늘릴 수 없을 때가 온다. 외우는 것은 필연적으로 까먹기 마련이며, 까먹은 것은 다시 시간을 투자하여 외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중학교 수학은 어떻게 외워서 공부한다고 쳐도, 고등학교 수학은 그 외우는 양이 중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중학교 때 이미 자신의 한계까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학생이 고등학교 수학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자는 시간을 더 줄여서 시간을 확보하나. 그렇게 해도 점점 눈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 스스로도 보이는데.
넷째,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좌절감은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암시와 맞물려 정신적인 문제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두려움은 그 정도가 적절할 때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너무 크면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불러 일으킨다. 초반에 아이를 공부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암시가 점점 아이들에게 큰 족쇄가 되는 셈이다.
다섯째, 그런 습관을 만들어 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은 시도하지 않는다. 누군가 앞에 먼저 걸어간 사람이 만든 안전한 길이 있을 때, 그것을 모방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에게 이러한 가치관을 다시 심어주며, 세대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불행이다. 수학을 잘못 공부하면서 스스로 불행해지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이게 모든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아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아이들은 저런 암시를 아예 무시하고 배를 짼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뭐, 모두가 수학을 다 잘 할 필요가 있나.
지금 내가 위에서 말한 문제들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수학을 가르치는 동안 꽤 여러 명 봤다. 희안하게도 저렇게까지 심해지는 경우는 여학생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남학생은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 흠.
어쨌든 수학을 공부시키는 두가지 방식에 대해서 지금까지 얘기해 봤다. 두려움을 주는 방식이 현재 트랜드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방식 또한 아이들에게 큰 부작용을 주고 있음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아니 그럼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란 말인가.
그래, 그게 이제부터 내가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