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ishna Sep 16. 2020

암사자끼리의 싸움

육아수학교육 에세이, 네모돌이 06편

와이프는 그런 네모돌이의 문제를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문제로 보았고, 그런 걸 안정시켜 주는 정신과 약을 복용시키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정신과 약을 한두번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그 약을 먹게 되는 것은 네모돌이에게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어렸을 때 그런 정신적인 문제를 통제하는 연습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평생 배울 기회가 없이 약에 의존하며 살 확률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을 먹일 것 같으면 차라리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한동안 대안 초등학교를 알아보기도 했다. 와이프와 네모돌이가 계속 저렇게 충돌한다면 네모돌이의 교육은 고사하고, 와이프마저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네모돌이보다 더 심한 아이들도 가르쳐서 교육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왜 네모돌이는 안 되는 것일까. 한동안 고민해 봤는데, 내게도 문제가 있지만, 네모돌이가 나를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아빠로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 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네모돌이는 다른 곳에 가면 정말 모범적이고 예의바른 아이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만나는 아파트 할머니들에게 항상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고, 선생님 말씀도 나름 잘 듣는, 밖에서는 훌륭한 학생이다. 그런데 가족들에게만 그렇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네모돌이를 다른 교육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와이프의 친구들이 나마저 네모돌이의 교육을 포기하면 정말 큰일이라고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포기는 아니었다. 그건 또 하나의 실험이었으니까. 뭐, 결국 다른 곳에 보내진 않았지만.


그렇게 나와 와이프가 네모돌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껴갈 무렵, 나는 스승님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나는 네모돌이의 교육이 실패하는 원인을 네모돌이가 짜증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공부에 앞서 이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승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에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 것 같은가. 아마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그런 상황에 자신이 처해있다는 것에 짜증이 나지 않을까. 당신도 덜하진 않을 것이다. 당신의 딸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네모돌이가 좋다고 말한 것은 어른인 우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항상 하찮아 보였고 위험해 보였다. 하다못해 다 놀고 나서 정리라도 잘 했으면 그나마 좀 덜했을텐데, 다 놀고 나서 정리를 안 해서 좀 더 많이 혼나기도 했다.


나도 그렇지만 와이프는 올바른 것에 대한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꼼수라던가, 거짓말 같은 것을 많이 싫어하는 편이다. 물론 나도 그것이 싫기 때문에 네모돌이가 그런 것을 어길 때마다 엄격하게 혼을 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물론 네모돌이가 뭔가를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네모돌이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다 통제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아침에 아무리 친절하게 말해도 네모돌이가 공격적으로 말하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지겹게 욕을 먹는 하루가 또 시작되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있나.


그리고 또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그저 서로의 영역이 다른 것이다. 당신의 딸의 영역과, 당신의 와이프의 영역, 그리고 당신의 영역. 서로 이 영역을 침범하게 되면 사람들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게 된다. 당신의 딸에게 당신이 언제 화를 내는지 잘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그렇다. 나는 네모돌이에게 화를 잘 내지 않지만, 가끔씩 화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내 기준을 넘어서는 경우이다. 와이프가 화를 내는 경우도 와이프의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을 네모돌이가 했을 때이다.


그런데 스승님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건 너무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해결책이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여쭤 봤더니,


암사자 둘이 서로 싸우는데, 당신이 뭘 할 수 있을까. 누가 하나 이기겠지. 그때까지 당신은 상식적인 선에서 지켜보고 대책을 세워라.

그리고 정신과 약이 누군가에겐 필요할 수 있겠지만, 당신의 딸에게는 필요가 없다. 그 문제는 당신의 와이프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가. 그건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둘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이다.


아, 정말 해결책이 없는 것이었구나. 가끔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해결책이 없는 문제가 더 많지 않을까. 그래도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았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부턴 그냥 견디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인생에서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내 경험에 따르면 그냥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네모돌이의 교육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가 아니라,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이 남아있었으니까.

이전 19화 계속된 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