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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y 24. 2021

세뇌에 가까운 방향성

성인용 수학, 등호의 방향성

홀로 존재하는 오른손잡이 농구선수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 농구라는 스포츠의 붐이 있었다. 그 당시 만화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나라 농구 스포츠의 붐에는 <슬램덩크> 라는 만화책이 어느 정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슬램덩크>라는 만화책 때문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따라 농구를 해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 <슬램덩크>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상양고교의 김수겸이라는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는 그 시합에서 유일한 왼손잡이 플레이어인데, 재밌게도 만화책을 볼 때는 유일한 오른손잡이 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일본 만화책은 원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데, 당시 번역판에서는 이것을 국내용으로 만들기 위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만들다 보니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오른손잡이 캐릭터는 전부 왼손잡이로 표현되고, 유일한 왼손잡이 캐릭터는 오른손잡이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인지의 방향성


내가 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인지의 방향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뭐 대단한 개념은 아니고 그냥 내가 심심해서 만든 말이다.


한국어로 된 서적은, 글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서 하나의 가로줄을 만들고, 줄이 다 차면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방식이다. 바로 이 글처럼. 그래서 아마 한국어 서적은 자연스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일본어의 서적은 한국어와는 다르게, 글자는 위에서 아래로 써서 하나의 세로줄을 만들고, 줄이 다 차면 왼쪽줄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세로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된 서적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서적에서만 그렇고, 실제로 인터넷에 쓰여있는 일본어로 된 글들은 한국어와 같은 방식을 띈다. 엄밀히 말해서 한국어와 같다기 보다는 컴퓨터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진 영어의 방식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글자 자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술하는 언어도 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 등이라고 하더라. 이 언어의 사용자들은 인지의 방향성이 오른쪽에서 왼쪽이라고 일단 얘기하고 싶기는 하다.


물론 이 인지의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고정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본어의 경우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는 하지만 인터넷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국제적 표준인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라는 규칙을 지켜야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이 인지의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뀔 수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곳에서 보이는 인지의 방향성


이건 언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개념에서도 대다수 존재하는데, 타임라인을 작성할 때도 보통 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미래를 표시하고 달력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게 수학에서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표를 작성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방향성이 정해진다. 이걸 거꾸로 겨울, 가을, 여름, 봄 이라고 쓰면 굉장히 어색하지 않을까.



그리고 수를 표시하는 수직선(the number line)에서도 오른쪽으로 가면 숫자가 커지고, 왼쪽으로 가면 숫자가 작아진다. 좌표평면에서는 위로 가면 숫자가 커지고, 밑으로 가면 숫자가 작아진다.


아마 이것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형식이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들, 예를 들면 아까 언급한 아랍어나 히브리어 문화권에서도 이러한 수학적인 기호는 본래 언어의 방향성과는 다르게 쓰는 듯 하다. 아니면 말고. 사실 수학기호의 국제적 표준이 나오기 전의 아랍어와 히브리어의 수학적 표기에서의 방향성이 어땠는지 좀 궁금하긴 하지만,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므로 그냥 의문만 제시하도록 하고, 뒤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보도록 하자.


어쨌든 인지의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정해져 있고, 이것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어휴, 이제야 본론이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성인용 수학이니깐!


내가 이 긴 서두를 꺼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등호(=)의 방향성 때문이다. 등호의 의미는 등호의 왼쪽(좌변)과 오른쪽(우변)이 서로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등호가 있는 식, 즉 등식에서는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등호에 방향성을 더한다. 아래의 예를 보자.


2+3=


자, 위 등호를 봤을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냐면, 왼쪽에 있는 계산을 해서 오른쪽에 써야 겠다고 생각을 한다. 즉, 아무 의심없이 등호에 방향성을 왼쪽에서 오른쪽이라고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대로 등호의 의미를 모르는 초등학생들은 등호의 의미를 “왼쪽과 오른쪽이 같다” 가 아니고, 왼쪽 계산을 해서 오른쪽에 써라 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등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방정식을 풀 때도 보여진다. 아래의 방정식의 풀이를 보자.


3x+2=8

3x=8-2

x=6/3

x=2



방정식을 풀지 못 해도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x 의 위치가 왼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의심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위 방정식을 아래와 같이 풀면 어떨까?


3x+2=8

8=3x+2

8-2=3x

6=3x

6/3=x

2=x


이렇게 x 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x 의 위치가 오른쪽으로 가는데 뭔가 찝찝함을 느껴서 가끔은 오른쪽에 있는 것이 더 편함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왼쪽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사실 이 정도면 거의 세뇌에 가까운 정도인데, 나는 이러한 이유 없는 방향성에 대해서 반대하는 편이다.


이러한 방향성이 어떤 의미없이 정해져 버리면, 사람은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왜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부터 쇠사슬에 묶여 일정거리를 벗어나지 못 하게 한 아기코끼리는 어른이 되어 쇠사슬을 벗어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 한다고.


그래서 가능하면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계산이 처음 나올 때도, 단순하게


2+3=


과 같이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2+3=☐


혹은, 


☐=2+3


으로 기술하여, 등호의 왼쪽와 오른쪽이 같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묻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호에서 방향성이 정해져 버리면, 아이들은 방정식의 해나 근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경우가 있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뭐, 수학에서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 다른 걸 더 다루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여기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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