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 1 때 이야기다. 2학기 때 시간표에 '독서'시간이 있었는데, 단편소설을 읽고 질문에 답을 적어서 내는 수업이었다. 첫 수업 작품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쉬는 시간 1시간 포함해서 답을 적어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난 사실 그 소설 앞부분이 너무 재밌어서 빠져들어서 읽었다. (역시... 톨스토이가 괜히 톨스토이가 아님) 구두를 만드는 사몬이 보드카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추운 거리에서 벌거벗은 미카엘을 만나는 장면까지 엄청 재밌었다. 그래서 이 책을 떠올리면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는 몰라도, 그 장면만은 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진짜 '독서'를 하고 있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훌륭하게 논술 '훈련'을 해냈다. 반에서 나를 뺀 전부가 답을 찾아서 적어냈다. 내가 찾아야 할 답은 사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그대로 나온다. 사람에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금 생각하면 난이도 하에 해당하는 첫 수업이었다.
내가 답을 못 적어내서 선생님도 굉장히 당황하신 눈치였다. 그렇다고 나를 혼내시지는 않았고, 학교 수업이 다 끝난 뒤에 마저 적고 가라고 하셨다. 쉬는 시간에 친구가 마지막 장에 답이 다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참으로 고지식하고 요령 없는 나는 그렇게 어렵고 철학적인 질문에 대답하려면 작품에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말고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분명 저자가 그런 철학적인 답을 문장 어딘가에 은유적으로 숨겨두었을 것이라 굳게 확신하며 엄청난 답을 찾게 될 마음에 부풀어 열심히 독서를 했다.
사실 그 질문에 답을 적으면서 조금은 허무했다. 물론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고, 우리는 스스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좋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미카엘이 그리고 사몬이 겪었던 그 모든 일이 결국은 신이 설계해 둔 깨달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이 조금은 허무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사람마다 각각 다 다르지 않을까. 난 하느님이 정해놓은 결론 말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싶은데...
아마 다음 차기작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참 신기하다. 이야기는 내가 쓰겠다고 생각할 때는 떠오르지 않고,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온다. 잊고 살았던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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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독서 수업은 나한테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책을 읽는 것이 너무 느려서 항상 쫓기는 기분이었다. 답을 찾기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만큼은 흠뻑 문학에 빠질 수 있는 여유를 주셨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게 어쩌면 교육에 관심을 갖거나 아이들 봉사활동을 하게 해 준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 국어선생님도 그런 이상적인 교육을 하셨다면 학생들과 학부모의 컴플레인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현실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선생님도 직장에 소속 된 사람이니까 자기만의 교육관을 지키기에는 만족시켜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으셨을 것이다. 우리가 했던 훈련은 수능 공부에 최적화되어 있는 훈련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나에게 도움은 되었다. 그래도 나는 그 시절에 읽었던 책보다 지금 나이의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