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이 가장 힘들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조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결국 운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운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운’이라는 이야기다. (실력은 당연히 기본값)
당신이 결혼하게 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때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후보자들을 다 파악하고 장단점과 우열을 판단해서 필연적인 바로 그 딱 한 사람을 택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가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자신만의 상상과 오해와 기대 등을 점점 확대시키면서 그 사람과 교제를 하게 된다.
물론 양다리, 다다리를 걸칠 때는 몇 명을 두고 고르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모두를 검증할 수는 없다. 그렇게 연인이 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짝은 결정된다. 첫사랑과 결혼을 하든 많은 연애 후에 결혼을 하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 만나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짝이 결정이 되고 나면,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원칙적으로는 그 사람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위대한 작가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술이라는 것이, 올림픽의 선발과정을 거치듯이 모든 작가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우열을 가리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냥 누군가(중요한 사람)의 앞에 그 당시에 나타난 매력적인 작가라면, 그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되며 잘 해내면 되는 것이다. 이미 누군가가 선점한 자리는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웬만해서는 탈환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권력자들’이라고도 표현을 했었는데, 그것은 미술계의 ‘큰 손’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를 띄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스타를 결정하고 공급하는 메이저 갤러리일 수도 있고, 막강한 재력을 갖춘 파워 컬렉터일 수도 있다.
그렇게 예술가는 겉에서 보기에 고고하게 독립적이고 자존심을 가지고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본에 의해서 선택당하는 존재이며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일뿐이다.
그러니 위대한 작가를 보며, 너무 큰 신비감과 존경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유명한 것인가 필연적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당신이 그와 결혼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가? 결혼을 해야 할 시기에 그럭저럭 마땅한 상대가 당신 앞에 있었던 것이며, 그가 아니라면 당신이 결혼을 안 했겠는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이 작가가 위대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는 것이며 (물론 공식적으로는 수도 없이 만들어내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를 채울 다른 수많은 작가들이 있는 것이다.
대가의 기본 조건과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실체
한국 미술사에 대가로 등재된 위대한 작가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그들이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보통의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기회를 제공받았었다는 것이다.
백남준,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장욱진, 유영국, 이성자… 대부분은 둘째가라면 화낼 만한 부잣집에서 태어나, 그 시절에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었을 유학을 경험하고 미술을 공부했던 사람들이다.
정말로 빈곤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대가가 된 사람은 내가 아는 한에서 박수근 정도밖에 없다. 가난과 싸우며 고통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중섭이나 김환기의 경우도 나중에 많이 각색되고 윤색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나?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 하면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배신감을 느끼고 감동은 줄어든다. 그래서 스토리와 함께 패키지 상품인 예술에 그런 입지전적이고 고난 극복의 스토리가 과장되어 추가되는 것이다. 그래야 더 잘 팔리고 사람들이 더욱 좋아하니까. 그렇게 각색되고 없던 사실도 추가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주 가난하게 살았다고 주입된 이중섭은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하며 공부했고, 아내도 가난 때문에 도망간 것이 아니고 일본의 대형 물류 회사 사장인 아버지의 유산상속을 위해 간 것이다. 돈이 없어서 은지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로 그렸다는 해석도 있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김환기는 광복 후에 서울대 교수를 했고, 1950년대에 파리에서 수년간 거주했으며 돌아와서 홍대 미대의 학장을 지냈다. 1960년대에는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했다.
후기 인상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리면, 음울한 분위기의 밀밭에서 까마귀가 푸드덕푸드덕 날아오르고 마치 내가 독한 압생트에 취한 것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고흐의 절규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같고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공감각적 착각도 든다. 전 세계적으로 가난함과 광기의 대명사인 빈센트 반 고흐도 그 이미지가 우리에게 주입된 것은 아닐까?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지원을 받으며 작업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자존심 상하고 미안하고 궁핍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괴로움과 절망감에 충분히 감정이입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강력하고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이미지가 우리를 지배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냉정하게 정신 차리고 찬찬히 생각해 보면, 고흐 정도면 굉장히 감사하고 다행인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모든 형제 관계가 그처럼 돈독하지는 않다. 나도 형이 있고 형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우애가 좋은 편이지만 고흐처럼 그렇게 경제적으로까지 의존할 수는 없다. 형도 형의 삶과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작가들의 삶을 약간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고흐보다 더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사람들은 많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고흐의 상황은 그렇게 나에게 도움을 줄 가족은 없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만 있어서 예술을 포기해야만 하는 평범한 많은 작가들에게는 굉장히 부러운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더욱 예술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형성시킨다. 우스갯소리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세상의 냉대와 생활의 고문 속에서, ‘나도 고흐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끝내면 유명해질 수 있을까?’ 하고 한 번쯤은 고민을 해보고 유혹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이 스토리의 임팩트와 완성도를 높이고 그런 작품에 사람들이 더욱 열광하고 감동을 느낀다면, 예술이라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예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예술을 위한 것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예술을 하는 것까지야 꼭 그렇게 하겠다면 말릴 수 없지만, 목숨과 맞바꾼다면 그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대단한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이 세상 그 누구의 생명보다도 위에 있지 않다.
예술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스스로 귀를 잘라냈다는 일화는 더욱 충격적이고 비범한 광기의 이미지를 생성시킨다. 실제로는 자학을 하다가 귀에 상처가 나거나 뜯기거나 베인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잘라냈다’는 단어가 주는 임팩트와 공포감과 상상력이 있는데, 얼마만큼 다친 것인지 깐깐하게 따져 들어가면, 아마 정확한 팩트를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없을 것이다.
정황과 부풀려진 소문과 이미지만 남게 될 뿐이다.
나도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다가 발목을 삔 적이 있는데, 나중에는 다리가 부러졌다고 소문이 나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소문이 나기도 하고, 불구가 되었다고 소문이 난 적이 있다. 어떤 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고등학교에 미술 강사로 취직해서 일을 했는데, 그거 얼마나 번다고, 사람들이 “걔가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렇게 많은 일들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거품이 섞이고 부풀려진다.
결국은 이미지인 것이고 세상은 ‘시뮬라크르’가 지배한다.
모두가 자신이 가장 힘들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겪은 고통이 가장 크고 자신이 든 한 개의 짐이 남이 든 열 개의 짐보다 더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법이다. 누구도 조금의 어려움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고 부족함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자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인가? 그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10억을 가지고 있으면 그 정도면 넉넉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100억을 넘게 가지고 있어도 저런 그지 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난함의 기준도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넉넉하고 남들보다 걱정이 없을 만한 환경인데도, 엄청 자신이 불우한 환경인 것처럼 생각하고 의지를 불태우며, 힘든 형편을 벗어나기 위해서 더 거친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를 보며, ‘가난이라는 것은 참으로 주관적인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강남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온갖 기회를 제공받고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온 어떤 동료도 돈 때문에 힘들고 자기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봤다. 그렇게 가난과 어려움, 고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고, 모두가 결핍과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결론은, 미술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넉넉한 환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능력과 의지력을 가지고 있어도, 상황이 허락지 않으면 접어야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도 기반이라는 기본값이 주어지지 않으면 꽃 피워지기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황주의자에 가깝다. 불굴의 의지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신화화되고 과장된 이야기일 공산이 매우 높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고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배고파야 예술이 나온다."라는 말은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있는 예술가가 자위하기 위해, 혹은 사람들의 고난 극복 기대 수요에 의해 만들어져 주입된 편견이자 환상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고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