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은 과대평가 되기 마련이다
예술은 인간의 우상화 작업 이다
위대한 작가는 과대평가되기 마련이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과대평가되기 마련이다. “이 작품을 정말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진짜로 그런 것인가?”, “개개인 모두가 그것을 꼭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의 고민과 의심과 질문과 탐구는 더 이상 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가 된다.
일단 “이 작가는 위대한 작가이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은 당연히 위대한 것이다.”, “위대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고, 이제부터 우리는 그 위대함을 합리화시켜 줄 이유와 명분만 찾으면 된다. 의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위대함을 위한 위대함의 찬양이 되어버리는 지점에서는, 예술가가 식사 후 입을 닦고 버린 내프킨마저도 성물로 모셔질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그렇게 거대한 권위를 바탕으로 하는 안락하고 든든한 확신 위에서, 더욱 큰 감동을 바라고 그것을 자가발전해 내는 언어 표현의 마술사들은 기상천외한 표현 방식으로 찬양하고 분칠을 하며 거품을 점점 더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조자들이라고 본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모든 미술은 결국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된다. ‘승자독식’의 의미와도 상통하는 것인데, 0.1초의 차이로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듯이, 한 문제 차이로 합격과 탈락이 결정되고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되듯이, 아주 미세한 차이 내지는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사실 명확하거나 일관된 기준도 없지만) 명작과 범작이 정해지기도 하고, 그 이후에 빈익빈부익부 가속화 현상처럼 명작의 위상은 점점 더 올라가고 범작은 처치 곤란과 폐기의 처지가 되고 만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거의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미술이 단연 압도적이다. 그 말은 지금 우리가 추앙하는 걸작이라는 것들은 갖은 립 서비스와 펌프질 작업에 몸집과 아우라가 천재 사업가의 통장잔고처럼 잔뜩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수많은 안타까운 작품들은 간택되지 못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결국 폐기처리 되어야 할 비참한 운명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