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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atsall Nov 25. 2021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회사로부터

실무형 팀장들이 일 잘하는 팀원을 잃는 과정

스타트업에서 소위 '팀장'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온전히 팀 관리만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작은 조직일수록 경력과 무관하게 실무를 하게 된다.

아무리 업계의 경험이 많고, 뛰어난 기획력을 갖춘 시니어일지라도 그 경험과 기획을 실행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도 있는 마당에, 굴곡이 크고 성장이 빠른 스타트업이면 새로운 일을 계속적으로 벌려야 한다. (또 계속 일을 벌이고 싶기도 하다) 작은 조직에서 팀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행력인 듯하다.


나 혼자 팀. 1인 1팀 체제일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실행하면 되니까.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본인 밑으로 담당자를 채용하게 되는 순간, [기획+실행]에서 [기획+실행+관리]로 역할이 늘어난다.


넓어진 업무 영역에 실무형 팀장이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과

실무를 중요시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이 만나

일 잘하는 담당자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던 경험을 정리해본다.


회사가 아직 작을 때, 모두가 1인 1팀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2인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직문화는 자연스럽게 '허슬'로 자리 잡아갔고, 힘들었지만 회사가 잘 커가니까 버텼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2인분을 하던 사람들은 본인 밑에 2~4년 차 실무자들을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인의 일을 실무자에게 나눠주었고, 이제부터 그 팀원과 함께 팀을 잘 꾸려나갈 생각에 희망으로 가득 찼다.


작은 조직일수록 관리자보다는 실무자에 초점이 맞춰진다. 실무형 팀장들이 실무에서 손을 놓게 되는 순간, 아무리 팀장 타이틀을 지니고 있더라도 업무 커뮤니케이션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스타트업의 경우 일의 진행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회사는 점점 이제 막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그 팀원에게 진행상황을 묻고, 지시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팀원이 일을 잘하고, 열의에 가득 차 있을수록 더 심해진다.


팀원과 팀장간의 괴리가 발생한다.

팀원은 이제 적응해야 할 판에, 엄청난 양의 업무들을 받게 되었다. 팀장이 원래 하고 있던 업무를 나눠준 것뿐만 아니라, 팀장(또는 회사)이 그간 바빠서 못하고 있었던 업무들을 서서히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많아졌고, 대표와의 대면도 잦아졌다.

반면 팀장은 새로운 일을 추진할 수 있어서 신이 났고, 업무량을 덜어내어 집중력이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데려온 팀원이 일을 잘하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본인이 2인분을 해냈던 것처럼, 저 팀원도 충분히 '허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괜찮아 보였다.


이런 괴리가 심해지고, 팀원이 감내해야 할 업무적, 심리적 부담감이 커져감에 따라 팀원은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이런 사례가 타 팀에서 일어났고, 몇 개월 뒤 내 팀에서 일어났다. 직접 겪어보니 이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것 같다.


대다수의 스타트업 실무형 팀장들은 어리다. 경력 10년 미만인 경우가 많고, 조직관리라는 것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팀을 꾸리게 됨에 따라 [관리] 역할을 맡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획/실행]에 머물러있는 경우다.


내 팀원이 나와 같은 체력과 정신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과신,

팀원이 업무 커뮤니케이션 전선에 나서는 것이 수평적 문화에서 나오는 '기회'라는 각,

팀원은 생각보다 팀장을 믿고 있으며 의지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실

이런 요인들을 간과했던 것이 아끼는 팀원을 잃게 되는 원인이라 생각된다.


매몰차게도, 일 잘하는 담당자가 퇴사하게 되면 그 귀책은 팀장에게 돌아온다. 

'팀장님 ××님 정말 잘 뽑으셨어요'라던 회사의 칭찬은

'팀장이 케어를 안 해주니까 ××님 나간 거 아냐..'라는 수군거림으로 변한다.

조직 내에서 본인의 신뢰를 잃게 된 것뿐만 아니라, 겨우 덜어내었던 일의 양을 돌려받게 된다. 여러모로 본인에게, 회사에게, 퇴사자에게 좋을 게 없다.


큰 회사 다니던 때, 온전히 관리만 하던 리더들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야근하며 열심히 만든 자료를 가지고 올라가서 보고만 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굉장히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 내가 속해있던 조직과 지금의 조직은 사람도, 상황도 많이 다르지만) 대표에게, 상무에게 깨지고 돌아와서 크게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내 팀장님들이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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