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역마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삼대>라는 소설에서 처음 알게 된 말이었다. 그게 지인들이 나를 일컫는 말이 될 줄은 정말 몰랐지. 스스로를 평범하고 전형적인 모범생이라, 무엇보다도 변화와 모험 같은 파란만장한 사건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입시가 끝나고 떠난 첫 해외여행과 대학생활_규칙적이고 모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 학과에서의_은 주변에서 당황스러워할 만큼 나를 바꿔놨다. 아닌가? 사실 변한 건지, 원래 난 이런 사람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 든 간에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던 집순이는 여전히 집이 좋지만 규칙적인 생활에는 좀이 쑤시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됐다. 돈이 있어 여행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5박 6일의 두바이
다낭-호이안과 나트랑-달랏으로 떠난 두 차례의 베트남 가족여행
친구와 단둘이 다녀온 첫 여행, 코타키나발루에서의 4박 6일
그리고 제작년 가을 홀로 떠난 두 달간의 동유럽까지.
총 다섯 차례의 여행은 나에게 다섯 묶음의 기록을 남겼다. 외장하드에 소중하게 보관된 사진들은 필수. 일정과 간단한 소감, 맛있는 음식 등을 다이어리에 적은 약식 여행노트부터 모든 경로와 숙소, 일기, 각종 입장권과 교통권을 모아놓은 두툼한 여행 노트까지, 여행의 흔적을 남기려 했다. 목적은 단순했다. 떠나고 싶을 때, 문득 생각날 때 꺼내보는 것.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보는 것.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나에게 여행을 되돌아보는 건 일종의 현실 도피다. 다시 떠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