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박물관을 좋아한다. 아니, 동경한다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박물관의 전시품들을 보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보고 느끼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다. 동행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필요가 없는 혼행에서 가장 먼저 게획했던 것 역시 뮤지엄 투어였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그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었다. 내 (거의) 모든 일정은 각국의 뮤지엄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외의 뮤지엄_어느 정도 규모와 소장품을 가진_은 어떤 의미로든 내 예상을 벗어났다. 매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도록 했던 뮤지엄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최고와 최악을 동시에 경험토록 해주었던 건 역시 베를린이었다.
내 최애 도시, 베를린은 두 달간 다녀왔던 모든 도시 중 단연코 븍물관의 천국이라 불릴 만한 도시였다. 도시의 중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박물관 섬(무려 섬이다!)이 위치하고, 고전적인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 뿐 아니라 다양한 테마의 체험형/관람형 박물관들이 도시 전역에 산개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었으나 4박 5일의 짧은 일정 안에 모든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박물관 섬을 포함해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 몇 군데를 방문하기로 했다.
사실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박물관 섬 안의 뮤지엄들에 전시되어 있다는 고전 회화들을 실제로 보는 것이었으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은 Judisches Museum Berlin,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이었다. 독일에 방문했고,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방문할 예정이었기도 하니 추모 겸 사전 정보를 얻을 겸 기대 없이 투어 계획에 넣었었지만 이곳에서의 기억들만큼은 (거의) 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유대인들의 역사와 개개인의 이야기도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곳곳에 추모를 위해 마련된 공간과 전시들은 그들이 느꼈을 공허함과 우울감을 생생히 전해주는 듯 했다. 방문 이후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는 지인들에게 무조건 가봐야 한다고 추천하는 뮤지엄으로, 아픈 역사와 진심으로 전하는 추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공간이다.
크거나 훌륭하게 구성된 박물관들은 물론 훌륭하다. 훌륭한 예술품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고, 다른 나라 또는 도시에 방문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런 뮤지엄들을 가장 먼저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박물관을 비롯한 베를린의 박물관들이 특별했던 것은 단순히 과거의 영예를 전시하는 곳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의 뮤지엄들은 과거의 무엇과 현재의 소통창구로서 그곳에 존재했다.
베를린의 박물관 섬은 그야말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박물관 섬 안의 모든 뮤지엄들은 깔끔하고 잘 짜인 동선을 제시해 주었으며, 소장품들 역시 대단한 것들 뿐이었다. 그 모든 것들에 감탄하기도 잠시, 불편함이 마음 한켠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유물들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하게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들 중 하나라도 그들의 것이 있는가?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던 불편함은 이집트의 미라와 관들을 전시해둔 곳에서 터져버렸다. 그곳은 훌륭한 미술관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어떤 국가들을 얼마나 악독하게 약탈했는지를 생생하게 박제한 곳이었다. 그들의 명성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으며, 그저 먼 이국의 고대 국가들을 그대로 뜯어온 것에 불과했다. 과거 약탈당한 수많은 문화재들을 아직도 돌려받지 못한 국가의 국민이기 때문인가. 어느새 흥분과 기쁨은 가라앉고 불편함만이 남는다. 이는 어쩌면 평생을 가지고 가게 될 감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