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특이한 페이스북 친구 김주부 씨. 오늘은 치유 한시를 소개한다며 필사본 한 페이지를 사진 찍어 올렸다. 주부께서는 「등고(登高)」가 마음에 든다고 올렸지만, 나는 두목(杜牧)의「산행(山行)」이 마음에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익숙한 시라서 ^ ^ 나와 비슷한 연배 분들이라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어, “아, 그 시!” 하고 무릎을 치지 않을까 싶다.
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먼 가을산 오르노라니 돌길 경사졌는데
白雲深處有人家 백운심처유인가 흰 구름 깊은 곳에 인가 두어 채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추고 늦가을 단풍 바라보나니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어와, 서리 맞은 단풍 이월의 꽃보다 붉고녀!
특별한 기교가 없으면서도 선명한 백색(흰 구름)과 붉은색(단풍)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투명하고도 맑은 늦가을 정취를 잘 담아냈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오늘 도비산 산책 중에 이 시를 한번 읊조려봐야겠다.
이 시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 후진타오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 늦가을이었는지, 청와대에서 이 시를 읊조렸다고 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말없이 상대방의 시 읊조림을 듣고만 있었다고. 어느 신문 칼럼에서 봤던 내용인데, 그 칼럼을 쓴 이는 만약 김 대통령이 화답으로 적절한 한시 한 수를 읊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아쉬움을 표했었다.
정상 간 만남은 국익을 중심에 두어야 하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 호감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전 작업이다. 김 대통령이 공동의 문화유산인 한시로 화답했다면, 국익 연결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분명 깊은 호감을 얻었을 것이다. 좋든 싫든 중국과는 과거 오랜 기간 한문이라는 공동 어문학을 공유했기에, 우리 정상이 중국 정상과 만날 때 미리 적절한 한시 한두 개 정도는 외워서 사용한다면 외교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서 샤오미 폰을 선물 받고, 다소 직설적으로 “통신 보안은 잘 됩니까?”라고 농담을 건네자, 시 주석이 웃으며 “백도어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라고 응수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두 정상이 민감한 사안(중국 스마트폰의 보안 문제)을 유머로 잘 승화해 처리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아마 두 정상은 이 농담으로 상호 호감과 신뢰를 쌓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에이펙(APEC)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에 초청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혹시 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할 때 참모진이 계절이나 상황에 알맞은 적절한 한시 한두 수쯤 마련해 드려 사용하게 한다면 좋은 쓸모가 되지 않을까, 하는 한가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이 번 샤오미폰을 두고 나눈 농담으로 쌓은 호감과 신뢰가 더 깊어지고 그것은 곧 국익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역시 한가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