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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단상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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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 무궁 무궁화 / 무궁화는 우리 꽃 / 피고 지고 또 피어 / 무궁화라네 / 너도 나도 모두 / 무궁화가 되어 / 지키자 내 땅 / 빛내자 조국 / 아름다운 이 강산…


어릴 때 배웠던 「무궁화 행진곡.」"피고 지고 또 피어"라는 대목은 말 그대로 무궁화의 무궁한 생명력을 표현한 것으로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좋다.


그런데 오늘 한시 한 수를 읽다 재수 없는 대목을 만났다. 이 꽃을 욕보이는 구절을 만난 것.


천년토록 변치 않는 정절 있는 소나무 될래요 / 아침마다 피는 무궁화라 누가 말을 하나요 / 백 년 뒤 함께 서산의 해를 이별하고 / 천추만고토록 북망산 먼지 되어요(願作貞松千歲古 / 誰論芳槿一朝新 / 百年同謝西山日 / 萬古千秋北邙塵)


유희이의「공자행(公子行)」마지막 대목. 창가(娼家)의 여인네가 남자 손님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 무궁화는 변하기 쉬운 것의 상징이다. 「무궁화 행진곡」의 무궁화와는 정반대 되는 의미. 불쾌하다. 이 시의 무궁화 상징에 불쾌감을 느낀 건 무궁화가 우리나라꽃이기 때문이다.


나라꽃은 그 나라 국민의 친숙도와 역사성을 고려해 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무궁화가 그렇게 친숙한 꽃이냐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성은 있는 듯싶다. 고래로 우리나라를 중국에서 근역(槿域, 무궁화 나라)이라 불렀으니 말이다(우리가 즐겨 부른 명칭이 아니고 중국에서 주로 불렀다는 점이 흔쾌하진 않지만). 그런데 역사적 의미를 따진다면 무궁화보다는 사군자나 연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전통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유교와 불교문화의 상징적인 꽃이니 말이다. 무궁화가 전통의 상징으로 체감되지 못하는 것은 유교의 사군자나 불교의 연꽃처럼 사상과 종교의 기저를 이루는 그 어떤 문화적 지위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아마도 구한말 개화기에 '무궁'이라는 의미에 상징적으로 집착하고 일제 강점기 독립 정신의 상징으로 채택되면서 간절했던 시대의 염원이 응축되어 나라꽃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은 것 아닌가 싶다.


북한의 나라꽃은 진달래라고 들었다. 적어도 친숙도면에서는 무궁화보다 나은 것 같다. 그러나 이도 역사성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 당신은 나라꽃을 바꾸자는 얘기요?, 라고 질문할 것 같다. 아이고, 뭐 거기까지. 먹고살기도 힘들고 바쁜 세상에. (개명하려면 절차가 복잡하다고 들었다. 나라꽃을 바꾸려면 아마 그 못지않게 많은 정력이 낭비될 터이다). 그러나 무궁화를 나라꽃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무궁화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상징도 있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가 생각했던 의미와는 정반대이고, 더구나 그런 의미로 사용한 이들이 중국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근역'이라 부를 때는 내심 긍정 의미보다는 부정 의미로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시 한 수를 읽다 문득 든 생각을 얼버무려봤다. 그나저나 저 시의 여인은 자신의 말처럼 끝까지 소나무의 정절을 지켰을까, 아니면 무궁화의 변덕을 부렸을까? 괜스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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