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계획

by 은주

나는 종종 변화를 두려워했지만, 단순한 행동의 변화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결심을 했으니 실행 계획 ‘Action Plan’을 세워야 했고, 이는 구체적이어야 했다.


귀찮음에서 벗어나기

그동안 나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안락하게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움직이지 않으면 만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앞의 헬스센터에 가서 회원 등록을 했다. 저녁의 술 약속을 없애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러닝머신에서 방금 내렸는데 다시 그 기계 위로 올라갔다. 내 이름이 붙은 집을 장만한 후 그 집이 가족인 양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퇴근 후 와인 한잔을 하거나 맥주 한잔을 즐겼다. 오징어 뒷다리나 쥐포를 뜯으며 다운로드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소확행이었다. 소파의 지정석은 점점 움푹 패어갔고, 혼자만의 공간은 더 단조로워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구애받지 않고 하기에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뜩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2016년 1월 1일의 ‘혼자 늙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다시 마음을 잡았다. 오래전 거절한 소개팅 자리가 유효한지 전화를 돌렸다. 나가기를 그만둔 London Finance 모임도 다시 나갔다. 자신이 런던에서 얼마나 성공하고 부유한 사람인지 거들먹거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도 이번엔 흥미진진하게 들어줬다. 나만의 공간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과 그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필요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지만, 그것은 변화의 첫걸음이 되었다.


직업 선정하기

상대의 직업이 의사, 변호사, 선생님 같은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와 만나면 힘들 것 같은 직업을 지워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의 섬세함과 예민함을 파워 T인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분석하기 좋아하고 효율성을 중시했다. 그 외의 모든 직업은 편견 없이 만나 보기로 했다. 물론, 나보다 연봉이 높은 사람을 선호했지만, 첫 만남에서 “연봉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예의 없는 질문을 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 아니었다. 직업군 선정이 중요한 이유는 의사를 만나고 싶으면 네트워크를 병원 근무자로 돌려야 하고, 금융인을 만나려면 금융권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야 한다. 바클레이 같은 은행권과 모건 스탠리 같은 증권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런던 카나리 워프의 금요일 저녁엔 템즈강가의 펍에 반드시 나와 있어야 한다. 속물처럼 보일 수 있어도 액션플랜에서는 내 마음 상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차피 누군가를 만나 평생을 같이 한다는 건 자선 사업이 아니니까.


능동적으로 연애하기

연애와 만남의 기회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소개팅으로 만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등 떠밀려 만나는 수동적인 연애보다는 내가 원하는 상대를 직접 찾아가는 능동적인 연애가 필요하다. 만남의 기회를 확장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데이팅 웹사이트였다. 처음에는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망설였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데이팅 웹사이트가 널리 퍼져 있었다. 당시, ‘매치닷컴’과 같은 유료 웹사이트는 일정한 가입비를 지불하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회비는 7.99 파운드로 비싸지 않았고, 사람들은 대개 진지한 만남을 원한다는 점에서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입 시 나이, 직업, 학력 등의 기본 정보와 원하는 상대에 대한 조건을 제공하면, 그에 맞는 사람들의 프로필이 나타난다. 내가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하트를 보내면, 상대방도 관심을 보였을 때 대화가 시작된다. 실제로 내 주변에 이 웹사이트를 통해 대학교수, 펀드매니저,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만남을 갖고 결혼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방법은 스피드 데이팅이었다. 스피드 데이팅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 번에 여자 15명과 남자 15명이 한 카페에 모여 3분씩 대화를 나누고, 호감을 느낀 사람에게 하트를 보내면, 그 후 대화가 이어진다. 이런 방식은 빠르게 여러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관심 있는 사람과 짧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호감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후에 더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선호했지만,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소그룹 모임인 ‘일 끝나고 윈저에서 만나’라는 밋업 그룹에 가입했다. 이 그룹의 회원은 약 300명 정도였고, 한 번 모임에 대체로 70명 정도가 참석했다. 반상회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대일 데이트보다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무조건 세 번은 만나자

연애에서 실패의 주요 원인은 ‘첫인상’이었다. 첫 만남에서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두 번째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 나와 맞는 단 한 사람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나이가 들수록, 설렘은 점점 더 귀해졌다. 까다로운 게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누나 또래의 괜찮은 남자들은 누나가 도서관에서 안경 쓰고 공부할 때, 나이트에서 만난 어린 여자애들이 다 데려갔어요.”다섯 살 어린 후배의 말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현실이다. 내 안에서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그에게도 나에게도 시간을 주자.’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세 번은 만나 보자.

첫인상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자.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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