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입니다.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오늘부로 캐나다에서 11학년을 마친 아이와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 1편을 함께 봤어요.
여기저기 거실 바닥에 흩어진 장난감처럼 생각이 어지러져 있을 땐 밤산책을 나가거나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곤 해요.
소파에서 아이와 함께 누워 보는데 어느새 아이는 침실로 들어가고 저 혼자 꾸벅꾸벅 졸면서 영화를 마쳤습니다.
오랜만에 본 반지의 제왕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숨은 디테일과 등장인물들의 다면성 등이 보이더군요.
가령, 오늘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세상 추악한 괴물로 나오는 오크가 본래는 극중 캐릭터 중 하나인 레골라스와 같은 아름다운 요정이라는 점입니다. 그들도 한때 아름다운 불멸의 요정이었으나 어둠의 세력에게 납치당해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그 결과 끔찍한 생명체가 되었다고요.
우린 한때 모두가 어린아이였고 순수했지만 살아가면서 변하기도 하죠.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끔찍한 존재로 바꾸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어릴 때부터 꿈에 그리던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별다른 스펙 없이, 그간의 어려웠던 시기를 딛고 해외 취업이라는 성취감에 차 있을 때 찾아온 공황장애로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 이제야 다른 이들처럼 출발선에 섰을 뿐인데, 이제야 좀 숨을 돌리려고 하는 내게 왜 또 이런 시련이 닥치나. 희망을 잃었고 처음 겪는 증상들과 끝이 없는 시간들에 좌절하고 또 좌절했어요.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며 하루 종일 누워 머릿속으로는 불행회로를 돌리는 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겉모습뿐 아니라 몸도 마음도 파괴적인 추악한 오크나 다름없었네요.
격렬한 전투신과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도달할 즈음, 영화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되는 깊어가는 새벽, 영화가 끝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반지를 운반하는 영화 속 주인공은 끔찍한 현실에 처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합니다.
반지가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이런 원망의 목소리에 그는 또한 스스로 이렇게 답합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야 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다.
침묵 끝 주인공은 자신의 쉽지 않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끝까지 걸어가겠노라 다짐하며 영화가 끝났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나라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길, 더 나은 부모님과 가족들을 바랐어요. 나중엔 원하지 않은 일들을 여러 번 겪으니 '아니, 그런것까진 안 바랄게, 제발 나 좀 내버려 둬라'에서 '제발 증상만 멈춰주세요'로 바뀌었죠.
원하고 꿈꾸던 인생이 있었지만 결국 그건 제 것이 아니었고 이에 괴로움과 슬픔에 몸부림친 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래도 괜찮더라고요. 내가 원하고 꿈꾸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그 불확실한 여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원망으로 시작한 여정에서 진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해 가는 기쁨도 누리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과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고통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진짜 모습이 결정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은 하루하루 속, 불멸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그것을 지켜내신 여러분들의 귀한 오늘을 응원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라이팅게일 드림
#라이팅게일 #오늘의아무말
#You_Will_Never_Walk_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