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회복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지옥 같은 3월이 끝났고, 나는 이번 우울증에서 살아남았다. 퇴사 날짜가 정해지고 3월 둘째 주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퇴사가 결정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마법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주라는 시간이 남아있었고 정신은 이미 퇴사 하였으나 몸은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고 이러한 몸과 마음의 간극으로 나는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넷플릭스를 켜두고 어두운 방에 앉아서 먹기만 했다. 해야할 일과 친구들과의 약속 등은 모두 내일로, 다음주로, 다음 번으로 미뤄버렸다. 먹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일을 할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먹고 먹고 먹다가 위장의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가서 모든 것을 토해냈다. 토하고 난 뒤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남은 것을 먹었다. 남은 것을 다 먹으면 음식을 다시 사오고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음식을 사오고 먹고 토하고…… ‘토했다.’ 반복되는 단어의 나열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 지겹게 만들지만 2주 동안 했던 것이, 내가 할 수 있던 것이 토한 것 밖에 없었다. 정말로.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그동안 나는 우울증을 질병이 아닌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수사학적인 표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겪은 우울감은 정말로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 자체였다. 먹고 자고 기본적인 욕구 충족 외에 다른 것은 하지 못하고 그렇게 2주를 살아냈다. 버텨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는 작은 생각이 삶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 작은 생각이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되돌아보고 변하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을 온 힘을 다해 붙잡았고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은 살면서 수도 없이 해왔다. 과거의 이 생각은 나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대변하는 부정적인 생각이었으나 현재 나는 이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요새 참 뒤숭숭하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생존자들의 사회에서도 사는 것이 힘들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아마도 인류는 현재 깊은 우울증 겪고 있는 듯 하다.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집 앞에 핀 벚꽃이 참 아름다워 한참을 서 있다가 사진을 찍었다. 작년 봄, 재 작년봄에도 늘 이 곳에는 꽃이 피어있었을 텐데, 왜 그동안은 우리 집 앞이 이렇게 아름다웠다는 것을 몰랐을까.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밑바닥의 이 시기를 우리는 버텨내야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다는 기본적인 삶에 감사하면서 살아내야 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온전히 누리게 될 우리의 회복된 삶을 기약하며 오늘 하루 버텨내는 당신의 하루가 평온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