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서른의 나는 세 살의 나를 불러본다. 부디 뒤돌아봐주기를.

by 벤자민 Benjamin


엄마의 따뜻한 뱃속. 그 속에서 나온 내 머리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던 순간, 아빠가 나를 하늘 높이 던지며 지었던 환한 미소, 기저귀가 축축해져서 터뜨렸던 울음. 이런 장면은 전혀 내 기억에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 세상에 어린아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아 살고 있었을 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내 생에 가장 오래된 기억을 찾아보았다.


외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탔다. 외부는 녹슬어 있었고, 내부는 더 낡아있었다. 눈높이가 낮은걸 보니 아장아장 걸어 다닐 수 있는 나이였던 것 같다. 혼자 앉은 할머니 옆 자리는 놀이터만큼 넓었다.


할머니는 분홍색과 황금색 보따리를 싸들고 계셨다. “칙칙폭폭” 몇 개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할머니와 함께 웅얼거렸다. 창밖의 햇살이 나를 눈부시게 했다. 기차 안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를 몇 번 반복했다. 창문 풍경이 내 뒤로 지나간다. 어딘가 도착한 기억은 없다.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까지 오래되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다. 다만 세 살 어린 동생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기억이라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아무리 선명히 기억하려고 해 봐도, 흑백티비가 전파를 못 찾는 것처럼 뿌연 화면만 나온다. 흐릿하다 못해 지워진 기억이 얼마나 많을까. 가끔은 어릴 때 보았던, 씩씩하고 정정하던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저 기억도 그리운 마음에 겨우겨우 건져낸 기억의 한 조각이다.



세월을 먹고 먹어 세 살이었던 아이는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일도 관계도 인생도 조금씩 정리되는 나이, 찬란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나이 말이다. 하지만 진짜 희망찼던 때는 과거 어린 시절이 아니었을까? 미래가 다가오는 만큼 과거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찬란한 미래를 향해 열심히 달리자는 게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과거를 다시 꺼내어 추억하기란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추억을 들여다볼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고 한숨이라도 더 자는 게 낫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향해 가는 것만큼 과거를 주워 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의 맑은 시선이, 뭘 좀 아는 것처럼 거들먹대는 틀에 박힌 생각보다 훨씬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한 이불에서 꼭 안고 잠들었던 동생의 온기, 처음 시계를 읽었을 때의 쾌감, 천둥소리보다도 무서웠던 아빠의 호통 등, 닿을듯 말듯한 기억이 많다. 더 늦기 전에 이 기억들을 퍼올리려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처럼 시간에 닳지 않게 두려 한다.



이런 마음으로, 서른의 나는 세 살의 나를 불러본다. 부디 뒤돌아봐주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