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어린 동생에 대한 나의 첫 기억
으레 부모님은 "엄마 해봐 엄마~", "응 아빠야 아빠~"라고 하며 말을 가르치곤 한다. 나도 동생 귓가에 다가가 "형" 해보라며 속삭였지 않았을까? 부모님은 아이가 처음 '엄마', '아빠'를 부르던 때를 잊지 못한다던데, 애석하게도 나는 우리 동생이 처음 '형'이라고 불렀던 때를 잊어버렸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이 막 걸음을 배우던 때였다. 동생은 초록색과 하늘색이 뒤섞인 보행기 안에서 허우적였다. 작은 발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동생은 똘망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동자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형이고 내 앞에 있는 작은 존재는 내 동생이라는 것이었다. 동생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형인 나는 그 앞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어느 날은 보행기가 비어있었다. 동생이 낮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회였다. 나는 동생이 타던 보행기에 내 다리를 하나씩 끼워 넣었다. 엉덩이가 낄 정도로 비좁았지만, 왜인지 그 안에 꼭 들어가고 싶었다. 몸을 비틀어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거실 바닥을 발로 밀어보았다. 보행기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갔다. 거실 한 바퀴를 슝슝 돌았다. 동생보다 훨씬 빨랐다.
'내가 언제 이걸 타본 적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이 재미있는걸 왜 얘만 타는 걸까?' 억울했다. 보행기가 비어있는 날이면 나는 몰래 그것을 타고 놀았다. 분명 한때는 나도 이 보행기를 타고 걸음을 배웠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로 옮겨간 듯하다. 내가 받던 사랑이 동생에게로 갔다. 내가 타던 보행기가 동생에게로 갔다. 억지로 보행기에 올라탔던 건, 다시 부모님의 사랑을 얻고 싶어서였던 건 아닐까. 걸음을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이 그리웠던 것 아닐까.
형이 된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렸던 것을 물려주는 일, 그리고 가끔 몰래 그걸 다시 찾아오는 일 말이다. 서른의 나는 다시 그 시절을 떠올린다. 지켜주고 싶은 동생이 생겼던 순간을, 비좁은 보행기에 몸을 구겨 넣고 달린 거실을, 형이면서 동시에 아기이고 싶었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