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딸기 농사를 지었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습한 온기와 함께 뭉근하게 머금어진 달큼한 딸기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나와 동생은 아이스크림이 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업소용 냉동고를 두 손으로 힘껏 열어보았다. 호미랑 비닐 같은 것만 잔뜩 있어서 실망했다. 밭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물이 다 빠지지 않은 호스가 깔려있었다. 물컹하게 즈려 밟히는 느낌이 웃겼다. 그렇게 놀고 있는 우리에게 아빠는 장독대 색을 띤 다라이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와 아빠를 따라서 딸기를 땄다. 할아버지와 나, 아빠와 동생이 한 팀을 이뤘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앞장서서 딸기를 따 담으면, 그 뒤를 따르는 나와 동생이 남은 딸기를 따 담는 식이었다. 쪼그려 앉은 채 오리걸음으로 뒤뚱뒤뚱 나아갔다. 아빠는 팔토시랑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챙모자를 쓰고 허름한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어른의 넓은 등이 우리를 햇빛으로부터 지켜주었다.
한 번은 내가 딸기를 세게 쥐어뜯는 바람에 줄기까지 다 뜯겨 버렸다. 그렇게 홱 잡아채면 안 된다고 할아버지한테 꾸중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몸소 시범을 보였다. 발갛게 잘 익은 딸기를 손위에 두고, 초록 잎을 살짝 잡아 톡 꺾었다. 그러곤 그 딸기를 후후 불어 내 입 앞에 갖다주었다. 덜 자란 이로 조심스레 깨물었다. 과육의 틈새에서 새콤함이 삐져나왔다. 잘게 잘린 조각이 혀에 닿으면 달콤함이 스며들었다. 햇살마저 상큼해 보이는 맛이었다.
우리는 딸기 빨리 따기 경주를 했다. 누가 먼저 가장 끝에 다다르는지, 누가 딸기를 많이 따는지를 두고 내기를 했다. 막상 할아버지와 아빠는 별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나와 동생은 그 게임에 정말 진심이었다. 내가 겨우 한 다라이를 다 채웠을 때쯤, 딸기 따기 경주가 끝났다. 아빠와 할아버지는 세 다라이를 가득 채웠다.
나와 동생이 누가 더 많이 땄는지 개수를 세고 있으면, 아빠는 중간중간 채워 둔 딸기 다라이를 들고 오셨다. "이 딸기는 하얀 부분이 많아서 무효야." 하며 나와 동생이 실랑이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크고 좋은 딸기를 골라 담아 랩으로 슥슥 감쌌다. 그러곤 '싱싱딸기'라고 적힌 종이박스에 조심히 넣었다.
딸기를 경운기에 옮겨 담았다. 아빠는 줄을 잡아당기며 경운기의 시동을 걸었다. '타라락 탁탁 투르르르' 동생은 아빠 옆자리에 앉았다. 청국장같이 구수한 소리를 내며 경운기는 출발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앞자리에 탔다. 계기판 바늘이 고생했다는 듯 좌우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앞서가는 아빠의 경운기 위로 연보랏빛의 하늘이 내렸다. 풍요로운 논밭사이를 가르며 청국장 냄새나는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