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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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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간 김개똥 Jan 26. 2022

유통회사 막내 여직원이라는 불가촉천민의 삶을 끝내며

첫 번째 퇴사 사유. 비겁함을 무기로 잔잔바리로 살아왔던 2년을 청산하며

- 유통회사 막내 여직원에 대해 일반화하는 글이 아닙니다 -


그 회사에서 우리의 위치는 단순히 한 형용사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강아지인 것 같기도 한데, 뭐 의무가 없으니 권리도 없고, 없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있어야 하는 존재도 아닌.....


그래. '제도 밖의 사람'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우리를 '불가촉천민'이라 정의했다.


그 이후부턴, "그 회사, 회사 사내정치랑 기싸움 심하다면서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오히려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아뇨.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왜냐면 저는 인간이 아니라 안 끼워주니까요 하하)"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였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이, 우리 회사에도 귀신이 있었다. 

하나는 회식 못해 죽은 귀신이고, 하나는 성희롱을 말 끝마다 하지 못해 죽은 귀신이었다.


유통회사 특성상, 매일 퇴근이 늦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탄 같은 야근은 없었지만, 대략 8시에서 9시 퇴근이 '평균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식 시간도 자연스레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이동한 10시 이후로 시작됐다.


당시 인천에서 강동구까지 지하철을 타고 통근하던 뚜벅이에게 이 미드나잇 회식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일단 앉았다 하면,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택시비는 6만 원. 하루 이 수모를 겪으면서 번 돈의 절반 이상을 날려야 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회식 필참이라는 말을 무시하고 한 두 번은 도주도 해보고 온갖 핑계를 다 대봤지만, 돌아오는 건 "회식자리에서 중요한 얘기가 얼마나 많이 오가는지 알아? 그러니까 여자들은 사회생활을..."는 쫑코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어이없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니 언제부터 니들이 대화에 내 의견을 물어가며 중요사항을 결정했다고...?" 


나는 팀에서 20대 중반 막내, 사원, 유일한 미혼 여자, 게다가 무기계약직 사원이었다. 

하루에 11시간씩 얼굴 마주 보고 있는데 중요한 사항을 회식자리에서 결정한다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일단 그런 걸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척 끼우려는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나는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술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고,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굳이 껴야 할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회생활은 다 이런 건가.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10만 원을 벌어서 6만 원을 택시비로 쓰면서도 부당함을 모른 채 납득해야 하는 삶.




하지만 내가 회식을 싫어했던 건 이런 단순한 이유만이 아니었다.

회식이 끝난 후, 나는 늘 2차에 불려 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2차 멤버는 늘 비슷했다. 서른 전후의 미혼, 기혼 (남자) 선배들. 

회식을 하고 술이 오르다 보면, 이걸 기분 나빠해야 하는지 그냥 흘려들어야 하는지 애매한 말들이 자꾸 귀에 들어왔다.



집에 가려고 카카오 택시로 요금을 달고 있는데 한 유부남 선배가 말했다.

"아니, 아깝게 택시를 왜 타? 그냥 자고 가. 우리 집에 방 비어. 오늘 와이프도 없어."


술을 먹고 나를 잡고 매달리는 이혼남 선배를 보며, 다른 선배가 넝담( ͡° ͜ʖ ͡°) 했다.

"얘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너도 관심 있으면 이 기회에 잡아. 

애가 있긴 한데 뭐가 중요해. 돈 많아."


너무 피곤해서 친구네 집에서 자고 출근한 나를 보고, 다른 선배가 말했다.

"오~ 오늘 향이 다른데? 이거 모텔 샴푸잖아. 어디서 잤어? 누구랑 잤어?"



넝담 ( ͡° ͜ʖ ͡° )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폭언들.

참을 수 없지는 않았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하나가 내게 와서 물었다.

"혹시, 내가 한 말 기분 나빴어?"


조회시간에 과장이 불러 여직원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중에 여직원들이 악의 갖고 신고하면 번거롭다고. 아까운 커리어 다 망치는 거 한 순간이라고.

당한 나의 안위가 아니라, 가해자가 받을 피해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참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안 나빠요."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기분 나쁘지 않다.

나는 제도 밖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불가촉천민>이기 때문이다.

제도 안의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고, 보호하는 일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저런 일에 일일이 날뛰지 않아도 충분히 피곤한 삶이었다.

나는 비겁하기 때문에 그냥 방관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가해자를 방치했고, 나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암 환자의 투병기를 읽었다.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무슨 마음가짐 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도 늘 딱 하루만큼의 삶을 연장하며 살았다. 시한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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