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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Sep 19. 2024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

하루키 도서관 방문기 4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문학관은 하나의 책에 각기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하루키가 번역한 레이먼드 카버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도 전시되어 있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 하루키는 쉬는 개념으로 번역 일을 한다고 했다. 그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을 번역한 책상 사진 옆에는 챈들러의 번역본이 진열되어 있었다. 영어 강사인 은선님은 쉬는 게 번역이라니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루키의 오디오 북 목소리는 성우가 녹음한 듯 묵직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밀리의 서재 같은 로봇 음성이 아니어서 나는 언제까지고 앉아서 듣고 싶었다. 가장 평화롭고 좋았던 시간은 오디오 룸이었다. 그가 선곡한 재즈가 흐르는 이 방에는 그의 재즈 에세이가 꽂혀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하루키스트들이 앉아 저마다의 추억과 함께 하루키의 책을 읽는 풍경은 뭐랄까. 하루키가 그의 작품에서 자주 말하는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을 들게 했다. 예전에는 그게 뭔지 잘 몰랐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1973년의 핀볼 p.20>

   

나는 동시에 두 군데의 장소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에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이라는 개체성이 그런 내 희망을 방해하고 있어요. 몹시 불합리한 압박 같지 않나요? 나는 동시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애인과 자면서 당신과도 자고 싶습니다. 나는 개체이면서 원칙이고도 싶습니다. - 캥거루 통신 <중국행 슬로보트 수록 p.133>       



  세계 곳곳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 나는 개체이면서 원칙인 느낌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인생의 행복이란 지극히 단순하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못해서 혹은 잃어버렸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완전해진 상태다. 즉 입구에 들어간 동시에 출구인 셈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언급한다. 나는 그가 이 궁극의 목표 혹은 세계관을 최근 작품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처음 하루키의 작품을 읽기 시작한 20대의 그날, 오늘 이 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라고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그때부터 동시에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 우리가 이곳에 함께 있는 것 모두 일어날 일이라서 일어났다. 


 우리가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순간들, 공유하는 희로애락의 감정, 과거라 생각하는 멀어진 것들, 다가올 미래의 모든   뫼비우스의 띠처럼 존재한다. 인생은 그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니 우리는 그저 현재인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하루키가 꾸준히 말하는 동시에 존재하라는 의미는 그런 게 아닐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이미 과거부터 존재한 나의 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알 수 없는 채워짐으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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