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덕정, 벽화거리, 동문시장 -
제주 여행 4일 차. 숙소 옆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성산항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로 이동했다. 제주는 대중교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어디든 버스로 쉽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버스는 느린 대신 창밖의 풍경을 맘껏 담을 수 있어 좋다. 마을 길을 지날 땐 낮은 돌담, 길가에 가꿔놓은 꽃들, 청귤이 다닥다닥 매달린 귤밭, 밭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선 측백나무가 정겹게 다가온다. 숲길을 지날 땐 초록 물결이, 바닷가를 지날 땐 짙푸른 바다의 파도가 달려와 온몸을 출렁이게 한다.
한 시간 이십 분쯤 달렸을까. 제주시 숙소 근처 관덕정에 도착했다. 관덕정은 가로 다섯 칸, 세로 네 칸으로 규모가 꽤 컸다. 관덕정은 제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고건축으로 지금은 제주 원 도시의 상징적 공간이라고 한다. 관덕정 광장은 4.3 항쟁의 불씨가 된 사건이 발생한 곳이자, 이후 제주지역 민주화운동의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격동의 제주 역사를 지켜봐 온 관덕정 마루엔 여행객들이 앉거나 누워 땀을 식히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쉬어가려 마루에 앉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저절로 마루에 눕게 했다. 여행 시작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는 바람이 마냥 고마웠다.
우린 숙소에 짐을 맡기고 관덕정 옆 제주목관아를 둘러보았다. 그동안 제주목관아는 올레 17코스를 걸을 때 담장을 따라 지나치기만 했을 뿐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다. 관아 역시 밖에서 볼 때보다 규모가 컸다. 지금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때 거의 훼손되었던 것을 발굴조사를 통해 복구해 놓은 것이라 한다. 관아에는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과 바깥 대문 옆 회랑 안에 만들어 놓은 제주목관아 박물관, 연못, 아름드리나무들, 한쪽에 마련된 과원이 있다. 집무를 위한 공간 외에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거나 시를 지으며 술을 마셨다는 ‘귤림당’과 관기와 악공들에게 악기를 가르쳤던 ‘교방지’는 조선 시대 관리들의 풍류를 그려보게 했다.
제주목관아를 나와 ‘남수각 하늘길 벽화 거리’와 동문시장을 둘러보았다. 벽화 거리에선 느릿느릿 골목길을 걸으며 담벼락을 따라 그려놓은 벽화들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색감과 동심이 담긴 그림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동문시장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제주 기념품과 다양한 먹거리, 과일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푸른빛이 도는 햇귤 한 봉지를 샀다. 껍질을 벗기자마자 상큼 달큼한 귤 향기가 번졌다. 오늘 여정은 제주로 이동해 쉬엄쉬엄 걸으며 쉬어가는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