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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Oct 26. 2022

제주 올레, 17코스를 걷다

- 다시 올레길 - 

   삼 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여행 마지막 날 올레길 17코스를 걸었다. 17코스 시작점은 광령1리에서 시작해 간세 라운지가 있는 관덕정 분식까지 18.1km이다.  이 코스는 전에 두세 번 걸은 적이 있다. 이번엔 숙소가 관덕정 근처라서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거꾸로 걸었다. 걷기 전날엔 '관덕정 분식'에 들러 떡볶이, 튀김만두, 당면이 들어있는 ‘모닥치기’를 먹었는데 매콤 달콤 칼칼한 게 꽤 맛있었다. 매장 한쪽에 자리한 간세 라운지에선 제주 올레와 관련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올레를 상징하는 꽃무늬 손수건과 작은 말 인형을 샀다. 십오 년 전 처음 올레길을 걸을 때의 설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올레길에 빠져 여름과 겨울 방학이 되면 제주로 날아가 일주일이나 열흘씩 걷곤 했었다. 그렇게 전 코스를 다 걷고도 마음에 드는 코스는 몇 번씩 다시 걸었다.


관덕정 분식

   관덕정에서 용두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동한두기 방파제를 따라 걷다가 용연 다리를 건넜다. 용두암 가는 길가에 조성된 꽃밭엔 키 작은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었다. 용두암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바위 한쪽에서 해삼, 멍게 따위를 팔고 있는 모습도 여전했다. 용두암을 지나 오른편에 바다를 끼고 걷는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일기예보에선 오전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엔 잿빛 구름만 떠 있었다.


용두암 가는 길 코스모스 꽃밭


  한 시간쯤 걸었을 때 하늘이 맑아지면서 바다 빛깔도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바다 쪽 길가엔 보랏빛 순비기나무 꽃이 수북하게 피어 있었다. 어영소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두항과 도두 추억의 거리를 지나 두 시간쯤 걸었을 때 이호테우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위쪽의 솔밭에서 바람을 맞으려 지친 발을 쉬었다. 17코스는 바닷가를 따라 걷는 용두암에서 이호테우 해수욕장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이호테우 해수욕장


   다시 발길을 옮겨 걷다가 “외쿡 식당”이란 이름의 식당을 만났다. 파스타, 스테이크, 리소토 메뉴가 있는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식당 안은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예뻤다. 창가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창가 자리는 2인 이상만 가능하다며 안쪽 자리를 안내했다. 순간 그만 나갈까 망설이는데 안주인이 다시 와 창가에 앉으라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혼자 온 손님이라고 박대를 당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언짢았다. 


매생이 전복 리소토


   오후 두 시가 넘은지라 배도 고프고, 다음 식당이 어디쯤 있을지 몰라 일단 자리에 앉았다. 전복과 매생이, 단호박이 들어간 리소토를 주문했다. 오래전 이탈리아 친퀘떼레 중 한 해안 마을에서 리소토를 시켰다가 너무 짜서 먹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이곳 리소토는 간도 적당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에 맞았다. 점심은 맛있게 먹었지만, 바다 뷰 자리 때문에 상했던 마음과 찜찜함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외도 포구를 지나 월대천에 들어서자 여름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월대 천변에는 오백여 년이 된 팽나무와 해송이 천 위로 휘늘어져 있어 시원하고 경치도 빼어나다. 월대천은 밝은 달이 뜰 때 주위와 어우러져 물 위에 비치는 달빛이 장관이라고 한다. 천변의 아름드리나무 아래엔 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하천에선 물놀이하는 사람들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월대천 

  월대천을 지나 무수천트멍길에서 광령교까지는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무수천 길을 따라 걷는 내내 천이 마른 것을 보니 물이 없어서 지어진 이름 같다. 천변의 기암괴석이 눈길을 끌 만도 한데 지친 걸음으로 걷다 보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걷는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이고, 주변은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매미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뿐이었다. 외지고 적막한 길을 혼자 걷자니 두려움이 슬슬 몰려와 발걸음이 빨라졌다. 


무수천트멍길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수 천트 멍 길을 지나 4차선 대로를 만났을 때 지나가는 차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18km, 사십 오리를 걸어 광령 1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참았던 발의 통증이 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한 코스를 완주했다는 기쁨에 종아리와 발의 통증은 점점 잊혔다. 어느새 올레길을 1코스부터 다시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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