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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와우 Oct 22. 2024

아빠의 냄새.

그리움. 미안함 그리고 위로

숨 막혔던 여름이 가고 놓지 않고 싶던 가을이 휙 지나간다. 아침, 저녁의 공기가 차다 못해 냉해지면 나는 한두 번씩 자칫하면 아픔으로 빠져들 감기몸살의 절벽에 서게 된다. 그걸 잘 넘기려면 약과 휴식 그리고 뭔가가 꼭 필요하다.

타이레놀과 전기장판, 낮잠은 건강을 되찾게 구조하지만 아직 한 가지가 남는다. 아픈 몸의 세밀한 반응, 방향을 잃고 헤매는 마음에 '여기로 가면 된다고' 따듯하게 안내해 줄, 보듬어줄 무언가를 찾게 된다.


아빠방으로 간다. 이유 모르게 가서 숨을 들이쉰다. 가볍지 않은 무게감과 어두운 쑥 색이 어린 냄새. 병을 안고 이 방의 주인이 되어 본인도 납득되지 않는 모습으로 다시 이 방을 나설 때까지 편안함과 만족감에서 두려움으로 이어진 7년의 시간이 품은 냄새. 그건 아직 3년이 지나도 어느 곳에든 들어 있다. 답답하다고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다시 창문이 닫히면 깜깜해질 때까지 놀다 밥 먹으란 소리에 힘차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아빠의 냄새는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영원한 회귀.

그 냄새가 주는 안정감. 흔들릴 때, 어딘가 비워진 느낌이 들 때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서면 예전에도 지금에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옆에 아빠가 앉은 느낌이다. 존재감 없이 벽에 걸린 밋밋한 그림처럼 내가 말하고 생활하는 것들을 듣고 보는 아빠가 줬던 안정. 그렇게 아빠식의 위로를 받는다. 그럼 또 뭔가 채워져,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말로 못 할 무언가를 채워낸다.


아직은 그게 필요하다. 아빠를 밀어내면서까지 지키고 싶던, 읽고 쓰고 달리는 삶을 그렇게 살아도 아직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한 공간에서 보고 듣는다 말을 안 한 안일함, 속으로만 말하는 아빠를 따라 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말을 줄였던 잘못. 사고가 잘라버린 아빠와의 시간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함에 깃든 미안함, 죄책감이 있다. 힘겨울 때 날 선 마음이 지난 후회와 상처로 우왕좌왕한다. 약해질 때마다 건드려지는 얄팍한 죄책감이 아픔을 전면에 내세워 잘못했어도 서러운 마음을 만들어 떤다. 보듬어 달라고,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아주 작게 말한다. 그렇게 문간에 서서 냄새를 맡는다.


언젠가 이 방의 냄새가 나지 않는 날이 올까? 냄새를 맡는 일도, 맡아도 나지 않는 날이 올까? 다른 사람은 맡지 못하더라도 나에겐 계속 날 테지. 방이 없어져도 가슴에 계속 묻어날 테야. 죄책감과 미안함이 서린 나의 사랑과 나를 영원히 위로할 아빠의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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