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가 많은 주제다. '여행'. 저마다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까? 누군가에겐 휴식이고 누군가에겐 모험과 도전이며 누군가에겐 두려움과 고통일 수도 있는 것, 또 누군가에겐 매일 반복되는 것일 수도 있다.
처음 '여행'이란 단어에 눈동자를 오른쪽 위로 밀어 올린다. '내가 여행을 갔던 게 언제였지?, 시야를 넓혔던 여행이라...' 고1 여름방학,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떠났던 때가 생각난다. 첫 비행이 유럽이었고 고1에 영어도 안 되는 애가 홀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유럽의 목적지까지 가는 여행은 진짜 여행이었다. 단어에 어울리는 '설렘과 흥분, 불안과 두려움'이 묘하게 섞인! 하지만 머릿속을 깊이 더듬어 봐도 30여 년 전 기억엔'TV에서만 보던 다른 나라 진짜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던 순간 외엔 떠올려지는 것이 없다.
여행, 그것은 무엇일까?
과적 픽업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유적의 규모와 그 유적을 부수어버릴 듯 맹렬히 자라고 있는 나무의 위용에 압도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
소설가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이유' 산문집에서 위 글귀를 읽었을 때, 몸으로만 감지하던 여행의 의미가 하나의이미지로 정리되었다. 따가운 태양에 바짝 말려진 이불홑청을 걷어다 정성스레 다림질하고 반듯히 툇마루에 개어 놓은 모습,틀림이 없이 딱 떨어진 상태. 나의 여행의 의미와 맞아 있다.
여행 안에는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한다 하더라도 필연적인 우연과 이벤트가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 속 선택과 대처, 끝을 찌르는 감정, 그 속엔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은 들어설 틈이 없고 완전한 '지금'이 있다. 그렇게 순도 100%의 '현재' 안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그렇게 오롯이 현재에 존재하며 앞 날과 뒷 날을 생각지 않은 삶도 온전함을 깨닫게 한다. 현재를 살지 못할 정도로 재고 따지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은 크게 우리 삶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지금만을 보며 생각하고 행동함이 어리석거나 무책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계획과 실행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깨고 나가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는 것이다.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난다. 걱정과 불안이 많은 날엔 좀 더 멀리, 강렬하게 떠난다.
운동화와 가벼운 옷으로, 조금은 생각이 많은 현재로 언제고 다시 데려다줄 시계 하나를 차고서 두 발로 여행을 떠난다. 들고 나는 숨과 팔, 다리의 리듬, 근육의 움직임, 발끝의 감각마저살아나는 순간 안에 있으면 안개처럼 들어찼던 많은 것들이 개인다. 가빠지는 호흡, 생각이 떠난 불수의 움직임 앞에 자리를 꾀차는 무엇도 없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한 지점까지 녹아내릴 듯 달리고 났을 때 터질 듯이 몸이 말해준다.